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겪는 이야기, 내가 겪는 이야기. 모두 같이 사는 이야기.
언제부터 시작이었을까? 본인이 공황장애라는 것을 진단받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내 마음은 망가지는 중이었을까? 그것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알 수 있는 건 있다. 서서히 망가지다가 어느 순간 급격한 스트레스로 모든 것이 폭발하는 순간, 공황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서서히 병들어 가고 있음을 인지하고 빠른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면, 아니면 모든 스트레스를 겸허히 넘길만한 더 강한 멘탈이 있었다면 이런 병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 스트레스 요인은 실패였다. 인간관계의 실패. 바로잡으려 노력했으나 바로잡지 못했던 관계. 몇 날 며칠을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울었다.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아픔이었다. 살아오면서 누군가와의 관계가 처절하게 깨져본 것이 처음이었다. 정말로 반쪽이 아니 나 자신이 사라져 버린 기분이었다. 그렇게 그날도 울며 잠에 들었다. 그리고 새벽에 갑자기 호흡이 멈췄다. 그렇게 나는 숨을 쉴 수 없는 상태로 눈을 떴다. 거실에 엄마가 자고 계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엄마를 불러야만 했다. 아니, 불러야 하나? 그냥 이대로 죽어버리면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정말 죽음이 두려워서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엄마!!"
이제 몸에 힘이 빠진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엄마가 들었는지, 내가 살아있을 때 엄마가 날 발견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운명에 맡길 뿐이었다. 그다음에 기억나는 건 흐릿하고 군데군데 사라졌다. 엄마가 왔다는 것, 인공호흡을 시도하셨다는 것, 병원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의사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는 것.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그리고 나는 말을 할 수 없었다는 것.
폐쇄병동은 정말이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원인 모를 실어증, 공황장애, 우울증이 동반되어 자해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도대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나를 보고, 그 의사 놈은 그런 진단을 내렸을까? 지금 생각하면 간단하게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놓을 뻔한 일이 아닌가.
말을 못 하는 것도 사실이고, 당연히 나의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래서 슬픈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정말 한순간도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나는 의사의 권유에 의해, 폐쇄병동으로 입원절차를 밟게 되었다. 부모님과 굳게 닫힌 병동 문 앞에서 이별을 했다. 병동으로 들어가는 문은 안쪽에 하나가 더 있었다. 단지 지금 들어온 곳은 탈의를 위한 곳이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자해를 할 수 있는 모든 물건을 빼야 했다. 심지어 자주 작은 피어싱 조차 하고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그 순간도 귀를 뚫은 자리가 막히면 어쩌나 하는 하찮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위험요소를 모두 제거한 뒤에야 폐쇄병동의 안쪽 문이 열렸다. 긴 복도, 오른쪽으로 쭉 늘어진 벽을 따라 병실과 화장실, 왼쪽으로 간호사실 그리고 거실처럼 TV와 의자들이 놓여있는 공동생활공간, 그리고 또 병실이 보였다. 정면으로 간호사를 따라 걸어가면 철창이 드리워진 창문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가장 끝 병실에 배정받았다. 창문도 없고, 사람도 없다. 그렇게 침대에 앉아있으라고 하는 지시를 따라 앉아있는데, 문득 이곳에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간호사가 들고 온 것은 몇 개의 알약들. 저 알약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지만 본능적으로 진정제나 안정제 성분이 들어간 약이라는 걸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먹기 싫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려서 어떻게 저 알약을 먹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억지로 먹으라고 권유하진 않았다. 먹기 싫어하는 티가 났는지 간호사는 이따가 다시 먹자고 하고 갔다. 다행이었다. 서둘러 병동을 둘러보고 싶었다. 좋든 싫든 나는 여기 들어와 버렸고, 이제 나의 생활공간이 될 곳이었다. 궁금할 수밖에. 병동 슬리퍼를 직직 끌며 복도를 걸어 공동생활공간을 살짝 내다보았다.
제각각으로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여기 있으면 나도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복도 끝을 쳐다보았다. 굳게 닫힌 병동의 문을 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반대쪽 복도 끝을 쳐다보았다. 왜 창살이 존재해야만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가고 싶었다.
다시 내 침대로 돌아가서 생각이란 걸 해야만 했다. 나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든 어필해야만 했다. 약을 들고 간호사가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양보하지 않을 모양인지, 내가 약을 먹을 때까지 가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수 분간 간호사와 대치하고 있었을 때, 다른 간호사 한분이 와서 퇴원하라는 말을 했다.
폐쇄병동이 열렸다. 다시 탈의를 하는 그곳으로 돌아왔다. 터뜨린 울음을 멈추지 못한 채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었다. 그리고 다시 세상으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밝은 빛 사이에 엄마가 보였다. 엄마아빠는 나를 입원시키고 얼른 의사한테 다시 찾아갔다고 한다. 내가 자해할 수 있다는 말에 무서워서 덜컥 입원을 동의하셨는데, 묻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고 하셨다.
면회는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보호자가 원할 때 언제든 퇴원할 수 있는지 등 중요한 사항들을 물어보셨는데, 입원을 하는 순간 부모님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손길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셨다. 퇴원조차 말이다. 그래서 바로 입원철회를 하셨는데, 그 후 내가 밖으로 나오는 데에만 몇 시간이 더 걸려서 부모님도 불안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나의 폐쇄병동 체험은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은 다른 치료법을 알아보자고 하셨고, 나는 다시는 폐쇄병동을 보유한 대학병원으로 진료를 다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