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하면 좋을까?
길고 긴 시간 동안 간절히 원했던 수학교사가 됐다. 힘든 길이었지만 정말 이루고 싶은 꿈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학, 수학을 가르치는 나, 그리고 수학을 배우길 원하는 학생들. 학원강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은 완벽했다. 그렇게 공급-수요가 아름답게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작년 나는 공립교사가 되었다. 내 원동력이었던 '학생들의 수요'는 이제 없다. 학교 학생들은, 수학을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강제로 내 수업을 들어야한다. 그리고 나는 1년간 새로운 대전제를 배웠다.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은 극소수다. 대부분 수학을 싫어한다". 사실 이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내가 수학을 좋아하기에 마음으로는 외면했을지도.
내 학교는 경기도 구석에 있는 평범한 중학교다. 40%의 학생들은 수업 내용을 따라오지 못한다. 분수 계산도 못하는데, 분수가 있는 일차방정식을 어떻게 가르쳐야하지? 그나마 중1은 형편이 낫다. 피라미드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좁아진다. 중2, 중3이 될수록 낙오되는 학생들은 많아진다.
신규의 패기로 한명 한명 챙겨보려고 발악을 했다. 또래교사도 도입하고, 개별지도도 다 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선수학습의 결손, 그건 너무 치명적이고 해결 불가능한 문제 같다. 단순히 학습속도가 느린 것이면 커버가능하다. 그런게 그게 아니라, 학습이 아예 불가능하다. 수학을 공부해보려는 의지를 다잡아도, 머지않아 포기해버린다. 너무 안타깝다. 이런 학생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자, 탐구활동이랑 놀이활동을 엄청나게 했다. 그런 활동할 때면, 학생들의 표정이 굉장히 즐겁다. 눈에 생기가 돈다. 하지만 결국 형식적인 내용을 지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때의 고통스러운 표정에서 오는 괴리감은 참 힘들다. 그 학생들의 심정을 헤아려보자면, 나를 책상에 앉혀놓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독일어 원전 철학강의를 하는 꼴이겠지. 그렇다고 탐구활동을 늘리기엔 시수가 부족하다. 탐구활동과 문제풀이,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한다.
원래 수학을 좋아하거나, 조금이라도 해보려는 의지가 있는 학생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 "쌤 수업 너무 좋아요"라고 이야기 해줄 땐, '내가 이러려고 교사 됐지'라며 뿌듯한 순간도 많다. 하지만 언제나 소외되는 학생들이 더 눈에 밟힌다. 그런 학생들을 강제로 내 앞에 앉혀두고 수업하자니, '내가 얘들을 고문하고 있나?'라는 현타가 강하게 왔다. 나는 학생들에게 기쁨을 주려 수학교사가 됐는데, 오히려 그 학생들의 시간과 꿈을 빼앗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괴로웠다. 이거야말로 다수를 위해 소수를 탄압하는 꼴이 아닐까? 사실 그 학생들을 못본 채 하고, 내 하고 싶은대로 수업을 하면, 내가 꾸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즐거울 것이고,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의 니즈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안된다. 그렇게 해서도 안될거고. 괴롭다.
내가 수학교사가 아니라, 음악교사나 도덕교사였으면 차라리 좋았을까 싶다. 그럼 적어도 그런 학생이 내 책임 하에 있지는 않을테니까.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인생 처음 수학 권태기가 왔다. 나를 지탱해주던 다리 하나가 무너지니, '수학교육자'라는 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수준별 수업이 사라진 지금 학교에서 무얼 어떻게 해야하지?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온다. 수학처럼 답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