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C경영학 시리즈 3
CEO의 의사결정은 회사와 직원들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경영자는 높은 수준의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회사가 가진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진단해서 적절한 진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경쟁사가 하고 있거나, 매스미디어나 이해관계자들로부터의 압박으로 인해 의사결정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경영에도 유행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현대 기업 경영 역사에서 한 시대를 호령했던 '식스시그마'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식스시그마(Six sigma)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1980년 말 미국의 모토로라(Motorola)에서 개발한 경영혁신 기법으로 전사적 품질관리 방법론을 의미한다. 식스시그마는 데이터에 근거한 품질관리를 요구하며 수주에서 부터 제품 출하 까지의 전 공정에서의 품질혁신 운동이다. 시그마는 통계에서의 산포를 파악하기 위해 사용되는 표준편차(standard deviation)의 척도로서 품질의 변동 수준을 의미하는데 6 sigma는 그 변동 수준을 획기적으로 감소시켜 100만개 제품 중 3-4개만이 불량으로 허용하여 99.999% 수준의 품질 수준을 의미한다. GE(General Electric), IBM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도입하며 생산운영관리(operation) 차원에서 전 세계적인 유행으로 번저나갔다. 특히 GE의 전 CEO 젝 웰치(Jack Welch) 회장은 그의 저서 '위대한 승리'(Winning, 정림출판, 2005)에서 식스시그마를 두고 기업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가장 강력한 경영혁신 기법 중 하나라고 언급하고 운영 효율성을 개선하는 측면에서 단연 최고라고 말한 바 있다.
"I am a huge fan of Six Sigma. Nothing compares to the effectiveness of Six Sigma when it comes to improving operational efficiency. ... Six Sigma is one of the great management innovations of the last quarter century and an extremely powerful way to boost a company's competitiveness."
- Jack Welch, Former CEO of General Electric
GE의 식스시그마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 아래 전 세계의 경영대학원, 경영컨설팅펌, 매스미디어 등이 앞다투어 홍보하며 많은 기업들이 경영 혁신기법으로 도입하였다. 특히, 미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식스시그마 열풍이 불었고 회사는 앞다투어 직원들을 식스시그마 전문가로 양성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하였다.
왜 미국의 기업은 식스시그마에 열광했는가?
식스시그마가 등장한 1980년대는 미국과 일본의 기업들이 자동차, 전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을 때이다. 미국에는 Ford, GM(General Motors), IBM, GE와 같은 기업이 소비자에게 '대형차', '성능', '강력한 브랜드' 등을 어필하고 있었고, 일본의 Toyota, Honda, Sony, Panasonic과 같은 회사는 '가성비', '품질', '소형화' 등의 특징을 내세우며 미국 시장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었다. 미국의 언론은 "왜 미국은 일본을 따라잡을 수 없나?", "왜 일본은 되는데 미국은 안되는가?"라고 하며 미국산 제품의 경쟁력에 대해서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왜 일본은 되는데 미국은 안되는가?
당시 일본은 경제적으로도, 기업 경영에서도 미국에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다. 왜냐하면 높은 품질의 제품을 미국산 제품보다 저렴하게 제공하며 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중에서도 일본의 TPS(Toyota Production System)1)로 대변되는 품질관리 기법은 미국의 많은 기업과 전문가들이 일본에 직접가서 배워서 올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다. (일본산 제품의 높은 품질은 일본인 특유의 장인정신에 기인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따라서 미국 기업은 일본의 품질수준을 따라잡을 수 있는 자신들만의 경영혁신 기법이 필요했다. 그 결과물이 식스시그마인 것이다. 이런 배경은 80년과 90년대 미국 시장에서의 소비자 니즈가 고품질의 경쟁력 있는 가격의 제품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1) TPS : 린 생산방식(Lean Production) 또는 JIT(Just In Time)으로도 불린다. 불필요한 낭비(*자원이 흐르지 않고 머무는 것)를 제거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중점을 둔 토요타의 생산방식을 일컬음
그 많던 식스시그마는 어디로 사라졌나?
유행은 폭발적이다. 경영자도 예외는 아니다. 매해마다 수 많은 새로운 경영기법이 등장하고 행사, 학회, 미디어, 경영자 등을 통해 전파된다. 게다가 전 세계의 CEO들은 경쟁적으로 식스시그마를 경영혁신 기법으로 도입하며 품질경영을 대내외적으로 내세웠다. 한편으로는 경쟁사 및 이해관계자의 압박에 따라 기업 이미지 제고, CEO 평판관리 등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결과로 그들은 자신의 보수를 높이거나 임기를 연장시킬 수 있었다.
존 에이커스의 IBM 사례는 대표적으로 경영유행을 따라 의사결정을 한 사례로서 식스시그마의 실패 사례 중 하나이다. 아무리 좋은 혁신경영기법이더라도 기업전략과 경영환경 등에 대한 세밀한 고민없이 경영유행(Management Fashion)에 따라 맹목적으로 도입했을 때의 부작용을 설명해 준다. 존 에이커스의 IBM은 실패했고, 그의 후임자 루 게스트너의 IBM은 성공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존 에이커스는 1989년에 식스시그마를 도입하며 전사적으로 추진했지만 오히려 조직의 내부직원의 반발과 재무적 상황이 악화되는 등 IBM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그는 PC(personal computer)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공정 혁신 기법인 식스시그마를 전사적으로 도입시켰다. 즉 전사적 자원을 하드웨어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것이다. 그 결과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에게 PC사업의 주도권을 빼았겼고 93년 그는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반면, 루 게스트너는 식스시그마 정책을 철회하고, IBM을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회사로 전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창의적인 조직을 만들며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조직을 이끌었다. 식스시그마가 당시 IBM의 기업환경과 이슈에 적절한 처방이었는지가 중요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IBM에게 필요한 것은 식스시그마로 대변되는 운영적 효율성(Operational Efficiency)가 아니라 창의성(Creativity)와 혁신성(Innovation)이었을지 모른다. 따라서 항상 경영자는 자신의 조직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진단할 줄 알아야 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처방을 해야한다. 결코 경영유행에 따라 조직을 운영해서는 안 된다.
식스시그마의 현재와 미래는?
미국은 일본과의 경쟁을 거치며 식스시그마가 확산되었지만 이제 더 이상 미국 제조업 시장에서 품질은 최고의 걱정거리가 아니다. 젝 웰치가 사라진 현재의 GE에도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식스시그마는 없다. 필요한 공장과 사무실에서 활용될 뿐이다. 경영환경은 시대에 맞춰 변화한다. 필립코틀러의 마케팅 4.0에 의하면 소비자의 입맛은 품질에서 가치로, 가치에서 사회적 영향력으로 진화했다. 품질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미 품질을 넘어선 무엇가를 시장이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의 소비자는 미국의 테슬라 차량의 마감이 좋지 않다고 외면하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국내의 경우는 어떠했는가?
한국의 경우 90년 중반부터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도입하여 품질혁신에 성공하며 다른 기업에 확산되었다. 2000년대 까지 많은 기업에서 전담 부서를 만들거나 전문인력 양성을 통해 활성화 되었다. 그 결과 국내 제품의 글로벌 품질 경쟁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식스시그마는 당시 한국산 제품의 고질적인 품질 이슈 상황과 맞아떨어지며 대유행을 거치게 된다. (불량품율이 약 10%를 상회할 시절이다.)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에 따라 95년 3월 삼성전자 구미공장에서 전자제품의 화형식을 진행하며 품질 경영을 시작했고, 그 보다 조금 이른시기의 대우전자는 이른바 '탱크주의'로 필수적인 기능에 집중하며 튼튼하게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90년 중후반 부터 한국은 내수에서 해외 수출이 본격화되며 (일명 '세계경영') 품질에 대한 이슈가 경영 화두로 등장하며 그 해결책으로 식스시그마가 유행처럼 확산되었다.
그런데 2010년 초부터 이상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LG전자는 식스시그마가 아직까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며 전사적으로 독려한 반면, 삼성전자는 식스시그마 사무국을 해체하고 전면 중단시켰다. 생산운영관리에서 틀에 박힌 프로세스를 강조하는 식스시그마보다는 창의적인 사고를 해야하는 시점이 도래했다는 설명이었다. 즉 경영환경과 소비자의 니즈가 변화했음을 의미했고 유행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ESG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경영유행인가? 경영의 본질적인 것인가?
지금은 ESG(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 경영시대이다. 구글 트렌드 분석결과에 따르면 2004년 식스시그마 검색량이 피크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한 반면에, 2020년 이후로 부터 ESG라는 키워드의 검색결과가 눈에띄게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의 경영환경은 지속가능성, 친환경, 사회적 영향력 등과 같은 요소가 매우 중요하다. 기업은 정부가 아니지만 전 지구적인 문제는 정부 혼자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업 경영의 지배구조, 투명성, 공정성 등도 사회적 요구수준에 걸맞게 변화해야 생존할 수 있다. 투자자 역시 전통적인 방식과 함께 사회적 영향력과 지속가능성 등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하여 의사결정을 한다. 그러나 ESG도 과거의 식스시그마와 같은 신기루같은 경영유행인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령 ESG 경영이 반드시 필요한 업종, 기업형태 등이 있을 것이다.
과연 ESG는 경영유행인가? 경영의 본질적인 것일까?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락(Blackrock)의 래리 핑크(Larry Fink) 회장의 연례서신에서 항상 등장하던 ESG 단어가 올해는 왜 등장하지 않았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독자들이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며 정리해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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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경영학이란?
기존 경영학의 목표인 사업가치 극대화, 주주가치 제고, 수익성 확보 등의 개념을 뛰어넘어 사람 중심 경영으로 경영 성과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춰 직원, 공동체, 더 나아가 사회를 살리는 경영을 지향합니다. C경영학에서 비즈니스 모델은 사회적 영향력과 가치, 다양한 사업적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포용적 비즈니스 모델을 "바른 경영"이라고 정의하고, 여기서의 C는 읽는 독자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만, Challenge, Creative, Collaborative, Christian 각자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CMBA 원론(제 14강 생산운영관리), 김종빈 교수,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일하는 이유(ESG 경영이슈), 강민수, 북랩
기업지배구조가 경영유행 도입에 미치는 영향: 식스시그마 사례를 중심으로, 김성훈, 한국전략경영학회
전략과 경영자, 박철순, 경문사
6 시그마 경영에 관한 고찰, 박성현, 경영정보학회('9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