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세 Aug 12. 2024

만남의 미학

언택트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것들의 본질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을 두 가지로 나눈다면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스무고개 게임을 할 때 가장 먼저 물어보는 질문이기도 하다. 

가끔은 비생명체에게 인격을 부여하여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대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존재들은 살아 있는 존재를 만나야 생명의 에너지를 주고 받는다


생명체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로 성장한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성장한다. 공통적으로 육체적인 성장을 한다. 그러나 지구상 유일한 개성을 지닌 인간은 육체적 성장으로만 그치지 않고 정신적 성장을 추구한다. 영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다.


두 번째 번식한다. 종의 유지는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다. 종을 번식, 유지하지 못하면 사라진다. 


세 번째 끝이 있다. 사라진다. 죽음이다.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맞이한다. 

살아있음의 특징은 역동성이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태어나고 죽는다. 그 생명의 에너지를 서로 주고 받는다. 상호의존하며 공존한다. 

왜 고독을 못견뎌 하는가? 서로 관계 맺으며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살기 때문이다. 


코로나시대를 거치면서 이른바 비대면 접촉이 늘어나고 있다. 얼굴을 보지 않고 온라인상으로만 관계를 맺는 것이다. 언뜻보면 시간도 절약하고 피곤한 일도 겪지 않고 편리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인간소외의 전형이다. 대면에서 오는 불확실성과 불안전정을 극복하고 위험을 회피하려는 숨은 뜻이 있다. 


관계맺는 방법을 배우지 않고 갈등과 투쟁을 경험하지 않는 인간은 미성숙하다. 

언택트의 세상은 미성숙한 인간을 양산한다.

지난 4개월 동안  온라인을 통해 많은 여성들과 대화를 해보았다. 설레임, 떨림, 긴장. 남녀의  만남을 포함해서  인간의 만남에서 느낄 수 있는 이런한 감정들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진실성이 보장되지 않았다. 


상대방의 눈을 볼 수 없고 호흡과 표정, 미세한 표정의 변화를 읽을 수 없는 죽어 있는 만남 그 자체였다.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과 또 다른 사람의 인생이 극적으로 조우하는 위대한 우연이라는 것을.


그 만남에서 벌어지는 역동적인 힘의 역학관계와 미세한 감정의 교류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한 개인을 살아있게 만드는 힘이 되는지. 


당황하고 긴장하고 실수하고 두렵고 이런 감정의 교류가 가져다 주는 혼란이 가장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두려움을 안고 미지의 세계와 조우하는 가운데 인간은 생명의 에너지를 주고 받는다. 나에게 만남은 그런 것이다. 그래서 결코 피할 수 없고 당당하게 나아가 부딪쳐야 하는 삶의 과정인 것이다. 


화면을 가운데 두고 텍스트틀 통해 만나면 이러한 에너지의 주고받음이 현저히 떨어진다.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표정을 볼 수 없다. 모든 미세한 움직임이 거세된 차갑고 냉정한 문자의 전달을 통해 우리는 미완성의 교류를 한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게 낫다.  옛말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 


만남은 얼굴을 보고 상대의 눈을 보고 육성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작가의 이전글 베트남 여행을 마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