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워! 어제 모래놀이 했다며! 다른 거 입고 가."
"싫어! 그냥 이거 입을 거야!"
엄마가 다가오자 뒤로 물러서며 고함치듯 소리쳤다.
엄마가 놀랐는지 그 자리에서 멈춰 서며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그래! 그럼 그냥 입고 가."
입고 가라고 말씀하셨지만 어쩐지 표정이 좋아 보이진 않으셨다.
엄마와는 다르게 선생님이나 친구들은 내가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진 못했다.
다만, 유래가 "이게 무슨 냄새지?" 하며 가끔 킁킁대긴 했지만 유래도 눈치채진 못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기 전, 유래가 다가서며 물었다.
"야! 한재훈! 괴물 어떻게 됐어? 아직 있어?"
"응, 아직 있어! 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 반쯤 감긴 눈으로 유래를 쳐다보며 물었다.
"왜! 그런 눈으로 봐. 아무 말 안 했어. 믿어도 돼! 그런데 아까부터 이게 무슨 냄새지? 야, 한재훈, 이상한 냄새 안 나니?"
유래가 또다시 킁킁거리며 말했다.
"사실 말이야~ 이것도 비밀인데... 너!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돼!"
유래를 노려보며 말했다.
"뭐가? 뭔데? 알았어, 말 안 할게."
"사실은 나 며칠째 같은 옷 입고 있어. 어쩌면 네가 이상하다는 냄새, 나한테 나는 걸지도 몰라!"
"뭐!!! 왜? 더럽게... 갈아입어. 냄새나잖아!"
"안 돼! 빨랫감이 늘어나면 녀석은 우리 집을 떠나지 않고 계속 있을 거야. 그리고 엄마 말로는 그 녀석이 생각보다 위험하다 하더라고. 손이 감겨 끊어질 수도 있대...."
"와~ 그러면 어떡해…. 너는 무섭지 않아?"
"무섭지! 그래서 옷을 갈아입지 않는 거야. 먹이가 없으면 굶어 죽던지, 아니면 우리 집을 나갈 수도 있잖아!"
"와~ 좋은 방법이다. 나도 도와줄까?"
"뭐! 어떻게 도와준다는 거야?"
"생각해 봐. 빨래는 너 말고도 엄마, 아빠 것도 있지 않겠어? 만약 너네 엄마가 녀석에게 또다시 빨래 먹이를 주신다면...."
"안 돼! 그러면 안 되지."
"거 봐! 내 도움이 필요하겠지? 하하하! 이제부터 우리는 한 팀이야. 알겠지?"
유래가 으스대며 말했고, 나는 유래의 제안을 받아들여 오늘부터 우리 집 빨래 바구니를 숨기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유래가 집으로 들어서며 인사했다.
"어머~ 유래구나! 어서 와~ 엄마는? 혼자 온 거니? 간식 좀 줄까?"
오랜만에 집에 온 유래에게 엄마는 쉬지 않고 질문만 하셨다.
"괜찮아요. 그보다 엄마에게 아직 말하지 않았는데 전화 좀 해 주시겠어요?"
유래가 나를 힐끗 쳐다보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엄마가 전화하는 동안 발코니로 나가 그곳에 모아둔 빨래를 재빨리 내 방 침대 아래에 숨기는 데 성공했다.
방에서 나오는 내 모습을 보던 유래가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윙크를 했고, 그 모습을 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우리의 계획은 진작에 성공했지만 엄마는 여전히 통화 중이었다.
우리가 지루해할 무렵, 위층에 사는 유래 엄마가 찾아왔고 유래는 엄마와 함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엄마는 유래가 돌아간 후에도 빨래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오히려 그 사실을 먼저 알아차린 건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였다.
"여보~ 빨래 어디 갔어? 빨았어?"
집에 돌아온 아빠가 갈아입은 옷을 빨래 바구니에 담으며 물으셨다.
"바구니에 있겠지. 왜요?"
"아무래도 열쇠를 주머니에 둔 것 같은데 보이지 않네."
"잘 찾아봐요! 바구니에.... 어머!!! 빨래가 다 어디 갔지?"
엄마가 아빠를 쳐다보며 말했다.
"뭐야~ 벌써 치매라도 걸린 거야?"
아빠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 분명 여기 있었는데...."
두리번거리던 엄마가 화장실 쪽으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화장실에 있는 괴물의 입을 열고 녀석의 입안을 들여다보며, "거참! 이상하다~"하고 말씀하셨다.
엄마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결국 엄마는 내가 숨겨둔 빨래를 찾지 못하신 채 저녁상을 차리셨다.
밥을 먹으면서도 안방과 내 방을 열어 보셨지만 찾지 못했고,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며칠만 이렇게 하면 배고픈 괴물이 우리 집을 떠날 거로 생각하니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그날 밤, 평소처럼 엄마가 내 방으로 들어와 내가 잠들 때까지 동화책을 읽어 주셨다.
그러다 침대 밖으로 삐죽 드러난 아빠의 바짓단을 보셨다.
"어머! 이게 뭐야? 재훈아! 이게 왜? 여기 있니? 혹시 네가 숨겼니?"
엄마가 나직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순간 가슴이 콩닥거리며 숨이 가빠졌다.
"응!... 그게...."
나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울지 마! 아직 엄마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어! 이 빨래 왜 숨긴 거야?"
엄마는 분명 묻고 있었지만, 나는 다그치는 것처럼 느껴져 두렵고 무서워 나도 모르게 딸꾹질이 나왔다.
"죄송 딸꾹 해요."
간신히 목구멍을 빠져나온 첫마디가 딸꾹거리는 소리와 뒤엉켜 제대로 발음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엄마는 나의 말을 잘 알아들으셨다.
"재훈아! 엄마가 야단치려고 그러는 게 아니야! 단지 왜 빨래를 숨겼는지 궁금해서 묻는 거야. 엄마 눈빛이 무서웠구나! 그렇다면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나를 안으며 말했다.
"괴물... 괴물을 물리치려고 그랬어요." 엄마 품에 안긴 채 여전히 울먹이며 말했다.
"괴물? 무슨 괴물?"
엄마는 나를 살짝 밀어내어 내 눈을 보며 말씀하셨다.
"그게... 세탁기 괴물이요... 양말도 먹고, 손도 부러질 수 있다는....“
"하하하!"
엄마는 큰 소리로 웃으며 나를 한동안 꼭 안고 계시다 한참 후에야 내게 말을 걸었다.
"아들! 진짜 세탁기가 괴물이라고 생각한 거야?"
나는 엄마의 질문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빨래는 왜 감춘 거야?"
"먹이를 주지 않으면 배고파서 우리 집에서 나갈까 봐...."
"하하하! 그러면 너 혹시 그래서 옷을 안 갈아입은 거야?"
"응."
"와~ 우리 아들 멋진 걸! 맞서 싸울 줄도 알고, 이제 학교 가도 되겠다. 오늘 보니까 우리 아들 형아가 다 됐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엄마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 무서웠을 텐데 이겨내는 법도 알고... 너무 멋지다."
엄마의 칭찬이 이어지자 부끄럽기도 했고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재훈아! 세탁기는 괴물이 아니야. 그냥 오래된 기계라서 그런 거야. 그리고 손이 부러진다는 말은 네가 조심하라는 뜻으로 한 거였어."
엄마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엄마를 쳐다봤다.
"정말?"
"그럼. 그리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혼자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엄마 아빠에게 솔직히 이야기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이야. 가족은 서로 돕는 거야! 아이고 그동안 얼마나 무서웠겠니."
이번에도 엄마가 날 안으며 말씀하셨다.
"다음부턴 상의하는 거다. 그럴 수 있지?" 엄마가 내 등을 토닥이며 말씀하셨다.
"네, 다음엔 그렇게 할게요."
"그래, 엄마도 앞으로는 조심할게. 고맙고 사랑해~" 엄마가 다시 한번 나를 꼭 안으며 말씀하셨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 집엔 새로운 세탁기가 들어왔다.
세탁기가 들어오던 날 엄마는 "새로운 괴물이야. 인사해!" 하며 웃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