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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돌이 아빠 Sep 22. 2023

친구

<겉밝속축>시리즈

<진짜 일어나야지> 종이에 과슈, 16 x 23 cm, 2023

 벌써 8년이 다되어가는 결혼 무렵, 마음속에는 큰 근심이 있었다. 바로 '와줄 만한 친구'를 떠올리는 일이었는데,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손으로도 꼽아보고 종이에 리스팅도 해보며 '어디부터 어디까지 초대해도 괜찮은지' 결정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이런 내게 쉽게 쉽게 인간관계를 맺고 경조사에 부담 없이 문자메시지로 상황을 알려도 금세 달려와주는 친구들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몹시 부럽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인싸 중에 핵 인싸인 우리 아버지를 보면 그렇다. 하지만 꼬맹이 시절부터 고요한 자정 무렵을 박살내고 울려 퍼지는 만취한 아버지와 동창분들의 고성, 그리고 간신히 웃는 얼굴로 느닷없이 잔치국수를 끓여 바치던 엄마의 부스스한 뒷모습을 생각하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은 명언이라 생각한다.


"아- 다들 뭐 하고 지낼까? 보고 싶은데. 한번 다들 보자고 해볼까?"

"?? ㅎㅎ 네가 뭔데?"

"...ㅎㅎㅎ"


꽁생원 가슴에 잊히지 않는 저 말은 수십 수백 번 술김에 엉뚱한 사람에게 하고 또 해도 울화가 치민다. 잘 해내던 학교생활에 문제가 생기던 시절이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친구들이 득실거리던 게 일상이던 내가 고등학교를 가고, 늘 지내던 대로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자 하나둘씩 다가와주는 친구들이 없어졌다.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먼저 손 내미는 법을 배우지 못한 나는 한동안 혼자 지내는 법을 배워야 했고, 그 시간은 참 느리고 지루했다. 그리고 새 학년 새 교우들로 리셋이 된 연초부터 나는 내 태도를 고치고 방정스럽게 손을 흔들며 먼저 인사하고 귀가 쫑긋 솟을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준비해서 또래들의 맘을 얻으려 몸부림쳤다.


 다행히 학교생활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지만 내심 모든 것이 불편했다. 내 가라앉은 기분을 표하기도 어려웠고, '만만한 녀석'의 모습으로 인식한 친구들은 나를 편해하거나 하대했다. 그래도 좋은 무리에 소속감도 갖게 되고, 안정감을 느끼며 얻은 이득이 더 크기에 늘 싱글벙글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반 친구들과 흩어지게 되자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졌고, 당연히 만날 일도 줄었다. 나는 보고팠던 그들을 생각하며 같이 운동을 다니던 한 친구에게 "한번 모여보면 어떨까?"라는 마음을 내비쳤는데, 솔직한 그 녀석은 '걔들이 네가 보자고 하면 올까?'라는 식의 싸늘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너무 맞는 말이었기에 나는 적절히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아빠, 나는 친구가 없어."


 가슴이 철렁했다. 이제 막 어린이집을 다니고 주변에는 제대로 말도 하는 친구가 없는데,  콩돌이가 인맥을 들먹이며 신세한탄을 하다니. 아무리 요즘 학부모들이 주도해서 모임을 만들고 친구 무리를 구성해 준다지만 벌써? 아니면 사시사철 모여노는 뽀로로와 그의 친구들같은 집단을 찾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콩돌아, 콩돌이는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삼촌, 사촌누나들 주변에 많은 친구가 있어. 그리고 아빠가 콩돌이의 제일 좋은 친구야."


 '네가 뭔데?'라는 말의 충격만큼 아들이 쓸쓸함을 느낀다는 이야기는 맘을 아프게 했다. 사실이기도 하기에 나는 대답을 에두르며 내가 아들의 좋은 친구라고 확신을 주었다. 그리고 그 '친구'라는 말로 관계설정이 이뤄져서인지 콩돌이는 내게 정말 좋은 친구가 되었다. 벌써부터 내가 좋아하는 팝음악, 위인의 연대기 등에 관심을 보이고 훌륭한 말상대가 되어준다.

 



 콩돌이 하원을 나가는 길은 참 멋쩍다. 용기를 내서 콩돌이 친구 엄마들과 인사를 나누고 살가운 스몰토크를 이어가지만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른다. '내가 청소니 뭐니 시키는 것은 다 할 테니 하원만은 피하게 해달라'는 간청에 아내와 엄마가 콩돌이 하원을 맡아주고, 나는 해가 떨어질 즈음이면 그 작은 손을 꼭 잡고 같이 놀이터로 향한다.


 놀이터는 몇 명씩 무리를 이룬 아이들이 뛰고 잡으며 웃어댄다. 행여나 소외감을 느낄까 안달복달하며 나는 더 큰 소리로 웃고 콩돌이를 쫓고 그에게서 도망치며 혼을 빼놓는다. 다행히 잘 웃고 소박한 일에 행복해하는 아들은 아빠와 단둘이 뛰어다니는 일이 즐거운지 배를 움쳐 쥐고 웃어댄다. 미끄럼틀, 시소, 숨바꼭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네 타기의 풀코스를 거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저녁 8시가 넘었고, 동네는 컴컴해져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아빠."

"응-"

"놀이터에 우리만 남았어. 아빠, 우리는 정말 좋은 친구야."

"맞아, 우리는 최고의 친구지."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는 요즈음 어마어마한 꿈을 꾸는 일에도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걸 느낀다. 그저 가능할 만한 일을 떠올리면 싱긋 웃음이 나는데, 부디 콩돌이와 편한 관계가 유지되어서 내가 할아버지가 되고, 콩돌이도 머리가 희끗희끗해져도 그가 나를 '아빠'라고 부르며 반말을 해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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