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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Aug 17. 2024

요즘 매미 일 안 하네

사는 이야기

이른 새벽 주방 창 방충망에 매미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고된 나날에 지쳐 잠시 깃든

것마냥 움직임 없이 고요하다

하긴 요즘 비의 난타질이 예사롭지는 않지

잎이 제법 무성한 나무가지 아래라도 온몸

내리장대비 피하기는 힘들거야

무자비하게 작은 몸을 파고드는 물의

파편이 마나 아프겠어

천적과 맞딱뜨리는 우연을 피 

지하의 세월이 3년에서 5년으로, 5년에서

7년으로 늘어가기막힌 상황을 견디고 드디어

날개 얻어 대명천지에 다시 태어났건만

난데없이 점점 미쳐가는 비가 허연 이를

드러내고 "웰컴"이라니

무겁고 축축한 바람에 떠밀려 온 구름이

꾹꾹 누르던 울음을 떠트리면 땅 위로 퍼붓듯  

쏟아진 그의 검은 광기가 세상을 흐물흐물 녹여

켜버릴 듯한 기세로 온갖 것을 휩쓸고 지나간다

이런 난리굿이 무시로,  여러 날 계속되는 

중에도 작은 몸에 부여된 한 달 남짓의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간다

무지로 혹은 가책을 접어두고 내가 던진

욕망의 쓰레기 더미 위에 오작동 중인

매미의 세상, 그래서 입을 다물었나 

미안하고 안쓰러워

왜 이리 조용해, 요즘 매미들 일 안 하네

실 없이 농담을 던지는데

웽웽웽짜르르르르르르르르

매미가 정적을 깨고 시원하게 울어재낀다

그래, 매미는 그렇게 울어야 제맛이지

일단 세상 구경했으니

긴 어둠 속에서 벼린 영원의 꿈 

이루어지 간까지

짧은 생의 기한이 다하기 전까지

매미야, 쉬지 말고 울어라


                                                                          2024년 7월 24일



비가 멈추었다, 이젠 조막손의 사냥꾼들이 붉은 망을 흔들며 달려오는구나, 높이높이 올라라, 매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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