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을 맞아 안부 인사를 돌렸다.
새해 복을 전하며 정말 많이 들은 말이 있다.
‘감자 니 나이 때가 참 좋았는데!’
아직은 젊고 어린 축에 속하는 내겐, 그저 안부 인사정도로 받아들인 말이었다. 그럼에도 자꾸 듣다보니 지금의 내 나이가 과연 뭘까 싶기도 하다.
또 새해를 맞아 일본 출신이신 어머니 덕에 가족들과 함께 외갓집인 일본에 다녀왔는데, 코로나 이전인 스무살 이후 참 오래간만이었다. 고향이 시골 지방이셔서 그런지 공항도 그렇고 사람도, 도로도, 상점들도 어디 하나 바뀐 것 없이 몇 년 전 모두 그대로였다. 바뀐 것이 있다면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내 눈이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 젊은 사람들은 어디로 바삐 향하고 있는지,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지, 지나가는 차의 cc는 얼마인지, 일본 사람들의 여가 생활은 어떤 것인지 등, 스무살 이후 갖게 된 내 삶 속 여러 관심사와 경험들이 내 눈을 바꿔놓은 듯했다.
'감자 니 나이 때가 좋았는데!'
어른 말 틀린 것 하나 없다는데, 이 말도 참말임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내 스무살 때가 참 좋았던 것 같다. 열심히 공부하고 뭐든 성취해야 했던 조급함에서 벗어나, 여유와 행복을 처음으로 느끼고 배운 때가 스무살이 되던 해였다. 그 모든 것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에서 시작됐다.
꽃이 뭔지 나무가 뭔지 관심도 없던 내가, 봄내음이 난다는 말을 처음으로 이해하고 녹음과 초록의 우거짐을 느껴도 보고, 시원한 가을 냄새가 뭔지 알게 되고 공기가 차가워지는 시기를 즐기는 법도 알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 이후로는, 자연에서 오는 감정들과 여운들이 가장 오래 가는 듯하다.
이런 말을 꺼낼 때면 곧장 콩자에게 할아버지 취급을 받게 되지만.. 산과 바다와 나무와 꽃이 좋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늘 자연을 느끼고 즐기는 데엔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 그냥 기분이 좋아지고 그냥 충전이 되고 그냥 그렇게 된 것이지,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다’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닐까!
자연을 통해 겸손해지기도 하고 깊어지기도 하고 그런다. 그렇게 자연스러워지면 늘 여유가 생겼고, 여유가 생기면 시야가 넓어졌고 시야가 트이니 모든 일에 힘을 빼고 마음과 생각을 쓸 수 있었다. 이 자체로도 내 삶에 스스로 자연스러워진 것이지 않을까.
책에서 누가 그러길 일본은 사찰의 나라, 중국은 정원의 나라, 한국은 산사의 나라라고 했다. 아기자기 이쁘게 꾸며진 일본의 사찰도 예쁘고 웅장한 위압감을 주는 중국의 정원도 멋드러지지만, 자연에 적응하고 어우러져 만들어진 산 속 절들이 난 더 마음과 가까운 것 같다. 물론 산 속에 절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곤 있지만, 그 역사로부터 우린 자연을 대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예로부터 자연과 어우러져 자연을 노래하고 사랑해온 우리 선조님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젠 사진을 찍어도 컨셉을 잡고 찍기보단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좋다. 얼굴에 주름이 잡히게 환히 웃으며 잇몸이 모두 보일정도로 자연스레 미소 짓는 사진에 더 마음이 가게 되었다. 그렇게 찍힌 사진에 한번 더 시선이 가고 애정이 가는 것도 참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런 자연바라기 나를 따라서 남들에게 비치는 자랑거리 사진보다, 그 순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담을 수 있는 사진을 콩자씨께서도 좋아졌다고 한다. 그런 콩자를 보면서도 자연스러운 이끌림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만 살고 싶다
자연 스럽게, 자연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