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교실학개론
우리나라의 교육은 살아있었다.
한 직종의 종사자가 해당 과업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시스템적으로 보상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그 종사자에게 더 이상의 노력을 요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임에도
교직은 그것이 가능했던 독특한 곳이었다.
교사들은 자발적으로 남아 수업 연구를 했고,
특히나 아직 연차가 낮은 교사들은 학교에 단순히 수업 연구 하나만으로도 당직 담당자가 내쫓기 전까지 교실이나 연구실, 또는 집에 돌아가서까지 다음날 수업 준비를 하는 게 일상이었다.
학교는 심지어 "수업준비"를 이유로 초과근무를 인정하지 않는 관례가 있어, 일감이 더 생기면 집에서 마저 수업 준비를 하는 문화가 있었다.
그러니까 뭐랄까, 교직에서 수업준비는 당연히 해야 하면서도 그 학교 문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강요되는 그런 것이었다.
교사로서는 수업 준비를 열심히 안 하면 동학년 선배들의 수업과 비교되어 아이들에게 미안해지면서, 다른 심오하고 역동적인 수업 활동을 구현하기 위해 바빴다.
더욱 놀라운 건 사회의 통념과는 달리, 이건 교사 개인의 이념이나 소속집단과도 무관한 이야기였던 것이라는 거다. 전교조든, 교총이든, 실천교사든, 교사와 관련한 집단은 자연스럽게 교사 개인의 발전과 성장을 자극하는 요소들을 제공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 결은 다를지언정.
그게 살아있던 게 2010년대, 내가 경험한 초등학교 현장이었다. 교사들은 심지어 사비를 써가며 학급 내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를 준비하기도 했고, 굳이 안 해도 될 사업ㅡ승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ㅡ을 따오기 위해 굳이 사서 고생을 하기도 했다. 그걸 보고 자라온 게 나고, 나 역시 선배들의 멋진 모습을 닮아왔다.
그러나 어느 날 시대는 변했다.
그런 노력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하고,
그런 노력을 "비교의 잣대로 삼기" 시작했다.
"옆 반 선생님은 저런 거 해주던데.."
"우리 반 선생님은 반티 하나를 안 만들어 주네.."
각 반마다 담임교사의 가치관, 역량, 장점이 다르고 그것이 발휘되는 영역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학부모는 우리 담임교사가 "안 해 주는 것"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2010년대 중반 내 동료교사들이 경험한 '일부 학부모'였다.
심지어는 자기 개인 가치관을 학교에 심길 원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사회과 교육과정에서 행정부-입법부-사법부의 권한과 기능에 대해 알아가는 헌법 교육은 기본적인 학습요소임에도 불구하고, 2010년대에 내가 설계하여 아이들과 진행한 "헌법 기반 우리 반 나라 만들기 프로젝트" 학습 진행 중, 어떤 한 학부모는 제3자의 전화로 학년부장님께 전화를 걸어 "왜 우리 아이가 헌법 따위를 배워야 하냐"라며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게 내가 경험하기 시작한 2010년대 후반 학교의 "일부 학부모"였다.
"일부"이지만, 그들은 살아있던 교사들을 무너트리기 시작했다. 일부의 민원도 민원으로서 가치있게 응대해야 하는 공직 시스템에서, 일부가 주는 타격감은 상당했다. 다른 모든 아이들과 학부모가 만족해하는 헌법 기반 사회과 학습 프로젝트도 중단해야 했고, 학년 단위로 활동을 어느 정도 맞춰 비교를 당하지 않기 위한 교사들의 눈치보기도 이어졌다. 그렇게 그렇게 활발하게 자생적으로 교직 특유의 문화 속에 꽃피고 있던 특유의 수업 연구 문화는 조금씩 정당성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열심히 할수록 공격당하고
열심히 할수록 내 옆반 교사를 공격받게 하는
정신나간 짓이 된 오늘날이 되어버렸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