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욕구
휴양림에 도착했다. 해가 진 시간에 산 속으로 들어오려니 차 안에 있는데도 무서웠다. 가로등은 하나도 없고, 비가 왔던 터라 앞에는 안개가 자욱. 의지할 불빛이라고는 오직 차량앞 라이트 두 개뿐이니 과속을 일삼는 운전자에게도 감속하라는 잔소리가 필요 없을 지경이었다.
맞은 편에서 차가 한대라도 오는 것 같으면 서로 부딪힐까봐 조심. 저 멀리 희미한 불빛만 보여도 조심조심.
한 치 앞이 안 보인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앞도 깜깜, 되도 깜깜, 옆은 절벽같은 느낌에 무서워 가족들 모두가 긴장상태로 앞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30분 가량을 달린 것 같다.
생존에 위협을 느끼면 다른 걸 생각할 여유가 없구나. 그저 살아있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는구나.
안전하고 평온한 가운데 지루함을 느끼고, 무언가 더 해야할 것 같은 강박을 느끼는 것도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생존 욕구가 채워지면 그 다음 상위 욕구를 좇게 되고, 마지막 단계는 자아실현이라는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이 생각난다.
자아실현까지 하고나면 과연 욕심이 없어질까? 궁금증도 생겼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은 더 이상의 욕심이 없을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상태가 진짜 사람에게 있을 수 있을까란 호기심도 생기고.
자아실현의 끝은 없지 않을까 싶다. 인간이란 존재가 완벽할 수 없으니,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든, 잘하는 걸 더 잘하게 하든간에 어제보다 좀더 나은 나를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욕심을 낼 수밖에 없는 존재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현재 나에게 중요한 단계가 어디냐에 따라 욕구의 내용이 달라질 뿐, 사람이라면 욕심이 없을 수 없다. 도를 튼 스님이 아닌 이상.
바라는 것이 없고, 평온하고, 만족스럽기만 한 상태는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 생각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욕심은 단계별로 새롭게 생기는 게 당연하고, 최종 단계인 자아실현까지 그렇게 계속 가는 거라 생각하면, 욕심이 생긴다는 건 기쁜 일인지도.
나만의 달란트를 찾아 진정한 나로써 살아가기 위한 여정. 나다운 삶을 완성하는 것을 결국 자아실현이라 부를 수 있겠다.
지금 이 순간,내가 부리고 있는 욕심은 어떤 욕심인지 알아차려보자. 나를 알아가는 것과 자아실현에 관심을 둔다는 것은 그 하위욕구들이 채워졌기 때문 아닐까.
퇴사를 쉬이 결정하지 못하는 것도 안전욕구와 소속욕구, 관계 욕구를 쉽게 포기할 수 없기 때문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자아실현을 향한 나의 욕구. 안정된 직장이 채워주는 부분이 상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소속되어 있는 동안은 그 부분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퇴사를 하면 오히려 자아실현에 가까워지리라 상상해보지만 지금의 안정감이 없는 상태에서,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 속한 나 만으로 얼마나 그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지.. 잘 모르겠다.
오늘 30분 남짓한 시간.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어색한 순간을 통해 생각해본다. 자아실현 욕구를 추구할 수 있기 까지 채워진 나의 다른 욕구들을 돌아보며, 되려 직장에 감사함을 느껴본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욕구들에 불만족스러워할 게 아니라, 이 욕구를 좇게 되기까지 채워진 하위 욕구들 덕분에 지금의 내 모습에 이르렀구나를 생각해보자.
불만족스러운 느낌이 들 때마다 그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면, 자아실현의 여정. 끝이 없는 이 과정을 좀 더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