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소란과 홀로 남은 목적의식 같은 것들
"너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이렇게 느끼고 있었어. 너는 무언가를 강렬하게 찾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을 필사적으로 피하려 하고 있다고. 네게는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어."
"찾고 있다니, 어떤 것을?" 오시마 상은 고개를 흔든다. 백미러를 향해 얼굴을 찡그린다.
"글쎄, 어떤 것일까? 그건 나도 모르지. 다만 인상을 인상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야." 나는 잠자고 있다.
"경험적으로 말한다면, 인간이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원할 때 그것은 대게 찾아오지 않지. 인간이 무엇인가를 필사적으로 피하려고 할 때, 그것은 저쪽에서 자연히 찾아오고 말이야.. 물론 그것은 일반론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야."
-해변의 카프카 중에서
모든 대자연 속 개개인에게는,
각자의 정체성이 부여되고, 남들과는 또 다른, 나 자신이 새로 정의 내린, 따끈한 가치관들을 발견하려 우리는 젊음이 남아있는 소중한 시간들을 소비한다.
순간처럼 닿는 여행들과 대화, 건너편 다른 객체와의 눈 맞춤, 무섭도록 서늘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나는 최근,
살면서 단 한 번도 '나와의 순간'을 마주한 적이 없는 것 같은 돌연적인 충동에 휩싸인다.
정작 살아가는 기쁨을 내 안에서 찾기가 힘이 든다.
이와 같이, 많은 젊은 이들 모두가
반복적일 뿐인 독서와 일기, 자기계발 같은 것들에 목을 매면서도,
마음속 한가운데에 공허함이 잇따르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 일까?
단 한 번도 삶 속에서 놓지 않았던 열망들이,
뒤를 한번 돌아보니, 휘발되어 버려 더 이상 내 곁에 온전히 남아있질 않았고,
또는 간절히 기도하며 바랄수록,
당신에게서 그 소망들은 점차 멀어지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정답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자만하며 나와 남들 사이의 차별점을 자위하고,
그렇게 세상의 방향이 온통 밖으로 뻗은 내실 없는 시간들을 보내오진 않았는가?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지금 당장도
‘나 다운 삶’ 이 무엇일까를 탐구하며
늘 그렇듯, 더더욱 앞으로 곤두박질치며
어떠한 것도 알지 못하는, 심연의 어둠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나는 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또래 동급생들과는 달랐다 라고 생각한다.
중학교 시절부터 같은 반 동급생 친구들과의 대화가 잘 통하질 않았고, 그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했을뿐더러, 나만의 세계?라고 해야 할까.
나만의 기준들이 결국 삶의 전반을 뛰어넘어서 남들에게도 그것들을 강요하며, 또래 동급생들을 유치하다고 비웃던, 별 것 아닌 비겁한 학생 중 하나였다. 그 후, 어리석은 마음임을 알아챈 시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돌이킬 수가 없었다.
내가 누구일까?
나는 어릴 적부터, 이야기를 내뱉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 가지 가시적인 점은,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마주 앉은 이와 눈을 맞추며 대화를 하고, 지금 당장 내 머릿속에 흘러넘치는 이 감상들을 누군가가 눈치채고 공감해주려 할 때면, 그제야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꼈다. 학창 시절 부모님을 대상으로 하는 학부모 면담이 다가올 때에면, 기어코 저녁식사 시간이 되자 부모님께 마주 앉아 듣던 말들, '00아, 너는 말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구나', '다른 친구들이 왜 궁금한 거니?', '담임쌤께서 울 아들이 남들에게 관심이 많아 보인다고 하더구나.'와 같은,
그럼 나는 주절거리며 대답한다.
'전들 아나요 엄마. 저는 이야기가 좋아요. 그리고 같은 반 아이들과 관심이랄 것들을 주고받는 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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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식 잡화점을 들여다보고 집 앞 공원을 나서는 일, 동네 유명한 빵집에서 갓 튀겨진 크로켓을 잠시 각오한 채 입안에 털어 넣는 일, 새로 산 스케이트보드를 끌고 누렇게 변색된 반스 신발을 아스팔트 아래로 박차는 일들도, 전부 궁극적인 나의 행복에는 미치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스토리텔러',
번지르르함을 지양하는 '단백호소인'인 나에게는, 역시 썩 내키지는 않는 수식어일 뿐이었다.
그래도, 내가 가질 수 있는 정체성 중, 꼭 한자리는 이것이 꿰찼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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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의 일환으로 수년 전 군복무를 마치고부터, 내가 갈구하던 길은 '스토리텔러'였다. 비단 글을 쓰는 작가라고 한정하는 것보단, 내 마음속 감정들이 내비쳐지는 수단은 어디든, 아무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글과 그림, 사진과 음악, 보이는 모든 수단들을 떠올려 보았다. 고민과 고민을 거듭하던 찰나에 문득, 그 당시 무척이나 흥미가 가 동시에 손에 잡혔던 것이, 스무 살 생일 그녀가 내게 선물해 주었던 '구식 35mm 미놀타 똑딱이 카메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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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 나는 포토그래퍼 필드에 뛰어들어, 웨딩사진이나 프로필 사진과 같은 상업현장에는 아무런 관심이 서질 않았다. 사진이라는 행위 자체의 매력이 단순한 돈벌이 수단 내지, 스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에서였을까.
나는 단지 '사진을 통하여서 가치관과 시선이 정립되는 내 삶의 현장들을 속속히 담아내는 데'에
그리고 '그것들을 포착하는데'에 흥미를 느꼈었던 것 같다.
그게 무엇이든지, 시작을 하기로 했으면 꺼내 들어야 할 것이 아닌가. 결심이 선 직후, 나는 속속히 쏟아지는 걱정들 사이로, 값이 천정부지로 훌쩍 뛰어버린 흑백 필름을 나의 오래된 미놀타에 장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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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밖에 목소리를 내는 일,
강렬하게 원하는 것들이 결국에는 내 것이 아니면 뭐 어떤가.
행위 자체에서 대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행복을 느끼고, 그것이 정답인 양 살아가는 일.
결국 세계는 나 자신이고,
젊은이들이 본인을, 전체의 세계로 꿈꾸며 각자의 길을 향했으면 한다.
삶도, 희망도, 결국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에면,
한번 곰곰이 떠올려보았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껏 신경 써 내린 기준들이, 나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진 않을까?',
'한 번쯤은 내가 정의 내린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어.'와 같은 것들.
아직도 해야 하고, 정의 내릴 일들이 세상 속에는 무수하다.
이들을 모두 내 것만으로 두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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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오늘도 나는 두서없는 말들로, 불안에 떨던 내 순간들을 떠올리며, 이 글을 남겨본다.
아직 젊음의 한가운데에 홀로 외딴섬처럼 남겨진 우리들 모두에게,
세상살이에 힘겨워하는 나의 모든 또래들에게,
(글/사진 : @hauy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