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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큐 Dec 06. 2023

[25] 음악과 그림

오랜만에 누나와 매형이 한국에 왔다. 매형과 가끔 연락할 때 한 얘기는 매형이 한국에 오게 되면 같이 맥주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자는 것이었다.

이전이었다면 그냥 놀자는 것 그 이상 그이 하의 의미도 아니었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어찌 보면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함께 그림을 그리는 생각을 하니 짜릿했다.

그림을 배울 수도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하지만, 가족에게는 운전을 가르치면 안 되듯..

누나와 매형 모두 나에게 그림을 가르쳐줄 생각은 없다.

그냥 그리라고 한다.  

좀 서운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맞는 말이다. 기술적인 부분은 그릴수록 느는 것이고, 그건 스스로 깨우치는 것 일 테니까.

드디어 매형과 그림을 그리는 날이다.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어보니 그냥 오면 된다고 한다. 옛날 내가 살던 부모님의 집은 지금은 비어있던 상태라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부모님 집(창고?)에 있는 내가 그동안 그린 그림들을 보여달라고 한다. 부끄럽지만 보여준다. 무조건 좋다고는 하지 않는 성격인 것을 알기 때문에 기대는 하지 않는다. 몇 작품을 양손으로 번쩍 들고 보더니 좋다고 한다. 다행이다. 숨기고 싶은 초기 몇 작품은 서로 암묵적 동의하에 넘어간다.

간단한 평가가 끝나고 그림 그리기에 들어간다.

처음에는 캔버스와 아크릴 물감을 가지고 가서 나의 그림을 그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상황을 보니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오늘의 그림은 잉크와 종이다.

식탁과 의자를 마루로 옮겨놓고 마주 앉았다.  

검정잉크와 여러 장의 종이를 꺼낸다. 종이는 그 지하실의 화방에서 얻은 것이라고 한다.  

낡고 바래서 판매를 하지 못하는 종이였지만 세월을 머금어서 인지 나름 운치가 있다.

그리고 매형이 음악을 선택한다. 나의 매형이 만든 음악이었다.

나의 매형은 화가다. 하지만 화가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한 분야로 국한된 것 같다. 예술가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얼마 전, 친구와 팀을 만들어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했다고 했는데 그 음악이었다.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음악을 선택한다.  

독특하다.

경음악이라고 해야 하나... 느낌을 표현하자면 자연의 소리라고 해야 하나,.

우웅,, 이잉... 우우 우우웅,,, 이잉이이 이이이 잉 이런 소리들의 반복...

매형은 붓을 잡고 막 그리기 시작한다. 자연스럽다. 의식의 흐름대로  

그리는 것 같은데 붓질에 소름이 돋는다.

나는 멍하니 붓질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매형이 말한다..

뭘 고민해.. 그냥 그려..

그래.. 그냥 그려보자..

음악을 듣고 느껴지는 대로 나도 잉크를 묽게 타서 붓질을 해본다.

아무 생각 없이 음악이 주는 느낌대로 그려본다.

그렇게 우린 두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그림을 그렸다.

매형은 보통 종이가 다 없어질 때까지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난 몇 장을 그리니 지쳤다.

그때 마침 누나가 왔다.  
둘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잘 놀라며 자리를 비켜준다.

다 그린 그림이 잘 마르도록 펴놓고 매형의 그림과 내 그림을 번갈아 봐 본다.

나는 잉크로 그린 그림에 아크릴 물감을 함께 사용하긴 했지만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그렸는데 이리 다르다니..

그래도 자연, 삶이라는 중심축 안의 것임은 동일하다는 느낌.

두 시간 정도였지만, 그림을 그리는 동안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 시간이었다.

작가마다 작업방식이 다르고 표현하는 것도 다르지만 무엇인가를 집중해서 오랜 기간 한 사람들은 특유의 아우라가 있다.

그냥 안녕하세요, 배고파 정도 어설픈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 매형이 아니라 아우라 있는 아티스트의 모습을 보니 뭔가 어색하다.

다행히, 그림을 다 그리고 나니 다시 그냥 외국인 매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근처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미술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번역기가 고생하긴 했지만 정말 값진 시간이었다.

그날 이후, 매형이 소개해준 작가들의 그림을 핸드폰으로 찾아보며 이런저런 영감도 받고 그림 그리기에 한걸음 더 진심으로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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