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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Mar 31. 2023

인복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여자친구이자 짱친이자 아내님 되시는 콩자씨와 인생그래프를 그려볼 기회가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무언가를 기록하고 남겨두는 것을 즐긴 감자씨. 인생그래프는 식은 죽 먹기였다. 사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 삶을 돌아보고자 혼자서도 가끔 그려보곤 했다. 


성인이 된 이후론 나만을 위한 여유 시간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일하러 다니랴 콩자씨 만나랴 친구들 만나랴.. 나 하나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기 어려운 삶이 되었다. 일기를 써오곤 있었지만 그 시간으론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가끔은 아무 일 없이 남는 시간이 생기는데, 그럴 때면 나는 늘 집 근처 카페로 향했다. 준비물은 종이와 볼펜, 커피 사 먹을 돈. 그 정도면 충분하다. 감자씨의 머리 속은 뛰어나지 않기에, 글로 적으며 생각을 다듬고 적은 글을 눈으로 보며 머릿속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카페에 가서는 주로 최근 드는 생각과 감정들, 최근 가진 고민들, 앞으로의 삶의 방향, 이전에 목표하던 것은 이루었는지, 콩자씨의 진로를 어찌할지 등 앞으로의 삶들을 생각하며 기록했다. 혹은 지난 내 삶을 돌아보며 여태까지 써온 일기장을 읽어보기도 하고, 내 일대기를 적어가며 나의 짧은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도 가져봤었다.


나름대로의 매듭짓기였다. ENFJ라는 성품을 타고난 나는, 이상적이고 계획적인 포테이토이기에 분기별로 실적을 정리하는 것마냥 이런 식으로 내 삶의 매듭을 지어왔다. 이렇게 매듭을 지을 때면 꼭 느꼈던 것이 두가지 정도가 있었다. 


난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 내 매듭의 첫번째 교훈이다. 나는 남이 시키는 것이 아닌, 내가 하려 했던 일들은 꼭 이뤄내는 사람이었다. 다만 조건이 좀 붙는다. 사회적인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내 마음에 대해 솔직한 상태에서 우러나온 소망들이어야 한다. 그런 소망들은 어떻게든 꼭 성취해왔었다. 


나를 놀리는 이 친구보단 공부를 잘해보겠어! 

내 친구를 괴롭히는 애들은 혼쭐 내주겠어!

운동부에 들어가 꼭 대회에 나가보겠어!

꼭 소방관이 되고 말겠어!


소망이라기엔 작기도 하지만, 그 당시 감자에겐 온 세상을 덮은 중대 소망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학원을 다녀 성적을 엄청나게 올려보고, 괴롭힘당하는 친구를 도우려 의롭게 맞서며 의리도 지켜봤다. 또 학교에서 진행한 축구와 프리테니스, 티볼 방과 후 프로그램에 참여해 밤낮으로 연습하며 학교 대표 선수도 되어도 봤고, 처음으로 가진 꿈을 이루고자 몇 년간 쌓아온 공부를 뒤로하고 공무원 공부에 매진해 한 번 만에 소방에 합격해 보기도 했다. 

고등 졸업사진입니다. 불합격하면 어쩌려고 이랬을까요

역시 감자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었다. 


매듭짓기에서 느낀 것이 또 하나 있다면 그건 난 인복이 참 많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늘 중요한 순간엔 나를 위해 힘써주는 분들이 있었다. 함께 놀던 친구들부터 동네 형들, 선생님들 등등 정말 많은 분들이 있었다. 


성적 올리겠다고 학원을 다니고 싶다는 말에 주저 없이 학원을 등록해 주신 부모님, 의롭게 친구를 지켜주려다 되레 상처받은 나를 꼭 안아주시며 칭찬해 주신 초등 담임선생님, 학교 대표 선수가 되어보겠다고 열심히 하는 나를 위해 밤까지 학교에 남아 함께 코치해 주신 체육 선생님, 부족하지 않은 고등 성적을 제쳐두고 대학 대신 소방을 준비하고 싶다는 어린 아들의 결심을 적극적으로 믿고 지원해 주신 부모님. 


단 하나도 나 혼자 해낸 일이 없었다.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었던 감자의 배후에는, 온통 감자의 사람들이 함께 했던 것이다. 물론 내 노력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들이지만 주변 분들의 도움 없인 시작조차 못했을 일들이 참 많았다. 몇 번이고 돌아본 나의 매듭에는 내가 아닌 내 사람들이 가득했던 것이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일기를 써오고 있다. 매일 부지런히 써오진 못했지만 그 시절 나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의 기록은 써두었다. 일기를 쓰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갔고 그런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이젠 일기 덕에, 나와 함께 있어준 분들께 감사할 줄 아는 것 또한 배우고 있다.


과거 없는 현재 없고, 현재 없는 미래도 없다. 아무리 바빠도 내가 살아온 삶을 복기해보며 나의 과거를 보듬어 봐야하지 않을까. 바쁘게 지나가는 오늘을 살아가다 보면, 가장 잘 알고 있어야할 나를 그냥 지나치게 된다. 일도 해야하고 연애도 해야하고 놀기도 놀아야 하는 우리에겐 사치일 수 있지만, 이만한 자기계발이 또 어디 있나 생각이 든다.


내 인생그래프는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방황하던 중학생 시절 이후론 행복의 한계도 모른 채 상향 중인 내 인생이다. 점을 찍어 내 삶의 기점들, 매듭들을 적어갈 때면 감사한 분들의 이름들이 촤라락 펼쳐지며 옛생각에 잠길 수 있어 다행이다.


이제는 지금도 상향중일 내 인생을 마주하며, 지금도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을 생각할줄도 알아야겠음을 절감했다. 


내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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