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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대신비 Apr 22. 2024

서로를 읽는 사건 2

글쓰기

나는 나의 글이 천천히

느린 속도로 읽히기를 바란다.

 

비트겐슈타인이 그랬듯

구두점을 많이 쓰고

 

너와 나 사이에 대양이 흐르기라도 하는 듯

되도록 여백도 두려 한다.

 

너의 우주와 나의 우주는 겹쳐질 일이 없다.

애초 우리는 서로에게 이방인

 

아무래도 외계인이다.

서로의 사이에 통일된 사전조차 없다.

 

그러므로 광속으로도 가로지를 수 없는

우주 하나 두려 한다.

 

나의 글은

저 너머로 가는 행로.

 

끝나지 않는 소실점이다.

끝나면 다시 시작되는 특이점이다.

 

결코 네 해부대 위에 놓인

카데바 Cadaver가 아니다.

 

지금 불타고 있는 별의 시

찢어발겨서는 안 될 싱싱한 육체다.

 

치열하다는 말은 어딘지 부족하여

다시 사전 찾아 헤매게 하는

 

구지俱胝선사*의 손가락이자

이조二祖 혜가慧可의 팔이다.

 

그것은 하나의 태도

내가 사는 이유다.

 

인생이 장난 같은가?

나의 글은 하나의 생

 

내가 숨 쉬는 방법이다.

너와 겹치고 포개지는 풍경이다.

 

생은 우주 안에 있지만

또 밖에 있고

 

여기 있지만

저 너머에 있다.

 

해부하지 마라.

너는 나의 생을 읽는 것이다.

 

 


어려서 우리는 시를 해부하며 배웠다. 그러나 자라고 보니 그 시는 그런 시가 아니었다. 우리 생은 시다. 시는 시인의 채 아물지 않은 생이다.




*구지(俱胝)선사 :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여준 천룡에 의해 깨달음을 얻은 구지. 이후 누가 묻기만 하면 손가락을 하나 세워 보였는데, 어느 날 그가 없는 사이 동자승이 -그를 흉내 내어 -학인들에게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후에 그 이야기를 들은 구지는 동자승의 손가락을 칼로 자르고 제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순간 동자승이 훤히 깨쳤다는 이야기. 혜가도 마찬가지. 제 팔을 잘라 가르침을 구했다.


*카데바 Cadaver : 연구 목적을 위해 기증된 해부용 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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