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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뜰아이들 Aug 06. 2023

우리 애가 재능이 있나요?

가끔 내게 이렇게 질문하시는 분이 있다. '제가 문학에 재능이 있나요?'


이런 질문 앞에서 나는 골똘히 생각을 하게 된다.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 내가 작가라는 사실이 누군가의 재능을 판단할 수 있는 증거가 될 수 있는가? 문학은 취향과 신념의 대립장이고, 나의 안목이 절대적인 재능의 평가 기준이 될 수 없는데?


2. 그런데 나는 재능이 있어서 작가를 하고 있나? 재능이 없다면 문학을 그만둬야 하는 것일까?


3. 무엇보다 문학에서의 재능이란 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끈기? 열정? 좋은 안목? 문장력? 묘사력? 이 모든 항목은 측정이 불가능하며, 게다가 숙련에 의해 얼마든 나아지는 요소인데?


어릴 적엔 내가 문학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모든 글짓기 능력은 순전히 나의 '노력'에 의해서 얻어진 결과이며, 다른 모든 이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몇 번의 번아웃, 그리고 적당히 나이를 먹은 지금은 능력과 노력이 꼭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또한, 내가 아예 재능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거짓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적어도 나는 '포기하지 않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회복 탄력성'이란 것도 재능이다. 이 모든 걸 그냥 노력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더 큰 재능이 있었다.



97년의 겨울, 나라가 망하고, 집안이 망하고, 나는 용돈 10,000원을 받았네


내가 글짓기에 처음 소질이 있다고 느낀 것은 IMF를 앞둔 97년도의 어느 겨울이었다. 


당시 학교에서 경제살리기글짓기 대회를 열었고, 나는 그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대회였고,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학년이 참가하는 대회였다. 그런 대회에서 1학년인 내가 최우수상을 탄 것이다. 


그전까지 나는 부진한 학습 역량으로 '특수반'에 갈 것을 은근히 종용받는 학생이었고, 1년 내내 학습 부진아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살았다. 아마도 ADHD 같은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1학년 간의 설움을 모두 뒤집는 한 방이었고, 담임 선생님은 학급 모두의 앞에서 나를 극찬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자랑스럽게 부모님에게 최우수상 상장을 내밀었다. 아버지는 몹시 감격스러워하며 나에게 용돈을 주셨다. 세종대왕님이 그려진 초록색 화폐. 만 원이었다. 내 생애 받아본 가장 많은 용돈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촌극이 어디 있나 싶다.

아버지는 IMF로 어려워진 사업 때문에 출퇴근 시간도 없이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중이었을 것이다. 한낮인데 집에 계셨던 것도 그런 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경제살리기글짓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후 한 달도 안 되어 우리집은 사업이 부도가 났다. 이후, 나는 친척과 외조모의 집을 거쳐 작은 반지하방으로 이사가게 된다. 이후, 그 반지하방이 있는 재개발 구역에서 20년 이상을 더 살아가게 된다. 


전자와 후자 사이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다만, 씁쓸한 웃음이 나올 뿐이다.


착각은 재능이다.


명백히 단언한다. 

경제살리기글짓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탄 것과 문학가로서의 재능은 그 어떤 연관도 가지지 못한다. 논리적 글쓰기와 문학적 글쓰기는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의 그 경험은 내게 아주 소중한 '착각'을 불러일으켜줬다. 

과장해서 얘기한다면 '학습 부진아인 줄 알았던 내가 알고 보니 작문 천재?'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그 소중한 착각이 나에게 글을 쓰게 했다. 

무언가 나도 잘하는 것이 있다는 착각. 

그 착각이 나에게 책을 읽게 했고, 책은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의 문을 열어주었고, 또 다른 글쓰기를 보여주었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착각 하나로, 이후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게 되었고, '회복 탄력성'이라는 재능과 맞물려 나는 정말로 글을 잘 쓰는 사람으로 점차 성장해 왔다.


나에겐 문장력, 묘사력, 끈기, 열정, 상상력 같은 재능은 없었다. 내 재능은 착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착각마저 없다면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2023년, 작금에도 나는 가끔 나에게 되뇐다. 글이 되지 않을 때면, 삶이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면, 너무 어려울 때면, 한숨을 내쉬면서 되뇐다.


'나는 누구보다 잘 쓰는 사람이다. 나는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것은 바람이고, 그저 착각일 뿐이지만.

착각을 딛고 나는 다시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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