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할머니가 될까
나는 지금 오리를 삶고 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오리 백숙을 만들고 있다.
한시간 째 냄비에서 보글보글 소리가 난다.
오리 백숙을 하려고 장을 보러 갔더니 마트 정육점 아저씨가 손으로는 오리를 포장하면서 눈으로는 나를 물끄러미 보는 것이다.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의심스러운 눈초리였다. “이 오리 집에서 직접 하시게요?” 네. 왜그러시죠. 못할 것 같아 보이나요. 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나. 어려운 거 아닌데. 사실 이 오리 백숙은 어머니께 어깨너머로 배운 거다.
어머니는 남편이 20대 쯤 오리 백숙 집을 운영하셨다고 한다. 장사를 그만 두고 거주지로 지내시던 그 곳은 우리 부부의 첫 보금자리이기도 했다. 장사하실 때 쓰던 식기들을 창고에서 골라내 신혼 때 요긴하게 갖다 쓰기도 했고. 가게 이름이 팽오리농장인가 그랬는데 남편말로는 식당일이 내성적인 어머님의 적성에 썩 맞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맛은 끝내줬다고 한다.
어머님은 손맛이 좋으셨다. 내가 임신했을 때도 오리백숙을 해주신 적이 있다 - 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말로 수제비.. 했다가 반죽을 치대고 계시는 뒷모습을 보았고, 산후조리 때 또 지나가는 말로 김밥.. 했다가 김밥 열 줄이 어릴 적 유치원 생일파티 때나 볼 법한 높이로 쌓아올려진 것을 우리집 식탁 위에서 보았고.. 내 입이 방정이고.. 여튼 오리 백숙으로 돌아와서.
어머님의 백숙은 세련미는 없었지만 진했고 알찼다. 압력 솥에 오리와 대파를 통째로 넣고 푹 고아서 뜨거운 대파를 손으로 쭉 쭉 찢어서 고기 위에 올려주셨다. 나한테 어머니 음식에 대한 기억은 마치 할머니가 해주던 음식이 생각나는 향수 같은 느낌이다. 구수한 된장찌개, 담백한 콩나물 볶음, 간장과 식초로 담근 매실 장아찌. 그때는 어머님이 주시던 반찬을 받고도 다 먹지 못해 버리기 일쑤였는데.
어머니는 나를 이름으로 불러주셨다. 아가, 며늘아, 00엄마 라고 부르지 않으시고 항상 효진아, 하고 부르셨다. 나는 어머니 앞에서 이름이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렇지 않으셨다. 며느리로 엄마로 아내로 할머니로 평생 사셨다. 어머니가 아프셨을 때에도 못난 나는 내 이름을 찾기에 급급했고 엄마라는 자리를, 그것도 겨우 지켜내느라 바빴다. 어머니는 이제 비로소 이름을 찾으셨을까.
나는 인간이다. 그래서 후회한다.
자식이니까. 또 후회한다.
그만큼 그리워하고, 기억하려고 한다.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되고 어떤 어른이 되어서
어떤 어른으로 기억될까.
모르겠지만 적어도 백숙 하나는 맛깔나게 잘 만드는 할머니가 되었으면. 그래서 딸이든 며느리든 놀러 오면 대파 통째로 쭉쭉 찢어 고기 위에 올려줄 수는 있었으면.
2022.9.30 한 여자, 한 인간 이었던 어머니의 이름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