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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뜰아이들 Mar 05. 2023

당나귀 귀 말고 the others

문식 03. 며칠간 이 단어 때문에 냄비처럼 들끓는 분위기가 따분했거든요

그의 귀는 귀인데. 당나귀 귀라니 지나쳤군. 어쩌면 충분히 신격화할 수 있었을 텐데. 자신에게 큰 귀가 있다는 것은 백성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어진 자의 필수 요건이라며 청와대 수석실을 거쳐 홍보도 가능했을 텐데. 도리도리 테크닉을 구사해도 좋고. 방방곡곡 큰 귀를 가진 자를 모아 크루를 만들고 유행도 선도할 수도 있었을 텐데.      


크고 높은 가채를 올렸던 양반가 부인들처럼 신체 컬렉션을 뽐낼 수도 있었을 텐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설화에 나오는 임금은 그저 ‘보편적이라고 일컬어지는’ 평범한 인간의 귀 생김새를 갖고 싶었던 걸까.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자. 그는 진실로 귀를 가리고 싶었을까. 그는 왜 긴장의 작두 위를 타며 큰 두 귀가 붉어져야 했을까.      


이야기의 냄새는 항시 지독해서 설화 한 편으로도 몇 가지 해시태그들이 맥락과 상관없이 귀엽고 끈적하게 탄생할 수 있다. 당나귀 귀 말고 그것 외에 파생되는 휴지통 속 생각들 복구하기 말이다. 가령 예를 들어 당나귀는 말과에 속하며 학명은 Equus asinus이며, 야생의 당나귀를 가축화한 동물로서… 우리야생 당나귀를 본 적이 있어요     


오늘의 TMI 사전은 the others(나머지 것들), 콩비지처럼 고소하게 떠도는 질문들과 해시태그들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복기하며 이 이야기를 곱씹어봐야겠다. 모종의 해시태그를 문단별 질문으로 올려둔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설화에 나오는 임금은 그저 ‘보편적이라고 일컬어지는’ 평범한 인간의 귀 생김새를 갖고 싶었던 걸까. (출처: 재능TV 캡처)


#누가 그의 귀에 붉은색을 칠했을까

오늘은 조금 큰 귀를 가졌다는 이유로 소문앓이를 해야 했던 한 임금을 소환해본다. 그가 임금인지 능금인지 신분 지위는 오늘의 화제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만, 한 편의 설화가 가진 틈바구니에서 신하의 입장과 임금의 입장- 즉, ‘관찰자’와 ‘당사자’의 하루를 추적할 뿐이다.      


그러므로 나 역시 그를 염탐하는 신하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신하보다 더욱 지독한 후일담의 모사꾼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사랑하는 사람의 귀도 어떻게 생겼는진 도무지 궁금하지 않거든요제 귀도 일 년에 한두 번잘 후벼파진 않는 편이니까요.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의 경문왕은 자신의 귀가 당나귀처럼 길다는 것을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그것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오로지 그의 갓- 즉 임금의 모자를 만드는 사람만이 그의 귀 생김새를 알고 있었고 임금의 귀 생김새를 신하는 철저히 비밀리에 부쳐야만 했다.

      

임금은 신하가 만든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매일같이 큰 귀를 ‘가리고’ 다녔다. 신하는 임금의 머리둘레를 측정하고 그의 큰 귀를 포근하게 감쌀 여러 모양의 모자를 고안했다. 말총으로 만든 갓, 동충하초로 만든 가벼운 외출용 갓, 대마로 만든 여름의 투명한 갓… 신하는 퇴근 후 대나무숲에 가서 몰래 비밀을 외치곤 했는데, 그는 진실로 이렇게 말했을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너무 선명한 단언이지 않은가단지 그의 부끄러움을 위해서?          



#왕의 집권 체제는 굳건했는가 

그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면 궁에서 본 모종의 결탁과 진귀한 궁중 식재료와 연인 간의 험담을 비평가의 입말로 늘어놓진 않았을까. 어쩌면 그는 자기를 둘러싼 결탁에 관심이 한 톨도 없어서 곰방대에 담배를 넣고 돌담 위에 앉아 한시름을 놓았을 뿐일지도 모르겠다. 대나무의 키가 껑충했으며, 잎들이 부딪치는 소리는 시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대나무숲 인근에는 터를 일구고 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우리가 이따금 산을 오르다가 대나무숲을 발견할 때마다 오래전 그곳에 누군가가 살았음을 추적하듯이 말이다. 이 설화를 통해 퇴근 후 은밀하게 청자를 보증인으로 두고 하소연이 필요했던 모자장수, 아니 조선시대 중인의 삶을 발견할 수 있다. 내 관심사는 그게 아니다          



#경문왕의 묘가 발견되지 않은 까닭은

설화의 또 다른 버전에서는 임금의 비밀을 말하지 못해 화병이 걸린 신하가 약방 영감의 처방전을 따라 깊은 밤 숲속 구덩이를 파서 임금의 비밀을 씨앗 심듯이 말했다고 한다. (지속적으로 구덩이를 파고 다시 묻는 행위를 반복하면 그 안에 작물의 씨앗이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그곳에서 대나무가 돋아나 숲이 되어 “임금 귀는 당나귀 귀”라는 믿을 수 없는 자연의 소리가 퍼졌다고 하는데, 대나무가 우후죽순 번성하는 시기 동안 임금의 세력이 위기에 처했다고 추측하는 게 더 개연성 있어 보인다.

 

대나무가 우후죽순 번성하는 동안 임금의 세력이 위기에 처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까? (출처: artdecoblog.tumblr.com)


소문은 방방곡곡에 퍼져서 경문왕은 모자 만드는 신하가 다녀간 대나무숲을 모조리 베어 버렸다고 한다. 그 후 임금은 그 자리에 산수유나무를 심었는데, 요상하게 “임금님 귀는 길다”는 소리가 연거푸 들리게 되었다고. 소문의 서술어는 조금씩 달라지지만 ‘임금님’이라는 주어는 변함이 없다. 이 이야기로 백성들의 상상력만 더욱 자극하게 되었다. 경문왕의 사후 무덤은 발견되지 않았다.      


당나귀 귀 이야기의 주인공 경문왕은 국내 야사에 나오는 ‘최고의 귀 큰’ 캐릭터가 되었다. 사실 해외에도 비슷한 전설들이 있는데, 임금이 기다린 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려 사고를 쳤던 이발사, 시인 들로 인해 소문은 노래가 되고 바람과 죽순이 되어서 모종의 교훈과 지금의 해시태그를 줄줄이 소세지로 낳게 해주었다. 그것은 인간의 서사와 다름아니라서 우리는 이야기의 냄새에 코를 발름거린다.   

  


“우리가 아는 것이란 우리가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밖에 없으며, 주의를 기울이면 굉장히 많은 것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예감만 할 뿐이다. 대개 언급 없이 지나가고, 누가 책임지고 다루는 것도 아니며, 그 자체로 자명한 진부한 것들을 굳이 기술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실들로 우리 인간은 기술된다.”

-조르주 페렉, 『생각하기/분류하기』 ‘읽기: 사회-생리학적 개요’ 장 중에서



#왕의 이야기 옆에 배치될 이야기, 로또알 굴리듯이

당나귀만큼은 아니지만 비교적 귀가 큰 나에게도 들리는 이슈어. 최근 챗봇(Chat Bot)의 등장으로 출판 및 창작계가 온통 들썩인다. 그것의 활용법과 파급력에 골몰하는 사람들을 보며 5조 편의 문서를 습득한 기계에서 결국 답습하는 것은 한정된 인간의 서사일 텐데, 마치 미래를 예견하는 절대자가 등장한 것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광경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챗봇은 통계라는 거대한 덩치로 만들어진 인공지능 초기 복제품이다. 조금씩 외딴길로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서사와 문학이 태어난다고 가정했을 때 챗봇은 새로운 인공지능의 대안이자 위협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만약 인공지능 노동기계라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서사로 어떤 이야기를 파생시킬지 곰곰 생각해보며 이야기를 약술해보았다. 몇 가지 기사와 백과사전, 야사를 더해 예측 가능한 에세이를 쓰면서 툭툭 튀어나오는 나의 이물질들을 볼드체로 구분하였다.     


그러니까, 그것은 나의 작은 귀의 이야기다. 챗봇은 패턴을 읽지 패턴을 잇는 실과 바늘을 보지 않는다.     


챗봇이 ‘큰 귀’를 가질 수는 있을지 몰라도 the others(나머지 것들) 속에 깃든 소소한 삶의 궤적들을 탐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처방을 내릴 뿐이지 처방의 전후를 챗봇은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패턴과 배경지식을 동원하여 정황은 손쉽게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인공지능 기계들이 인간의 언어를 빌려 그럴듯한 정황을 그려내어 단어를 배치하며 자동기계 시를 쓰듯이. 


확률이 필요로 하지 않는 분야에는 어처구니없이 약한 챗봇의 전문 분야는 ‘비슷하게 말하기’. 숱한 언론이 리라이팅하는 버전의 좀더 고사양 버전이랄까. 임금님 귀에 붉은빛을 그리는 손목이 누구의 것인지 그는 관심 없을 것이다. 하여 나는 몽골 야생 당나귀 유튜브를 보며 반신욕을 하러 가야겠다. 마지막 문장을 볼드체로 구분하며. 


이 텍스트 또한 대나무숲에 저장되고 있다면, 그 구덩이에 다람쥐의 양식이 동쪽으로 데굴데굴 굴러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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