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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Jun 24. 2024

트룰리 버섯의 꿈

알베로벨로, 시칠리아 풀리아 여행기

 옛날 옛적 이탈리아 북쪽 롬바르디아 지방에 아담한 버섯 나라가 있었다. 이곳은 알프스 산의 기운이 남아있어 숲 속의 우람한 나무 아래서 갖가지 버섯들이 싱싱하게 앞 다투어 자라났다. 각각의 버섯들이 빼어났지만 그중에서 단연 으뜸은 트룰리였다. 밝은 회색빛 원추형 머리와 상아색 흰 다리는 기품 있고 고고해서 일찌감치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비슷한 분위기로 늘씬한 새송이 공주의 사윗감이 될 터였다.

 트룰리의 성공에 대해서는 말도 많고 의견도 다양했다. 그는 갈색톤이 아닌 회색톤이라 어려서는 돌연변이나 미운 오리새끼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여러 해 동안 묵묵히 노력해서 높은 영양가, 열정, 훌륭한 성품등으로 그 모든 선입견을 뛰어넘었다.

 느타리, 송이, 팽이는 자신들의 평범과는 차원이 다른 트룰리를 부러움과 동경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비슷한 실력의 표고는 트룰리와 끈끈한 우정을 나누며 선의의 경쟁을 해왔다. 목이는 까무잡잡한 자신이 왕따 당한 경험 때문에 색이 다른 불리함을 극복한 트룰리가 대견하고 그의 성과가 뿌듯했다.

 트룰리 때문에 가장 힘든 버섯은 영지였다. 분명 인간들의 임금님 수라상까지 오르던 자신의 영예를 엉뚱한 친구에게 빼앗긴 것만 같았다. 출신이 빈약할 뿐 아니라 정통적 버섯의 색도 지니지 못한 녀석에게…. 어여쁜 새송이 공주에게 어울릴 신랑은 자신뿐이라는 확신을 놓지 않고, 실제 결혼식을 마칠 때까지는 게임이 끝난 것이 아니다고 생각하며 매일 칼을 갈았다. 야심만만하고 샤프한 영지의 눈에 트룰리의 낯빛이 근래 아주 밝지만은 않아 보여, 여차하면 어떤 틈새를 노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트룰리의 성숙에 가장 큰 기여를 한 버섯이 노루궁뎅이인 것을 아무도 모른다. 조용히 그를 도와왔기 때문이다. 결혼식이 가까워오며 두 버섯은 함께 고민에 빠지고, 어떤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트룰리에게는 차마 동족에게는 말할 수 없는 어떤 꿈이 있었다. 버섯나라의 부귀영화가 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결혼 날짜가 오자 먹을 수 없고 잠도 잘 수 없어 초췌해 가는 중이었다. 노루궁뎅이는 날마다 트룰리의 갈망을 들으며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저는 햇빛이 그리워요. 태양 아래 살 수만 있다면."

"이 습하고 벌레 많고 어두운 곳을 벗어 날수는 없나요?"

"나무들이 우리에게 선의를 베푸는 척 으스대는 것을 참을 수 없어요. 그네들 그늘에서 자유로울 순 없을까요?"  

 결혼식날 새벽, 둘은 버섯나라를 떠나 숲을 만드신 분을 찾아 나섰다. 선하며 인자하신 그분에게 가면 어떤 해결책이 있을 것 같았다. 노루궁뎅이는 쉬이 눈에 띄는 트룰리를 자신의 품 속에 감추고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드디어 너무 빛이 나서 얼굴은 볼 수 없고 음성만 들을 수 있는 그분의 인기척을 느꼈을 때. 트룰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소원을 올렸다. 부드러우나 단호한 그분의 대답.

"꼭 뭍으로 가고 싶어 목소리를 포기한 인어공주 같구나. 결국 공기의 정령이 되었는데…. 후회하지 않을까?"  

"인어공주도 왕자와의 사랑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 소원을 이루려면 버섯 계보에서 네 이름이 없어져야 해. 종족 번식도 안되고. 괜찮겠니?"

"네. 그쯤 각오해야죠."

"좋아. 아주 먼 남쪽으로 가거라. 네 소원의 소문이 퍼지면 곤란하니까. 알프스와는 멀지만 아름다운 나무(Alberobello)가 있는 곳이지."    

 

 알베로벨로의 밝은 태양아래 트룰리의 연한 회색 자태는 더욱 찬란히 빛나, 사람들의 사랑을 담뿍 받았다. 연인들, 가족들,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 누구 하나 감탄하며 사진을 찍지 않는 이가 없었다. 꿈을 이룬 트룰리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노루궁뎅이가 트룰리를 만나러 야채 트럭에 몸을 숨기고 알베로벨로의 유명 레스토랑으로 잠입했다. 오랜만에 두 버섯은 뜨거운 재회를 하며 그간의 소식을 나누었다. 버섯나라의 새송이 공주와 영지의 결혼 이야기가 끝나자, 트룰리는 최근 유치원 아이들이 체험 학습 왔던 날 풍경을 들려주었다. 마음이 가장 기쁘기도 하고 또 가장 슬프기도 했던 날이었다며.  


선생님: 여기저기 보이는 저 회색 지붕 집 있지요? 트룰리라고 해요.

어린이 1: 어머~ 트룰리 버섯이네요. 너무 예쁜 버섯이야~       

어린이 2: 선생님! 그럼 여긴 트룰리 버섯 마을이에요?

어린이 3: 요 버섯들 얼마나 맛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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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 주의 알베로벨로 마을에 가면, 많은 트룰리를 볼 수 있다. 트룰리(Trulli)는 풀리아 남부 지역에서 발견된 석회암 주거지로, 선사 시대의 건축 기술이 아직 이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뛰어난 사례이다. 트룰리에는 인접 들판에서 수집한 석회암들을 거칠게 가공한 석회암 슬라브를 내어쌓기 방식으로 쌓아 올린 지붕인 피라미드형, 원통형, 원추형 지붕이 있다. 오늘날과 같은 주거지의 기원은 14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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