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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윤리의 두 번째 기둥: 공익성

언론윤리를 구성하는 세 개의 기둥에 대해

 2022년 대선이 끝난 직후 이른바 ‘후드티’를 입은 김건희 여사의 사진 기사가 대대적으로 보도된 적이 있다. 대통령 당선인의 부인, 그것도 대선 과정에서 큰 화제를 모은 인물의 동정을 보도하는 것은 충분히 공적인 관심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도된 사진에 들어 있는 내용은 모두 사실이다. 그러면 이런 보도는 좋은 보도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사실성의 요건을 채웠는데도 이 기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아무리 유명한 공인이라도 마치 연예인 동정을 다루듯이 의상이나 외모에 관한 기사를 반복적으로 내보내는 것에서 어떤 공익적 가치를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사실성이 언론으로 인정받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면 공익성은 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어느 것이 더 기본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다만 사실성이 언론이 되기 위한 필요 조건이라면 공익성은 언론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충분 조건이 아닐까 한다. 사실이 아니면 애초에 언급할 가치도 없는 것이고, 비록 아무리 사실이라 하더라도 공익성이 없는 것이라면 그 역시 무가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이 아닌데 공익성이 있을 수도 없고, 공익성 없는 거라면 사실이라도 보도할 이유가 없다. 그럼 공익성은 무엇일까?


 공익성은 위에서 언급한 언론 자유의 네 가지 역할을 중심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사상을 밝히는 것도 공익성이 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지식의 발전과 진실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면 공익성이 인정된다. 그리고 다양한 목소리가 제시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소수의 목소리, 주류와는 다른 주장을 소개하는 것도 공익성이 있다. 큰 목소리에 가려서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마이크를 대주는 역할은 꼭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공적 논의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공적 관심사에 대한 사실적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은 대단히 공익성이 있다. 이것이 언론자유의 사회적 기능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다. 정당한 공적 관심사에는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만이 아니라 문화, 건강, 오락 등에 대한 것도 포함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정책적인 의사 결정이 필요한 사안은 특히 광범위하게 공익성이 인정된다. 


 다시 대통령 당선인 배우자의 의상에 관한 보도로 돌아가 보자. 아무리 공인이라 하더라도 그런 식의 신변잡기식 정보는 공익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국민은 대통령 당선인의 배우자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도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질 수 있으므로 동정 보도가 모두 공익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대통령 당선인 배우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공적 관심사가 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공적 맥락과 관련이 없는 표피적 동정만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에 공익적 가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 말을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비슷한 소재를 다루더라도 그것이 공적 논의와 관련이 있다면 보도를 할 공익적 가치를 획득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그러한 의상이나 활동 모습이 공적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경우다. 이를테면 값비싼 의상이나 보석류를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구해 착용했다든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의상으로 물의를 빚었다든지 하는 일이 생겼다면, 그런 부분은 그렇게 중요성이 높지는 않더라도 나름의 공적 논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역시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사안인데, 대선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됐던 ‘쥴리 의혹’ 보도를 잠깐 생각해보자. 24년 전에 어떤 연회장에서 접대를 한 여성이 김 씨였다는 어떤 인물의 주장은 대선 기간 내내 큰 논란을 빚었다. 이 주장을 한 유튜브 채널이 거론하자 일부 인터넷 매체는 물론 일부 전통 매체들도 기사로 다뤘고, 급기야는 벽화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24년 전에 내가 봤다”는 특정인의 주장 외에는 아무런 근거도 제시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런 보도는 공적인 검증의 영역에서 다뤄질 만한 것이라기보다는 선정성을 곁들인 인신공격적 주장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김 씨에 관한 다른 의혹들, 이를테면 논문 표절 논란이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등과는 차원이 다른 인신공격성 주장으로 정당한 공적 관심사라고 보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이와 관련한 각종 의혹 제기를 단순 전달한 여러 언론사들이 신문윤리위원회에서 한꺼번에 ‘주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이 문제는 아예 사실 여부가 확인된 것이 아니므로 엄격히 말하면 사생활 침해라고는 할 수도 없다. 사생활 침해로 인정되려면 그런 내용이 사실로 확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논란의 대상 자체가 공적 관심사라고 보기도 어려운데 근거도 부족한 상태에서 퍼나르듯 보도하는 것을 공익성에 따른 보도라고 보기 어렵다.


 다음으로 언론 매체에 대해서만 공익성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기억해두면 좋겠다. 개인이 만든 SNS 계정이나 블로그라도 사회적인 공적 논의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면 당연히 공익성이 인정된다. 예를 들어 일명 ‘육대전’이라고 불리는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라는 페이스북 계정은 군 내의 다양한 문제를 사회적으로 전파하는 채널 역할을 했다. 군의 부실 급식 문제를 폭로했던 곳도 육대전이다. 이 계정은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던 시기에 군 정보사령부 요원들이 신임 국가정보원 요원들과 부적절한 대규모 회식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보사령부 소속 모 대령은 방역지침을 준수했다며 육대전 운영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는데 경찰은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누군가를 비방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군 내의 부조리를 없애려는 공익적 목적이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선정적 보도는 공익성과 거리가 있는 보도의 전형이다. 지면 뉴스도 그렇지만 포털의 언론사별 뉴스 편집창을 선정적 기사로 채우는 언론사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기사를 전면에 내걸면서 언론의 공익성을 주장한다는 것 자체가 참 민망한 일이다. 물론 이것이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공익성을 따져본다면 가치를 발견하기 어려운 기사들인 것은 분명하다. 단순히 호기심만 충족시키는 것이라면 비윤리적이라는 비판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런 보도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 책임을 피할 방법은 없다.


 선정적 보도라는 것이 꼭 성적인 내용이 포함된 것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단순한 호기심만 겨냥한 보도는 모두 선정적 보도라고 할 수 있다. 관상이나 명리학 같은 것을 시사적 사안을 다루는 진지한 기사에서 언급하는 것도 호기심에만 영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주요 일간지에 성범죄 피해자의 사진을 제시하면서 가해자의 관상이 ‘순박’하다고 한 어느 관상가의 말을 소개한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미디어 전문지가 취재에 들어가자 황급히 삭제해 버렸는데, 이건 공익성 없는 선정적 보도 차원을 넘어 성범죄에 대한 2차 가해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공직 후보자와 관련해 사주를 거론하면서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식의 보도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런 보도는 진지한 공적 관심사를 오락거리로 만들어버리는 문제적 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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