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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돌이 아빠 Oct 05. 2023

착해

<겉밝속축>시리즈

<착해> 종이에 펜과 과슈, 23 x 16 cm, 2023

  착하다. 착하고 싶고, 착해야 했다. <드래곤볼>의 카카로트나 <우리들의 필드>의 가즈야 같이 싱글벙글 어리숙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눈빛에 날을 세우고 자신의 분야에서 엄청난 능력을 보이는 '힘순찐'이 되고 싶었다. 근데 그 숨겨진 힘이 만화 주인공들처럼 확연히 부각되지 않아서 안타깝게도 착하고 찌질한 캐릭터만 남는 느낌을 받는다.


 성격의 디폴트 값을 '착함'으로 잡아 놓으면 굴욕적이거나 민망한 순간도 허허실실 웃어넘길 때 저항이 별로 없다. '원래 착한 사람'이기 때문에 저렇게 처신하는 거라고 주변에서 적당히 넘어가주는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당사자의 맘 속에는 끊임없이 부글대는 자아가 들고 일어난다. 누군들 큰소리치며 자기주장 늘어놓고 싶지 않을까. 다만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의 실망을 미리미리 중화시키기에 좋은 것이 저놈의 착한 마음씨는 아닐까 싶다.


 내가 기억하기로 꽤 오래전부터 농담 삼아 "쟤가 그래도 착해."라는 표현이 갖는 은근한 조롱에 대해서 사람들이 공감해 왔다고 느낀다.  콕 집어 주목해 줄 만한 장점을 찾기 어려울 때, 흔히 처음 보는 부모님의 지인들이 하는 "어- 자알 생겼네에." 또는 "아이고, 참 착해 보이네."와 같이 그 어디에나 갖다 붙일 수 있는 하나마나한 말이 '착하다'는 표현인데, 역설적으로 착한 사람이 겪는 수모는 인생을 살아가는 오랜 시간동안 견디기 만만치 않기에 능력이 있다면 이놈의 '착한'이라는 수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훨씬 홀가분하고 좋을 것 같다.


 이제 내 시점에서 주변사람들을 바라본다. 나는 누구와 시간을 보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금 만남을 기약하고 싶을까? 오늘 문득 생각이든 부분은 '물어봐주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번거롭고 딱히 들을만한 내용이 없는 말이 있을 때 상대의 의견을 섣불리 물었다가 끝이 나지 않는 대답에 '아차' 싶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 길고 지루할 수 있는 나로서도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고) 물어봐주고 잘 들어주면 또 만나고 싶다. 그러기에 나도 최선을 다 해서 진지하게 물어보고 내가 들은 게 맞는지 확인하고 이후에 확실히 하고 싶은 부분을 추가로 묻다 보면 대화가 즐거워진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의 심중은 알기 어렵지만 그래도 그런 마음씀씀이에 감사함이 생긴다. 결국 내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선의를 베풀고 이를 돌이킬 수 없기에 늘 후회하고 이번에는 꼭 쌀쌀맞게 굴겠다고 다짐하지만 '내가 받았으면' 하는 호의를 생각하며 이를 최대한 실행하려 하다 보니 다람쥐 챗바퀴처럼 또 듣게 되는 말은 "아이고, 착하네."이다.


 벗어나고 싶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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