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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fety Jay Sep 16. 2023

가족의 영국 유학기 #8: 영어 공포

두 살 아기와 함께한 어쩌다 영국유학


먼 한국 땅을 떠나 새로운 땅에 발을 디디며, 우리 가족은 마치 새로운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것처럼 새로운 삶을 각자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의 학교 수업이 시작했고, 그 이후에 Nursery로부터 주 2회 오후반 티오가 생겨서 딸의 등원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몇 달 뒤에 주 3일 종일반으로  딸아이의 등원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아내는 시내에 있는 영어학원을 등록하였다. 이러한 초창기는 우리 가족들 모두 영어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는 시기였던 것 같다. 분명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들리지 않는, 심지어 한국에서는 들리던 것이 여기서는 들리지 않는 상황, 그리고 이런 우리를 답답한 시선으로 바라보진 않을지 걱정이 스믈 스면 피어오르는 상황. 이 모든 것들이 아마도 나처럼 영포자가 가족들과 영어권 국가에 유학생활을 시작할 때 겪는 비슷하게 겪는 어려움일지도 모르겠다.


귀머거리 영어

우선 나 같은 경우는 영어로 학교의 수업을 따라간다는 것이 낯설고 어려웠다. 나름 토익도 공부하고 아이엘츠도 공부해서 그래도 어느 정도는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현실은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하는 이야기들 대부분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 태반이었다는 점이다. 교수님과 다른 영국 학생들과 주고받는 대화는 나에게는 먼 거리에서 들리는 속삭임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언어의 장벽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높고 험난했으며, 그 순간 나 자신이 얼마나 외롭고 헤매고 있는지를 수없이 깨닫게 되었다. 학기시작 초에는 이런저런 행정적 처리를 할 일이 많이 있는데, 행정 업무를 처리해 주는 스텝과 대화를 하는 경우 나의 목적이 분명하고 상황적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화를 이해하지 못해 그냥 예스 예스만 하고 알아들은 척하고 나온 경우가 허다했다


영어 벙어리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역시나 스피킹이었다. 물론 대학원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수하기 위해서는 에세이, 논문을 잘 쓰는 것이 필수기에 라이팅을 전략적으로 최우선시하여 준비하였지만, 이를 핑계로 스피킹 공부는 일도 하지 않는 나의 명백한 과오임이 분명했다. 그래도 아이엘츠를 하면서 스피킹시험도 쳐봤는데, 시간이 지나면 금방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큰 착각이었다. 아마 아이엘츠 스피킹 시험은 어느 정도 예상질문에 대응하기 유리한 패턴을 만들고 숙지해서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었지만, 실전은 전혀 달랐다. 덕분에 어린 영국 대학원생들 사이에서 난 그저 영어 벙어리 동양인 아저씨 유학생일 뿐이었다. 그중에서도 상황마다 내가 느껴지는 감정과 어떤 이슈에 대한 견해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이야기할 때마다, 버벅거리고 부정확한 나의 발음, 휘발성 강한 내 두뇌의 영어단어 등으로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웠고 이것이 나를 힘들게 했다. 특히 토론, 프로젝트 시간에는 대화가 잘 안 통하는 내가 답답해서 그런지 다른 영국 학생들은 나와 한조가 되는 것을 크게 달가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쉬는 시간에 내 옆자리에 있던 학생들이 다른 자리로 옮기는 경우도 있었다. 대학생 때는 영어를 못해도 배낭여행 다니며 손짓, 발짓하며 잘 떠들고 다녔던 나였는데, 유학생인 나의 모습은 자신감은 상실한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쭈구리가 된 모습이었다. 나 자신이 안쓰럽기도 하고, 창피했다. 


그러던 중 나의 첫 난관이 찾아왔다. 바로 프레젠테이션 발표였다. 참고로 난 사람들 앞에서 영어를 뱉어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스스로 만든 고통 성장을 이끌어 낸다


처음에 프레젠테이션을 할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팠다. 문장을 달달 외워서 한다 하더라도, 사람들 앞에 서면 외어놓은 문장은 증발해 버릴 것만 같았고, 핵심만 정리해 놓고 그것을 토대로 즉흥적으로 하자니, 나의 영어실력이 걸림돌이 되었다. 교수님은 프레젠테이션의 목적이 정보전달뿐만 아니라, 인풋 된 지식의 아웃풋 과정을 통해 재난관리에 대한 전문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과정이므로 나에게 대본이나 PPT를 그대로 읽지 말고, 핵심 단어만 노트에 적어서 보면서 발표하는 방식을 권고하셨다. 나는 이번에 프레젠테이션을 망친다면 자존심과 자존감은 나에게서 멀리 달아나 남은 유학생활을 전체가 망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발표할 모든 내용을 영어로 작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분이라는 발표시간 안에 적합하도록 내용을 간단하게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만든 대본을 달달 외워서 몇 날 며칠을 밤을 새 가며 발표연습을 하였다. 심지어 PPT는 핵심 단어위주로 간결하게 작성하여 나 스스로가 PPT에 담긴 내용을 뻐꾸기처럼 읽어내는 상황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버렸다. 발표 이틀전날, 교수님은 나에게 준비가 잘되고 있냐고 물어보셨다, 난 준비도 충분히 했지만 영어로 말하는 게 어렵다고 속직히 말씀드렸다. 나 스스로를 냉혹하게 대하기 위해 PPT에는 문장이 아닌 핵심 키워드와 사진을 첨부하였다는 말씀도 드렸다. 교수님은 내 어깨를 툭치며 행운을 빈다고 말씀해 주셨다.


드디어 발표 날, 교수님께서 누가 먼저 발표할지 희망자를 찾기 시작하셨다. 난 토론을 좋아하는 영국문화 특성상 서로가 먼저 하겠다고 호들갑을 떨 줄 알았지만, 원어민 학생들은 발표를 먼저 하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희망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유학생 아저씨인 내가 먼저 하겠다고 교수님께 말씀을 드렸다. 그 순간 강의실에서는 모두들 놀랐는지 탄성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한다는 게 이 정도로 놀랄 일인가 의아했지만, 일단 발표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차분히 발표를 하기 시작했다. 이때 내 목소리와 몸이 살짝 지속적으로 떨리긴 했는데, 아무래도 긴장을 하긴 했나 보다. 그래도 내가 달달 외었던 문장들을 완벽히 발표하진 못했고, 발음도 엉망진창이었지만, 시간을 초과하지 않고 꾸역꾸역 삐질삐질해 나가며 무사히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교수님은 내 PPT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라며 칭찬을 해주셨다. 비록 나의 영어는 부족했지만, 텍스트를 읽지 않고 정보를 전달하려고 노력한 점도 좋았다고 말씀해 주셨다. 지난 2주간 발표준비를 한 시간이 아깝지 않았고, 오히려 앞으로 내가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후 유학생활동안 7번 정도의 발표가 있었는데, 큰 문제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나의 영어실력이 드라마틱하게 갑자기 늘진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대학원의 꽃 에세이


내가 유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붓게 된 것은 논문과 에세이였다. 거의 한 달에 두세 개 이상의 장문의 에세이를 작성해야만 했는데, 라이팅 속도가 느린 나란 유학생은 하루하루를 에세이를 쓰는데 소비하였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에세이를 썼고, 오후 8시 정도에 딸이 잠자리에 들면 거의 12시까지  모니터와 씨름하곤 했다. 비록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힘들기도 했지만, 혼자서 이른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과 에세이를 쓰는 것은 생각보다 즐거웠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처럼 가족들과 함께 온 나의 유학생활 대부분은 학교수업을 듣고 에세이,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5,000 단어를 작성하는 것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름의 노하우가 생겨 조금씩 시간을 단축해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과목 하나하나를 무사히 통과하며 나의 유학생활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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