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의 제단 위에 영정 사진이 올려졌다. 노란 색 모직 코트를 입은 사진 속의 동생이 통곡하는 우리를 말 없이 내려다봤다. 동생의 남편과 그의 형제들 그리고 시부모가 애통하게 울었다. 그 자들에게 당신들은 소리 내어 울 자격이 없다고 일깨워주고 싶었지만 아이들 앞에서 마음 속의 말을 다 할 수는 없었다. 누르고 있는 혐오와 분노가 가슴을 찢고 뿜어나올까봐 나는 입을 닫아버렸다.
장례 첫 날의 늦은 밤, 작은조카가 심장이 떨린다며 드러눕고는 일어나지 못했다. 애를 데리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마당으로 나왔다. 지난 밤에 자기가 곁에만 있었어도 엄마는 죽지 않았을 거라며 아이가 울었다. 아빠와 다투고 옷방에서 울고 있는 엄마를 혼자 두고 나온 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다. 나는 돌이킬 수 없음으로부터 걸어나온 절망이 이제 막 열네 살이 된 사내아이를 삼켜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그 녀석이 내게 전한 그 밤의 이야기들은 가슴이 아파 글로 다 옮길 수가 없다. 이제 엄마가 없어서 자기는 살 수 없을 거라 공포에 질린 어린 것을 끌어안고 나도 함께 울었다.
장례 이틀째 날도 잠이 오지 않았다. 자리에 누워 눈을 감으면 알 수 없는 힘이 나의 몸을 일으켜 앉혔다. 숨을 쉴 때마다 속에서 단내가 올라왔다. 견고한 의식 아래에서 들끓는 분노와 원망에 나의 심장이 뻘겋게 달궈지고 있는 것 같았다. 늦도록 잠들지 못하고 핸드폰을 들여다 보던 아이들이 어둠 속에 우두망찰한 나를 올려다 보며 눈을 꿈벅였다. 큰이모, 음악 들려줄까? 그래. 이루마의 피아노 연주가 조그맣게 흘러나왔다. 마음이 축축히 젖어들었다. 그래, 참 좋구나. 이제 살 것 같아. 음악이 이렇게 좋은 거였네. 우리는 부둥켜 안고 누워 음악을 들었다. 눈물 때문에 자꾸만 목이 막혔다.
화장한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했다. 투명 아크릴 문이 달린 작은 상자 안에 유골함을 넣고 돌아서면서 이제 우리는 정말 이별을 해야하고 다시는 동생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몸과 마음이 서로에게 이르던 길이 지워지고, 미처 주고 받지 못한 말들이 어둠 속으로 불려갔다. 지척에서 함께 했던 일생도 질긴 피의 인연도 그지없이 허망했으며, 윤회하는 불행의 나락으로 다시 떨궈진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은 나를 고통스럽고 한없이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이제 자기들은 누구와 사냐고 내게 묻는 아이들을 내 집으로 데려왔다. 아이들은 제 아버지와 살기를 거부했고, 아이들을 돌볼 자신이 없는 제부도 그렇게 하기를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