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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Sep 25. 2024

더워 죽고 추워 죽고

사는 이야기

지난 달 밤낮으로 에어컨 돌리느라 들어간 전기요금 청구서가 아직 내 집 우편함에 도착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난방을 하게 생겼다 콘크리트 절벽에 부 멍든 가슴 풀어 헤치고 둠 속에서 후엉후엉 울어대바람 때문에 지난 밤은 앞뒤 베란다 문을 닫고 잠이 들었다


오래된 아파트의 자동환기시스템 황소바람도 무사통과 서늘한 기운에 잠이 깨어 더듬더듬 덮고 자던 이불을 어당겨 어깨를 감싸려는데 이불이 낙엽처럼 온기 없이 바스락거렸다


바로 어제 아지를 카트에 태워 동물병원에 갔다오는 동안 쏟아지는 땀에 내 몸이 흐물흐물 녹아내릴 것 같아 이리 애쓰며 사는 게 맞나 싶어 물이 날 지경이었는데 오늘은 당근으로 책을 팔러  잠깐 집 앞에 나가면서 한겨울 패딩 속에 입던 스웨터에 몸을 끼워도 암시랑토 않네


여름이 겨울과, 겨울이 여름과 을 섞는 낭만 생명의 계절은 꿈이런가 열기에 쪄지거나 냉기에 오그라붙어 한해살이가 고되기만한 세월을 나 죽기 전 살려나 보다

작년 겨울은 북극의 빤스 고무줄이 늘어나 죽게 춥더니 여름은 난생 처음 냉방기를 하루 종일 켜두고 추석 날까지 찬물로 샤워를 했다


더워도 추워도 옴쭉달싹 못하는 비영비영한 육신에 가난이 덤인 내게 드디어 지옥문이 열렸나 싶하지만 미쳐 가는 날씨 때문에 살 수 없다고 구시렁대려니 고통 속에서 이미 사라져간 숱한 생명들에게 염치 없고 미안하다 공포와 절망 속에서 영문을 모른 채 숨을 거두었을 작은 이웃들의 신음을 외면하고도 인간의 삶이 해피 앤딩이기를 바다면 그건 천치이거나 뼛속까지 악한이겠지


그래도 산에 사는 다람쥐 토끼만큼은 아니어도 일생 빠듯하게 최소한의 것으로 살았고 냉방기를 돌리를 호사도 고작 작년부터였으니 나는 좀 덜 미안해도 되려나

하다가


조용히 입 닫고 일어나

욕실 수도의 중간 밸브를 더욱 조여 닫았다



2024년 9월 21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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