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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실] 0화 - 1

오늘의 교실_학교라는 공간

by 꿈몽글

오늘의 교실 0화 - 1: 학교라는 공간



“에이, 작가님! 그래도 저희랑 이번 프로젝트, 한 번 같이 해보시게요. 꼭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세요.”

헤어지는 순간에도 유튜버 T는 다시 한번 넉살 좋게 말을 붙였다. 보조개를 머금고 생글생글 웃는 표정이야 보기에 밉지 않았다. 그러나 기준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쓰흡”하고 못마땅한 소리를 낼 뿐, 확답을 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제안은 이런 내용이었다. 우리나라 공립 학교 교실 몇 군데를 직접 들어가 수업을 참관하며, 오늘날 공교육의 현주소를 하나하나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잘만 되면 흥미로울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무슨 필요냐 싶은 생각도 가득했다. 어차피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명제의 진위 정도는, 지나가는 꼬마도 당연하게 아는 요즘이 아니었나. 굳이 그걸 두 눈으로 직접 봐야만 아는 것일까.


물론 프로그램의 취지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사실 그 취지와 내용만 보자면 이는 그가 학교를 바라보는 평소의 시선과 정확히 일치하기도 했다. 그가 일약 일류 작가로서의 명성을 갖게 된 것도 사실 대한민국 공교육의 실패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이 먹혀들었던 덕분이었으니까.

좀 더 솔직해지자면, 그 프로그램의 사회자 역할을 맡게 된다는 건 매력적인 포인트가 있긴 했다. 이미 대중에게 교육 전문가로 자리 잡은 그에게, 그의 목소리를 더욱 힘 있게, 그리고 꾸준하게 낼 수 있는 창구가 될 만하다 싶었으니까. 지금도 TV 지상파 방송에서 교육 이슈를 다룰 때면, 종종 패널 역할로 참여하곤 하는 그인 만큼, 어쩌면 이는 지극히 합당한 자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선뜻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못한 데에는, 기준 특유의 냉소적이면서도 끊임없이 불신하는 그 부정적 태도가 한몫하고 있었다.


‘그저 저 유튜버가 내 유명세를 그냥 이용해 먹으려는 의도라면?’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을 이어가 보았다. 이 의심은 관점에 따라 충분히 합당한 추론일 수 있었다. 유튜버 T가 비록 구독자 50만 명에 이르는, 작지 않은 규모의 채널을 운영한다곤 하지만, 지상파 방송에서 전문가로 인증을 받은 기준 본인의 양지성(陽地性)에는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한다는 계산도 곧장 섰다.


그러다가도 ‘내가 직접 유튜브 채널을 만든다 치면, 50만 명의 구독자가 바로 생길 것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리자, 그의 마음은 이내 미약해지고 민망해지는 지끈거림으로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행보에서도 알 수 있듯, 세간에 이름을 알리고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이 넘치는 기준이었지만, 혼자만의 힘으론 대중이 원하는 콘텐츠를 끊임없이 만들 자신은 없었다. 그렇기에 SNS 채널 따위도 일절 운영하지 않던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잘 알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생각이 닿자, 기준은 인플루언서인 그녀와의 만남이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얻는, 이른바 윈-윈(win-win)의 기회일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다만, 이것만으로 섣불리 결단을 내리기엔 여전히 찝찝한 점이 하나 남아있었다.

‘혹시라도 저 사람이 실상은 공교육을 옹호하는 사람이라면?’


그래, 사실은 이 머뭇거림의 근본 원인은 이 의심이었다. 공교육에 대한 비판자인 줄 알고 믿었던 사람이 알고 보니 공교육을 옹호하는 사람이었던 걸 알고 뒤통수를 맞은 게 몇 번이나 있었다. 한국 학교의 실패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던 기준 본인이, 만에 하나라도 ‘사실은 대한민국 공교육은 살아있다’라는 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나팔수로 기용되는 일은 추호도 용납할 수 없었다. 이는 그의 굳은 신념이었다. 본인이 겪은 ‘공교육의 철저한 패배를 세상에 알리는 것’은 그의 소중한 목표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유명해지고 싶은 부수적인 목표를 떼어놓고서라도 그랬다. 그렇기에 저 유튜버의 진의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어디 보자, 채널명이 뭐라 했더라.’


기준은 눈을 잔뜩 찡그리며 T가 운영한다던 채널 이름을 다시 떠올렸다, 그래, 「오늘의 이슈」. 그 다섯 글자를 검색창에 입력하였다. 곧이어 그녀가 업로드한 영상들이 주루룩 떴다. 대부분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어 화두에 오른 내용들을 젊은 세대의 시선에 맞춰 코믹하게 다루는 콘텐츠들이었다.

주제나 분야는 딱히 좁게 한정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활동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 문제가 된 외교 사건을 다루기도 하고,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경제와 관련한 내용도 여럿 보였다. 마침,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학교폭력, 이대로 괜찮은가!’ 클립을 클릭했다. 몇 안 되는 교육 주제 영상 중 하나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교육과 관련한 주제를 자주 만들진 않지만, 그러다가 또 가끔 사건 사고가 터져 사람들이 관심이 쏠릴 때쯤엔 다루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이 영상도 지난번 집단 학교폭력 가해 사건이 터진 후 난리가 났던 직후 업로드된 것으로 보였다. 그래, 돌이켜보면 그 사건도 참 심각했었지. 우리나라 학교는 이게 문제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덮으려고만 하고, 발전의 모습이 없으니 말이다.


“정말 학교가 해결할 의지가 있긴 했을까요?”


“언제쯤이면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공간이 될 수 있을지, 참 답답합니다.”


“학교폭력 없는 학교를 만드는 게,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중요한 일 아닐지요. 다들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기준 본인만큼 전문성을 갖춘 체계적인 비판은 아니긴 했다. 그래도 대한민국 학교가 어떤 양상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감옥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그 냉혹한 현실을 잘 짚어내는 논조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학교폭력을 위한 해결 의지가 하나도 없는 대한민국 학교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

검증 결과, 이만하면 같은 편으로 손을 잡아볼 수 있겠지 싶었다. 확신에 찼던 그녀의 어조엔 이유가 있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자극적으로 어그로를 끄는 능력 하나만큼은 확실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선 기준과 반대의 입지를 구축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었다. 기준은 교육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전문가로서의 호칭도 얻었지만, 대중에게 인지도가 아직까진 그렇게 높지 않았다. 그렇지만 교육 분야에서 더 유명해지고, 더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고 싶은 욕구는 넘쳤다. 그렇기에 기준 자신이 가진 전문적인 식견을 살짝 얹어주고, 그녀의 채널을 하나의 스피커로 활용해 보자면, 어쩌면 생각보다도 더 괜찮은 작품이 나올 수 있겠단 기대감도 들었다.


짧은 망설임 후, 결국 기준은 결단을 내렸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지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녀의 명함을 빼냈다. 거기에 적혀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발신음이 울린 후, 전화가 연결되었다.


“아까 뵈었던 이기준입니다. 그거, 같이 하시죠.”


그의 말에 스피커 건너 화들짝 놀라 신이 난듯한 목소리가 가감 없이 전해졌다.


“꺄, 정말요? 진짜 감사해요. 잘 생각하셨어요. 그러면 당장 저희 만나서…”


그 뒤로도 그녀는 한참을 뭐라 뭐라 재잘거렸지만, 내용이 잘 들리진 않았다. 기준도 조금은 흥분했던 탓이었으리라. 뭐, 어쩌면 대한민국의 오늘날 학교의 벌거벗은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꿀 같은 기회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글 쓸 거리, 비판할 거리가 넘치고 넘칠 거란 생각에, 흥미로움에서 시작된 두근거림이 이내 기준의 가슴에도 가득 차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학교는 실패했다. 거기엔 교사들의 기여가 컸다. 변하는 것이 하나도 없고, 안에 있는 교사들은 나태하고 게으르며, 철밥통 그 자체였다. 언제나 사건 사고를 덮기에 급급하고, 학생들을 진심으로 대하지도 않는다. 모든 사회의 문제는 학교를 비롯한 교육 기관이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탓이다.

하물며 요즘은 어떤가. 본인들도 근로자이고 직장인이라며 저녁 시간대의 상담과 연락을 일절 거부하고, 참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떳떳이 감당하지도 않는 무책임한 작자들이 다수였다. 옛날처럼 많은 것을 내주고 희생하는 진짜 스승으로서 살아가는 교사를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는 오늘날이 아니던가.


이젠 그 현상을 영상에 있는 그대로 담아낼 것이고, 교사들이 얼마나 불필요한 존재인지를 확실하게 드러낼 것이다. 이번 기회가 그 점에서 ‘공교육 무용론’을 오랜 기간 주장해 온 기준에겐 참 뜻깊은 시간이 되리란 확신이 섰다.


대한민국의 교실의 썩어빠진 구석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주리라, 그렇게 다짐하며 기준은 안경을 슬쩍 들어 올렸다. 안 봐도 뻔한 그곳을 이젠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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