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닭강정> 리뷰
유쾌한 설정과 독특한 대사, 그리고 병맛 가득한 연출로 유명한 이병헌 감독은 최근 영화 <드림>에서 뻔한 전개에 신파적인 작품으로 다소 실망을 안겨줬던 기억이 있다. 여전히 <멜로가 체질>이 <극한직업>을 제치고 그의 최고작이라는 평가와 함께, 흥행 부담이 적은 드라마가 오히려 그의 재능을 맘 것 펼칠 수 있는 포맷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병맛스러운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병헌 감독의 드라마가 나왔다. 그의 병맛스러운 재능을 한없이 보여준 드라마, 바로 오늘 리뷰하는 <닭강정>이다.
시놉시스는 예고편에서 본 것처럼 단순하다. 이상한 기계에 들어간 민아가 닭강정으로 변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세한 기계공장 사장인 아빠 선만과 인턴사원 백중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니는 드라마이다. 웹툰 원작에서 가져온 이 소재는 어떻게 사람이 닭강정으로 변했는지 그 떡밥까지 완벽히 그려내면서, 그저 황당하기만 소재를 대우주 판타지로 변주시키는 흥미로운 전개까지 보여준다. 더 놀라운 건 이 흥미로운 소재의 빈틈을 채워주는 살이 드라마틱한 서사가 아니라, 이병헌 감독 특유의 병맛스런 말장난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적당히 할 줄 모르는 끝없는 병맛의 연속인데, 이 병맛스러운 코드에 얼마나 환호하고 웃어주느냐에 따라 이 작품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OTT 시대로 넘어오면서 최근 병맛스러운 드라마들이 종종 나오긴 했었다. 최근 <힙하게>와 <유니콘>부터 멀게는 <산후조리원>과 <보건교사 안은영>까지. 이 작품들 모두 나름의 개성과 매력을 선보였지만, 진짜 병맛 가득한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드라마라는 장르적 재미와 타협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닭강정>은 다르다. 이병헌 감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세상에 이런 병맛은 없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준다. '너희들이 어디 한번 안 웃나 두고 보자'라는 식으로 온갖 말장난과 병맛 개그를 다 보여준다. 아무리 개그 코드가 안 맞는 사람들도 한 번씩은 터질 수밖에 없는 병맛 퍼레이드이다. 온갖 구질의 병맛 투구를 던지니, 어디서 웃어야 할지 모르는 개그 코드도 결국 한방씩 터지게 된다.
흥미로운 건 이병헌 감독은 이러한 작품의 문제를 스스로 채찍질하면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즉 감독 본인도 이 작품의 문제를 알면서, 그것마저도 개그 요소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씨바하고 존나 빼면 말을 못 합니까?
정말 못하는 게 없어! 잘하는 것도 없고!
그만해! 왜 적당히 할 줄을 몰라!!
왜 중요한 구간에서 불필요한 고집을 부리게 됐을까?
이상해... 보게 돼...
전작 <멜로가 체질>을 끝까지 우려먹으면서, 스스로 <멜로가 체질> 같은 작품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닭강정>은 이와는 전혀 다른 성향의 드라마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뭔가 병맛 가득한 작품 안에서 자신의 평가에 대한 방어 기질의 성향도 그리면서도, 마지막까지 작품을 위해 스스로를 내려놓는 대범함 마저 엿보이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개인의 호불호의 영역인 개그 코드는 이 작품의 본질적인 문제일 수 없다. 진짜 문제는 이 적당히 하지 않는 개그가 시청자와 소통마저 끊어버린다는 점이다. 시청자의 감정과 생각을 끼어들지 못하게 하고, 마냥 웃으라고 내던지기만 하는 느낌이다. 충분히 흥미로운 후반부 이야기와 인물들의 서사에 몰입할 만도 한데, 스스로 이야기의 맥을 끊고 병맛으로 끊임없이 질주만 해버린다. 장르적 재미와 타협하지 않은 건 알겠지만, 이건 너무나 불소통하는 느낌이었다.
이병헌식 말장난 개그와 작가적 재능은 분명 높게 사지만, 연출에서도 탁월한 감독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연극스러워 보이는 이병헌식 대본을 더 연극스럽게 찍는 카메라 워킹과 리듬감이 전혀 없는 편집들은 그가 이름값만큼 연출적인 재능이 뛰어난 감독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매회 30분도 안되는 짧은 러닝타임에도 이 작품이 종종 지루하게 느껴지는 건 연출과 편집의 문제로도 보인다.
<닭강정>은 독특한 소재에 병맛 가득한 개그 코드로 무장한 드라마이다. 그동안 병맛스러운 작품들이 드라마의 본질인 '재미'를 놓치는 부분과 비교하면 그래도 <닭강정>은 어느 정도 재미를 보장한다. 여기에 류승룡과 안재홍, 그리고 김태훈의 혼신을 다한 연기가 병맛스런 극본과 좋은 시너지를 내면서 이 작품의 강점을 더욱 뛰어나게 만든다. 무엇보다 부성애와 사랑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우주대통합까지 펼쳐지는 메시지에서 이병헌 감독의 대담한 뚝심마저 느껴지게도 한다.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상 가장 병맛스러운 작품으로 기억될 <닭강정>은 이 병맛 코드에 얼마나 호응하냐에 따라 평가가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작가주의적인 패기와 드라마신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병맛 코드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면 충분히 수작으로 남을 수 있겠지만, 감독의 작가적 야심에 호응해서 나의 지적 허세로 보여주기엔 이 작품의 완성도가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제법 있어 보인다. 그래도 이 작품의 결말이 마음에 들었기에 굳이 호불호로 나누자면 나는 호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이상하게 보게 되는 현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나였다.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