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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규관 Jan 31. 2023

김수영 시가 어렵다고?(4)

―꽃은 ‘언제’ 열매의 상부에 피는가 (2)

꽃은 ‘언제’ 열매의 상부에 피는가 (1)

국수이태리어로는 마카로니라고/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叛亂性)일까라는 3연은 산문으로 풀어서 접근해봐야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구절은 “나의 반란성(叛亂性)일까이니까요. 억지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이렇게 풀어보겠습니다.


국수를 이태리어로는 마카로니라고 하는데, 이것을 먹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입맛에도 맞지 않고 현실에 있긴 있는데 아직 우리의 문화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입에 대기 쉽지 않지만 나는 오히려 먹기 쉽다. 아니 먹기 쉬운 것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이런 것은  의식적인 나의 반란성 때문일까?’      


여기서 이 작품을 쓴 1945년을 떠올려 봤으면 좋겠습니다. 갑작스레 해방이 된 조선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또 가야 할지도 모르는 혼돈에 빠집니다. 식민지 체제에서 해방은 되었는데, 다음 단계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거죠. 해방 후 즉각적인 근대국가로 나아가지는 못할망정 일제에 이어 미군이 들어옵니다. 하지 중장이 이끄는 미군 제24사단은 9월 9일 포고령을 선포해 38도선 이남에서 군정을 시작하죠. 그리고 군정 장관으로 아놀드 소장이 취임합니다. 조선에 대한 정보와 경험이 일천한 미 군정은 일제 식민지통치기구를 그대로 이용합니다.      


서구 자본주의의 팽창이 제국주의를 강제한 것은 역사적 진실이고, 자본주의의 팽창으로 세계는 전일적으로 근대화가 되지만 요즘 생각하는 것처럼 ‘근대화 아름답지 않은 역사적 운명이었습니다. 이것은 제국주의 국가나 제국주의의 식민지나 마찬가지였죠. 자본주의 자체가 사실은 평등한 체제가 아닙니다. 도리어 평등하게 되면 자본주의가 존립할  없습니다. 평등을 가장한 극심한 불평등 체제가 근대 자본주의의 본질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 속에서 조선은―정확하게 말하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사라졌습니다. 일종의 국가 없는 상태가 이때입니다― 해방 후 근대민족국가로 발돋움하지 못한 채 질곡에 빠지면서 분단을 강요당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텐더포인트”(통점)는 김수영 개인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방 이후 김수영의 시에서,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갈등과 혼돈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그 시기에 김수영은 문학에 더 심취하게 되고, 박인환이나 김경린을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 운동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여기가 김수영을 모더니스트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돼죠.     


다음은 산문 「연극하다가 시로 전향」의 일부입니다.       


나의 처녀작 얘기를 쓰려면 해방 후의 혼란기로 소급해야 하는데 그 시대는 더욱이나 나에게 있어선 텐더포인트다. 당시의 나의 자세는 좌익도 아니고 우익도 아닌 그야말로 완전 중립이었지만, 우정 관계가 주로 작용해서, 그리고 그보다도 줏대가 약한 탓으로 본의 아닌 우경 좌경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한층 지독한 치욕의 시대였던 것 같다.    

 

4연을 보면 시적 화자의 명료한 진술이 터져 나옵니다. 1~3연까지 난해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과는 전혀 다른 명료함이 4연에서 펼쳐지는데, 시적인 진술이라기보다는 산문적인 진술에 더 가깝습니다. 그만큼 직접적이라는 거죠. 김수영은 4연에서 말합니다.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라고요. 여기서 “동무”는 1연의 “너”로 봐도 됩니다. 무엇을 바로 보겠다는 걸까요? 그것은 “사물” 그 자체와 “사물의 생리와” “수량과” “한도와” “우매와” “명석성”을 모두 다 바로 보겠다는 겁니다. 피상적인 “사물” 너머, 그것의 속성과 수량 그 한계와 좋음 혹은 나쁨의 상태까지 바로 보겠다는 선언은, 앞에서 이야기한 김수영의 ‘현실 인식’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사물”과 사물의 여러 특징과 위치, 상태는 곧 사물들의 세계 전체라고 확대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즉 존재자의 세계죠. 존재자가 이루고 있는 모든 총체를 우리는 ‘세계’라고 부릅니다. 사물뿐만이 아니라 사물과 사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건까지 포함해서 우리는 ‘세계’라고 부르는 거죠. 그리고 이 세계를 온전히 살면서 세계 너머로 나아가는 것을 우리는 초월이라고 부릅니다. 초월은 이 세계를 버리는 일이 아닙니다. 이 세계와 함께 살면서 다른 세계를 꿈꾸면서 결단하고 행동하는 겁니다.      


김수영의 “혼란”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작용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입니다. 위에 인용한 산문에서 그 시절을 돌아보며, “그 시대는 더욱이나 나에게 있어선 텐더포인트다”라고 한 고백은 흘려들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텐터포인트”를 「공자의 생활난」과 겹쳐 읽는 것은 억지스러운 시도도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말했듯 작품에서도 분명히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바로 보마”는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었지만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혼란기의 복판에서 김수영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단호한 현실 인식인 것이죠. 그가 자신을 “좌익도 아니고 우익도 아닌 그야말로 완전 중립”이었다고 말한 것에는, “혼란”의 원인부터 “혼란”의 결과까지 바로 보기 위한 정직한 태도를 가졌었다는 자기 고백일 수도 있습니다.
 

미래를 섣불리 예측하지 않는 것은 삶에 대한 건강한 태도입니다. 하지만 바로 보는 행위에 ‘꿈’이 없다면 바로 보는 것 자체가 “혼란”에 휘둘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김수영의 ‘바로 보기’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비켜 보기’가 아닙니다. 김수영의 ‘바로 보기’는 분명히 “꽃이 열매의 상부에서 필 때”, 또는 “발산한 형상”을 위한 ‘바로 보기’입니다.      


그래야 제일 마지막 구절,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가 확연히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 말은 단순히 신체적 죽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1연과 2연을 우리처럼 이해했을 때만이, 드디어 공자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논어(論語)』, 「이인(里仁)」)는 말을 끌어올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막연한 김수영의 전통 지향을 끌어다가  구절을 끼워 맞추는 것은 무리입니다. 더군다나 제목이 ‘공자의 생활난이니 ‘논어 구절을 갖다 붙이자는 것도 시를 성실히 읽는 태도라고   없습니다. 물론 김수영이  작품을   공자의  말을 의식했을 수는 있습니다. 시는 김수영의 말대로 ‘온몸으로 쓰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온몸’은 단순히 신체의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온몸’은 몸에 새겨진 모든 경험과 그 몸을 가진 시인의 지성과 서정과 정신이 모두 참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김수영의 ‘온몸’은 말년에 발견한 개념이 아니라 김수영이 자신의 역사를 종합한 언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김수영이 경험주의자에 가까웠다는 사실은 김수영의 시를 먼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김수영의 시대가 조선의 정신적, 문화적 영향이 가시지 않은 때였다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할아버지 때문에 서당을 다닌 적은 있지만, 김수영이 성리학을 제대로 알았거나 성리학을 공부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다만 식민지 조선이나 해방 정국에 성리학적 정신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었음은 상식적으로 추론할 수는 있지요. ‘주자의 나라’가 500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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