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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 Feb 17. 2023

나는 교사 자아를 죽였다

1년동안 학교일을 해본 결과, 느낀점은 '미치도록 힘들다'이다.


나름 멘탈이 세다고 자부해왔는데, 이건 어지간해서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우리 반에만 학폭 6건이 있었고, 여기에 따르는 학부모민원 때문에 정말 죽음의 한 해를 보냈다. 여기에 과한 행정업무 + 다학년 수업까지 겹치니... 


'나니까 이정도 버티는거야'라고, 나를 채찍질해가면서 1년을 버텼다.


겉으로 티는 안내는지라, 주변 선생님들이 '선생님은 참 차분하게 잘 대처하시는 것 같아요'라고 칭찬 세례도 받았다. 정말 도움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속은 곪을대로 곪아있었다. 그러나 곪은 속은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들여다보면 교사로서 더 이상 못 버틸 것 같으니까.


그리고 힘들어하는 날 보고 선배교사가 조언하길...


'집 가면 학교 생각은 일절 하지 마세요. 학교와 일상생활의 나를 분리하고 사세요. 그래야 버텨요'


나는 한 동안 이 조언을 따랐다. 마치 스위치를 On/Off하듯, 퇴근길 차 안에서 내 자아를 갈아끼웠다. '교사 자아'에서 '일상 자아'로. 내 방에는 학교와 관련된 물품을 다 치워버렸다. 심지어, 아이패드 케이스까지도 다른 색깔로, 학교용/가정용으로 분리해놓았다. 수업 때 쓰던 케이스를 집에서 보면 학교생각이 나니까. 집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아이패드 케이스 갈아끼우기였다. 내 자아를 완전히 갈아끼웠다는 상징적인 행동이었다. 혹여나 학교 관련된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밟아서 찌그러뜨렸다. 


이 방법은 나름 효과적이었다. 학교에선 학교일에만 완벽히 집중하고, 집에서는 학교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이게 바로 워라밸인가?'라고 느끼며 뿌듯했다. 학교에서의 능률도 오히려 올라갔다. 학교 일을 잘 버텨낼 방법을 찾은 것 같았다.


근데 문제점은, 여기서 교사로서의 발전은 이제 멈춰버렸다는 점이었다. 이제 학교는 내 일상의 '적군'이 되어버렸다. 퇴근 후에는, '수학'과 '교육'이란 단어는 내 눈 앞에서 치워버렸다. 독서랑 재테크 공부만 했다. 학교를 때려치우고, 부동산으로 부자가 된 나를 망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교사인 나'와 '일상생활의 나'는 아예 다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아 분리는 얼마 전까지도 지속되었다. 나는 1월 내내 학교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교사였던 것도 까먹어버렸다. 학교 일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학교에서 일하는 나'는 아예 다른 사람인 것 같다.


2월쯤 되니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슬슬 들었다. 그리고 위기감에, 얼마 전에 뭐라도 해야겠다싶어 '교사 상처'라는 책을 꺼내들었다. 정신과의사가 쓴 교사 상담 책인데, 여기에서 교사들이 '해리'라는 방어기제를 쓴다고 설명해주었다. 많은 교사들이 나처럼 힘들어하고, '교사 자아'와 '일상 자아'를 이중인격자처럼 갈아끼우면서 생활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건 교사 생활의 상처로 인해 나온 방어기제였다는 것이다. 내 상처를 돌보지 않은 죄. 해리.


어느 날, 집에서 침대에 누워 쉬다가, 학교에서 온 문자 하나에 머리에 '꽝'하는 느낌이 났다. 사실 별 내용도 아니었는데, 내가 짓밟아놓았던 교사 자아가 '나 꺼내줘'하면서 내 머리를 쾅쾅 두들긴 것이었다. 난 여기서 '해리'의 한계를 느꼈다.


이제 다시 조금 혼란스럽다. 앞으로 평생 이렇게 자아를 분리하면서 살 것인가? 내가 원하던 삶이 이게 맞나? 평생 학교에서 상처받고 평생 방어기제 속에서 살아가야하나? 


그러다가 얼마 전에 '경자쌤'이라는 블로그를 알게 되었다. 생산자로서의 교사의 삶을 사시는 분이었다. 체계적인 방법을 가지고, '교사 자아'로서 자아실현과 부를 향해 나아가시는 분을 보고 많이 흔들렸다. 그 분의 글을 읽고, 임용시험 이후로 오랜만에 다시 가슴이 두근댔다. 나도 저 길을 걷고 싶다, 하지만 그러려면 자아의 분리는 이제 포기해야한다. '교사 자아'를 내 일상으로 더 끌고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더욱 '교사 상처'를 잘 다듬어야한다. 


어쨌튼, 이 시점에서 나에게 다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쎈 척 하느라 힘 빼지 말고, 다시 잘 해보자. 교사로서의 부담감은 좀 내려놓고, 내 교사 상처도 잘 보듬어주고, 교사인 나도 조금 다시 사랑해주자.


신규 1년이 끝나면서 내 교사 자아는 완전히 죽어버렸는데, <교사상처> 책과 경자쌤 덕분에 다시 1년을 보낼 힘을 얻은 것 같다. 그리고 지난 1년간 모질게 굴었던 내 교사 자아에게 위로를 보낸다. 센 척 하면서 많이 힘들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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