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가 일상이 된 30대 직장인의 첫 달리기 이야기.
2018년 7월 14일 토요일.
나의 첫 달리기가 기록되어 있는 날이다.
그날은 나의 머릿속에 아직까지도 꽤나 잘 기억 남아있다. 신기하게도.
1살 어린 친구들 2명, 몇 살 더 많은 30대 형님 1명,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 4명은 처음으로 같이 '달리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시작했다.
평소 악기하면서 같이 술이나 마시던 우리가,
왜 그랬을까?
[발단]
달리기 이야기가 나온 것은, 당연하게도, 술집이었다.
B라는 친구는 평소 운동을 많이 했었다. 덩치도 나름 있으며, 그때 당시 '철인 3종'이란 걸 준비했었다.
나와 B, 그리고 경찰이 직업인 친구 셋이서 맥주를 마시며 B가 준비 중인 철인 3종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3종이 달리기, 자전거, 수영 이란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처음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세계에 빠지는 순간이다. 어떠한 세계라도 그 세계의 깊이는 어마무시한데, 그 첫 순간에는 깊이를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그런 무지의 상태. 그런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간접적인 첫 경험이다.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경찰이 직업인 친구도 운동에 관해서는 꽤나 자신 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 친구는 이전 사진은 꽤나 살집이 있었다. 경찰을 준비하면서부터 운동을 하고, 그때 당시(지금도) 꽤나 탄탄한 몸을 가졌었다. 경찰이 되어서도 꾸준히 운동하는 그런 친구였으니, 운동 이야기는 그 친구에게도 친숙했다. 그런 흘러가는 운동이야기에, 나는 아는 체 할 수 없었다. 안 했으니까.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저 모르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물어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으레 나오는 이야기 마냥, 마치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친 친하지 않은 친구에게 밥 한번 먹자는 말처럼, 같이 달리자는 말이 나왔다. 찰나의 그 말, 그런데 난 왠지 모르게 설레었었다. 그리고 우리는 맥주를 다 마셨다.
[전개]
맥주 마시던 자리에는 없던 형님이 연락이 왔다. 아닌가, 마주쳤었나. 기억은 흐리지만, B에게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같이 뛰어보자. 재밌지 않겠냐? B만 믿고 뛰면 돼!'
같이 뛰자는 의지가 강해 보였다. 으레 하는 말로 지나 보내기 싫은 느낌이었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나도 그랬다. 정말 가자고, 정말 뛰자고.
사실 우리 4명이 엄청 오래되거나 친했던 멤버는 아니다. 아마도 우리 4명은 B라는 친구와 각자 더 친했던 것 같다. 깊은 유대관계가 형성되기 이전의 시점이었고, 그 말은 누구 하나가 떨떠름하거나, 뛰자는 약속을 취소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을 것인 시점. 그리고 그랬다면 사기가 꺾여 애초에 뛰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B의 달리기 제안에 각자 4명은 아마 설레었던 것 같다. 이유 모를 설렘과 새로운 도전이라는 느낌.
우리는 이촌 한강공원에서 정말 모였다.
[위기]
어색하다. 평소에는 악기 합주를 하기 위해(오케스트라 멤버들이었다.) 매주 화요일에 만나던 멤버들이, 토요일 주말 저녁 7시 30분에 나타나니, 어색하다. 매일 회사에서 보던 사람들과 주말 등산을 가는 느낌일까?
B는 대장이었다. 우리는 모두 B만 바라본다. B는 스트레칭을 주도하고, 코스를 계획해 왔으며, 나이키 어플 설치와 실행법까지 알려주었다. 같이 달리기 위한 노력들을 혼자 하였으니, 나이가 어려도 대장이었다. 거리도, 반환점도, 속도도 오직 B에게 의지하는 달리기가 될 예정이었다. 내가 할 일은 달리기를 하는 것이고, 달리는 것을 처음으로 느껴보는 것이었다.
이촌 한강공원 편의점을 지나 서쪽방향 한강을 따라 조금 걷다가 달릴 예정이었다. 거리는 6km.
뛰어본 적 없는 몸뚱이로 6km를 달린다는 것은 '위기'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뛰기 전에는 몰랐다. 6km라는 숫자는 가늠해 본 적도, 가늠할 일도 없는 숫자이기 때문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신기하다.
여름밤 한강의 야경을 달리며 본다는 것, 신기한 벅차오름이 느껴졌다.
단, 이 벅차오름은 순간이고 달리는 초반에만 오고 이내 가버린다.
그리고 이후는 줄곧 위기이다.
우리는 3km에서 반환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3km는 언제 오는가? 내면은 생각으로 가득 찬다. 오직 힘들다는 생각으로만. 반도 오지 않았는데, 나의 몸은 힘들다고 한다. 고로 6km를 달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합리적인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계속 달린다. 우리 4명은 다들 달린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서 뒤처지거나 포기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다들 같은 생각이었을까?
반환을 하는 순간 더 절망적이다. 나는 체력이 다 했는데, 온만큼 가야 한다고? 말도 안 된다. 또 한 번 합리적 결과를 도출하고, 이 악물고 달린다. 왜였을까? 다들 왜 그랬을까?
시작을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달리기는 새로운 도전이었고 우리끼리의 약속이었다. 미미할지라도, 그리고 그날 하루뿐일지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 다들 그랬을 것 같다.
그렇게 멈추고 싶지만 멈추기 싫다는 생각을 반복하며 달리다 보니, 6km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B는 매서웠고, 걸었던 곳까지, 처음 모였던 곳까지 모두 달려가야 한다고. 우리를 채찍질했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미미한 도전을 끝내기 위해, 끝까지 달렸다. 모두가 달렸다.
[결말]
거리 6.18km / 시간 40:05 / 평균 페이스 6'29''
달리기가 끝난 직후는 처음 느껴보던 고통이었다.
배 근육인가? 허파인가? 폐인가? 뭔지 모를 고통. 숨쉬기가 힘든 고통.
숨은 차고 머리는 어지럽고 얼굴은 열이 나면서 정신이 없었다.
너무 힘들어.
......
이상하다.
5분도 되지 않아, 숨이 점차 가라앉고 복부의 고통은 사라지고 있었다.
이렇게나 빨리?
40분간 달렸는데 5분 만에 숨이 괜찮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내 찾아온다.
뿌듯함.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뿌듯함, 우리가 해냈다는 뿌듯함. 서로 자화자찬을 했다. 이게 뭐라고.
그리고 서로에게 이상한 유대감을 느꼈다. 달리면서 고통스러웠고 힘들었을 서로에게 고생했다고, 수고했다고, 너무 잘했다고 말을 건네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렇게 나의 첫 달리기가 끝났다.
달리기는 나에게 이제는 일상이다. 집 앞의 석촌호수는 내 달리기 트랙이고, 제주도는 여행지이자 새로운 달리기 코스이다. 잘 달리거나 빨리 달리지는 못하더라도, 나만의 속도를 가지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즐기며 달렸다.
첫 6km의 달리기는 강렬했다. 힘든 느낌도, 뿌듯한 느낌도, 서로 함께한다는 느낌도. 모두 새로웠고 인상 깊었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미미한 달리기는, 지금 마라톤 full course 도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나는 천천히 달리고 명상하는 약사로서 살아가고 있다.
약사로서, 달리는 사람으로서, 명상과 요가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가끔 악기를 켜는 사람으로서의 다양한 세계에 대한 느낌과 즐거움을 기록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