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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돌이 아빠 Sep 21. 2023

간질간질 모기야 차라리 날 물어라

<겉밝속축> 시리즈

 <아빠 방패> 종이에 과슈와 수성마커펜, 23 x 16 cm, 2023

 지긋지긋한 코막힘. 왼쪽 콧벽이 서로 달라붙고 완전히 공기가 드나들지 못한다. 오른쪽 코에서는 바람과 함께 피리소리까지 나기 시작하고, 콧구멍을 후비고 휴지를 산더미같이 쌓아 올리며 코를 풀어대지만 무의미한 코피만 흘린다. 그리고 여전히 코는 꽉 막혀있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였나, 영어시험을 준비하는데 정말 시간이 부족했다. 그간 공부를 전혀 안해서 단어를 외우고, 쓰고, 말하기를 준비하는데 잠을 한두 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아도 숙제를 끝낼 수 없었고, 열심히 같은자리에서 달리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킁! 킁!"


 답답한 코를 부여잡고 책상에 앉아 골머리를 썩고 있는데, 아버지가 수술날짜를 잡아왔다. '내 코가 그 정도 인까?'싶었던 것이 나는 당시의 답답함이 치명적이지는 않아서였던 것 같다. 하지만 무슨 연유인지 아버지는 내 등을 떠밀어 큰 대학병원의 수술실에 집어넣었고, 나는 코 뼈를 깎아내는 수술을 받았다.


"킁! 킁!"

"콩돌이 왜 코 막혀?"


 이따금 콩돌이가 코로 숨을 쉬지 못하고 괴로워하면 내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분만실에서 장모님과 판박이 같던 아이의 외모를 보며 '그래도 코막힘을 없겠구나' 며 안심했던 내 뒤통수를 후려치듯 아이는 환절기와 겨울만 되면 킁킁거리기 시작한다. 가장 처음 원치 않던 동병상련을 느낄 때 비로소 아버지가 나와 옥신각신하며 일사천리로 수술 일정을 잡은 심정을 헤아리게 된다.


 나는 여름이 정말 싫다. 이유를 대자면 끝도 없을 것 같다. 땀, 습기, 벌레, 젖은 옷, 그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빨래, 덜 마른 세탁물의 퀴퀴한 냄새, 에어컨 바람, 냉방병, 곰팡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워지는 여름덕에 3월 중순만 되어도 뜨거워지는 태양빛에 진저리가 쳐진다. 이에 더해 겉옷 속옷 가리지 않고 내가 입은 옷들은 마치 물에 담근 듯 흥건해지는데, 특히 아내는 내 엉덩이 가운데에 1자의 세로선을 만들어내는 하체의 습기에 몹시 창피해하며 포복절도한다.


 후끈한 체온, 끈끈한 땀, 페로몬을 잔뜩 뿜어내는 체취에 모기들이 '얏호' 소리를 지르며 달려든다. 괴팍하고 급한 성미의 나는 봉긋 솟아오른 피부를 피가 철철 흐르도록 긁어댄다. 피딱지가 자연스레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이 긁고, 또 물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지긋지긋한 여름이 자취를 감추어간다.


"웨애앵-"

"모기다! (속닥)"


여름 내내 우리 세 가족은 소형 에어컨이 있는 방에서 같이 잤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풍기는 냄새가 모기를 끌어들이고 죄스럽게도 나 대신에 꼬물거리는 콩돌이를 탐하기 시작했다. 나는 할머니 담배냄새, 녹는 듯 뜨거운 물을 쏟아부은 왕뚜껑에 수십 년을 노출되어도 건강하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아내는 환경호르몬과 화학용품의 폐해를 철저히 조사해서 홈매트를 멀리한다. 까마득한 새벽녘, 텐트처럼 생긴 모기장을 펼치고 콩돌이를 그 안에 가두어 둔다.


"아이고! 온몸에 모기자국이!!"

"내가 홈매트 사 오랬지!"

"그럼 네가 사 오던지!!"


 아내와 서로 책임을 주고받는 사이 콩돌이는 온몸을 벅벅 긁어댄다. 코리안 좀비가 옥타곤에 들어가 울퉁불퉁한 몸의 외국인 형님들과 사투를 벌이듯 콩돌이는 텐트 안에 모기와 둘이 갇혀 밤새 몸을 뜯겼다. 관자놀이, 손가락, 팔목, 종아리, 발바닥... 문자 그대로 몸 전체가 모기 물린 자국으로 부풀어 올랐다.


 차라리 내가 물릴걸. 나는 여름이 정말 싫고 모기에 물려 살을 긁으며 손톱 밑을 핏물로 물들이기 싫다. 하지만 아버지가 느꼈던 미안함,  물려주기 싫었던 본인의 단점이 콩돌이에게서 모습을 드러내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고민한다.


 "아빠가 대신 물릴게.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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