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플러스 <삼식이 삼촌> 리뷰
1960년 혼돈과 격동의 시대. <삼식이 삼촌>은 그 시대를 관통했던 여러 인물들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시대극 드라마이다. 송강호의 첫 드라마 작품으로 화제가 되었던 <삼식이 삼촌>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시대상을 반영하는 묵직한 분위기가 맞물리면서 남다른 몰입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예상과 다르게 이야기를 뻗어나가지 못하고, 한 사건만 반복하는 아이러니함을 보여준다.
송강호의 첫 드라마 작품인 <삼식이 삼촌>은 분명 웰메이드 드라마이다. '<카지노>처럼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은 1화를 보는 순간부터 사라진다. 4.19 혁명 직전의 혼돈과 격동의 시대를 다룬 <삼식이 삼촌>은 언뜻 보면 시대극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시대극의 탈을 쓴 누아르 작품에 더 가깝다. 그 시대를 관통했던 여러 인물들의 욕망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역사에 반영되는지 그려지는 과정이 상당히 흥미롭게 펼쳐진다. 무엇보다 역사 뒤에서 개인의 욕망들을 조정하는 주인공 삼식이라는 캐릭터가 너무나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더욱 인상적인 건 삼식이라는 인물을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리면서, 그를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인터뷰 형식의 플롯이 다소 복잡한 느낌도 주지만 흡입력 강한 스토리와 초호화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시대상을 훌륭하게 그려낸 분위기와 미술까지 오랜만에 대작다운 위용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예상과 다르게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계속해서 아쉬운 부분들을 드러낸다. 사실 이 작품을 초반부만 보았을 때는 3.15 부정선거에서 4.19 혁명, 그리고 5.16 군사정변까지 그 이야기가 힘 있게 펼쳐질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삼식이 삼촌>은 13회까지도 3.15 부정선거에서 이야기를 멈추면서 더 앞으로 진행시키지 못한다. 픽션이라고 하지만 <삼식이 삼촌>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역사를 모티브로 한 시대극 드라마이다. 시청자들은 주요 사건에 대한 결말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이 작품은 실패한 쿠데타의 진범을 찾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결국 <삼식이 삼촌>의 인터뷰식 구성이 쿠데타의 진범을 찾는 과정이란 걸 깨닫게 되지만,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 같은 진짜 사건들이 제대로 전개되지 않으니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사실 진짜 문제는 편집이다. 매회 오프닝에서 보여주는 플래시백과 인터뷰 형식의 플롯으로 시간대를 섞어놓는 구성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무난히 받아들여진다. 문제는 이러한 구성안에서 회상신이나 같은 장면들이 너무나 많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전개는 느리고 같은 사건만 파고 있는데, 회상신마저 끊임없이 반복되니 이야기는 지루해지고 감정의 서사는 뚝뚝 끊어진다. 마치 개연성이 필요한 장면들은 다 스킵하고, 이해를 돕기 위한 장면들만 반복해서 보여주는 느낌이다. 수많은 드라마를 봤지만 이토록 같은 장면을 반복하는 드라마는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반복되는 회상신이 내용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도 않는다. 인터뷰 형식의 플롯 자체도 복잡한데, 후반부에는 김산과 정한민이 서로 다른 진술을 통해서 이야기를 더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베일이 가려진 삼식이의 진심만 들여다보는 것도 버거운데, 이 작품은 김산까지 알 수 없는 인물로 그려내면서 메인 캐릭터들의 목적을 알 수 없는 드라마로 만들어버린다. 여기에 1960년이라는 작품의 배경은 우리가 알고 있는 5.16 군사정변(1961년)과도 연도가 달라 여러 혼란마저 준다. 사실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건 삼식이와 김산이 혼돈의 시대에 자신들의 욕망을 성찰시키느냐 마느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삼식이와 김산의 진심이 무엇인지,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 장본인이 누구인지에 많은 시간들을 허비한다. 이러한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인터뷰 형식의 플롯은 드라마의 흐름을 끊고, 이야기를 더욱 산만하게 만들 뿐이었다. 이는 마치 목적은 잃은 채 수단에만 목을 매는 드라마 같았다. 결국 16부작을 달려 결말까지 와서야 우리가 보고 싶었던 장면들을 마주하게 된다.
작품의 아쉬운 문제들은 인상적인 결말과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로 어느 정도 가려진다. 무엇보다 천의 얼굴로 사람을 설득하고 포섭하는 능력, 이를 오묘한 표정으로 연기해 내는 송강호의 아우라는 두말할 필요 없이 완벽했다. 최근 커리어에서 다소 아쉬운 연기를 보여줬던 그이지만, 이번만큼은 오랜만에 송강호 다운 아우라를 느끼게 해준다. 유연하게 치고 빠지는 송강호 특유의 연기로 혼돈의 시대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삼식이라는 역사 뒤편의 인물을 완벽히 연기해 낸다. 심지어 이런 아우라를 16부로 나눠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황홀할 지경이다. 경이롭다는 말을 리뷰에서 종종 했지만, 정말로 이 단어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연기였다. 특히나 표현하기 힘들었던 김산에 대한 삼식이의 진심을 그려낸 마지막 회의 연기는 너무나 황홀한 경지였다.
이러한 아우라에 종종 잠식당하기도 하지만, 변요한의 연기도 역시나 훌륭했다. 욕망을 감춘 위선자의 모습과 그 안에서 삼식이에 대한 진심까지 드러내야 하는 복잡한 캐릭터였던 김산을 송강호의 아우라 안에서 무난히 연기해 낸다. 괴물 같으면서도 나약했던 강성민을 표정부터 발성까지 남다르게 표현했던 이규형의 연기 역시 놀라웠다. 진기주부터 서현우, 오승훈에 노재원까지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캐릭터에 완벽히 부합하면서 하나같이 눈부신 연기들을 선보인다.
<삼식이 삼촌>은 신연식 감독이 극본과 연출을 혼자서 담당한 작품이다. 16부작 드라마에서 감독과 극본이 같은 경우는 이 작품이 드라마 역사상 처음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 러닝타임을 본다면 사실 이 작품은 10부작의 분량밖에 나오지 않는다. 반복되는 장면들과 어색한 편집이 어쩌면 디즈니 플러스와의 약속된 계약에 이뤄진 무리한 편집 때문은 아니었을까 예상해 본다. 연출가와 작가가 같음에도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편집을 하기도 사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드라마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서 <삼식이 삼촌>은 분명 웰메이드 드라마이다. 역사의 뒤편에서 혼돈의 시대를 그려낸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두 남자의 진심에 대한 끊임없는 반추. 여기에 놀라운 배우들의 연기와 시대 배경을 그려낸 미술까지. 목적을 잃은 채 수단에만 올인하는 중후반부 이야기와 이해할 수 없는 편집이 계속해서 아쉬울 뿐이었다. 결국 삼식이 삼촌의 진심과 김산의 욕망이 하나의 역사가 되는 인상적인 결말을 보면서, '이 작품이 10부작 분량으로 임팩트 있게 편집되었다면 어떠했을까?'하고 계속해서 되뇌게 된다. 우리가 또 언제 송강호라는 대배우의 연기를 드라마에서 볼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서 말이다.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