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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돌이 아빠 Oct 11. 2023

후회

<겉밝속축> 시리즈

<젖은 캔버스> 종이에 펜과 과슈, 23 x 16 cm, 2023

 좋게 말하면 복기, 어리석음을 강조하면 미련.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매번 후회를 한다. '그때 왜 그랬지?', '이때 이랬어야 했는데'와 같은 자책을 쌓으면서 내 결정과 행동 하나하나를 못마땅해한다.


 청소년기에 용기 내지 못했던 순간들과 가진 모든 걸 쏟아붓지 않고 주춤거렸던 장면이 지워지지 않고 나를 괴롭히곤 했다. 소위 말하는 '쿨'한 태도로 비겁을 렸고, 의연함인 척 나태히 흘려보낸 성과를 내 것이 아니란 결론으로 타협했다. 그리고 전역을 한 어느 날 잡아먹힐 것만 같이 어둡던 창밖을 바라보며 당시의 내가 너무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기억을 더듬어도 언제인지 정확하지 않은 까맣던 그 밤은 막막했던 가슴의 느낌만 아련히 남아있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태도를 많이 바꿨던 것도 떠오른다. '도대체 저놈 왜 그러냐'며 갑자기 유난스럽다는 말을 건네던 주변사람들과 빠져 죽기 직전의 몸부림과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내가 스스로도 낯설었다. 그런데 그리 성실히 살아가던 그 시절에도 후회는 계속됐다. 지금 생각해 보니 굳이 과거의 아쉬웠던 사건을 들추는 짓은 현재의 불만족이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알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전이나 최근이나 더 잘되고 싶고 그러다 보면 불안함이 세차게 휘저은 흙탕물처럼 뿌옇게 몰아쳐 올라온다.


엊그제도 한 7년 전 즘부터의 내 결정을 후회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았던 순간들이 사슬처럼 엮여서 큰 줄기를 만들었고, 지금 보니 당시의 물살을 따라 어푸어푸 살기 위해 헤엄치며 떠내려간 자리에 서있는 내 모습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모든 선택들이 바보 같았고,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내가 마치 인터스텔라 속 책장 너머 쿠퍼의 과거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나태하고 의미 없던 날들이 강조되고 교차편집처럼 이어 붙어지며 끝없이 나를 질책했다.



 까불거리는 나와는달리 어려서부터 묵묵히 그리고 진지하게 공부하던 뒷모습을 보인 친구에게 질문을 했었다. '후회가 많이 되는데 어쩌냐'는 뜬구름 같은 말을 건넸는데, 아마 몇십 년이 지나 노인이 되어도 의지할 수 있는 좋은 답을 주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자책이 되는 옛일이 멍청이 같은 모습으로 포장되어 쳐다도 보기 싫을지 모르지만 당시의 너는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게 최선이었다'는 식의 현답을 주었고, 나는 눈보라를 헤치고 돌아온 여행자가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신 듯 마음이 녹았다.


 그리고 다시 내가 아내와 함께 돌아가던 7년 전 미국행 여정을 떠올려봤다. 둘이 끌어안고 의지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한국에서 보니 엄두도 못 낼 곳에서 작업을 소개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밤잠을 설치고 부족한 언어로 행사를 준비하며 하루를 그다음 날과 연결하다 보니 콩돌이가 태어났고, 코로나가 덮쳤고 갑작스레 한국으로 돌아와 아이를 가족들의 울타리에서 무사히 돌보던 일이 화악 펼쳐졌다.


 "자기는 쉰 적이 없어. 과할 정도로 스스로 몰아세우며 지금까지 해온 거야."


아내는 나를 또 도닥였다.



<낡은 모자> 종이에 펜과 과슈, 23 x 16 cm, 2023

 며칠 제대로 쉰 것 같지 않은데, 또 전시가 다가온다. 결혼도 마찬가지였고, 막상 일정이 셋업 되면 금세 날짜가 얼굴을 들이민다. 씨끄러운 창고에서 얼기설기 만든 나무에 캔버스천을 스테이플링하고 축축한 제소를 칠했다. 어쩌다가 그런 삶을 살았는지 궁금했던 뮤지션들의 생애를 듣고, 맥락을 이해하니 다시 그들의 노래가 듣고 싶어졌다.


 Radiohead의 <Spinning Plates>를 들으며 아슬아슬 세운 캔버스에 젯소칠을 이어갔다. 맘은 급해지고 붓질에 속도를 올리는데 사방 1미터가 넘는 꽤 큰 캔버스 패널이 내쪽으로 기울며 나를 덮쳤다. '악!'소리와 함께 나는 손과 머리로 캔버스를 먼지투성이의 바닥으로부터 살려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검은 모자는 챙의 모서리와 정수리 부분이 흰 페인트로 덮였다.


 "병신! 병신! 병신! 으이그!"


 왜 서둘렀을까. 천천히 할걸. 손은 흰 물감으로 범벅이 됐고 모자는 쓸 수 없게 되어버려 나 자신에게 가장 싫어하는 욕을 퍼붓는다. 그런데 작업실을 빠져나와 생각해 보니 엊그제 콩돌이 엄마에게 늦은 생일 선물을 부탁했는데 새 모자와 칼세이건의 <코스모스> 국문/ 영문판 링크를 보낸 것이 떠올랐다.


 그래. 잼을 바른 식빵이 흙바닥에 찰싹 달라붙듯 젯소로 축축한 면이 시커먼 바닥으로 엎어졌으면 아마 내 허벅지에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주먹으로 내려쳤을 거야. 지금이 항상 최선이야. 어쩌겠어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렇게 펼쳐진 세상이 지금인데, 받아들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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