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커넥션> 리뷰
지상파 드라마들이 스릴러 장르에서 유독 몰입도가 약한 이유가 있다.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는 표현의 디테일에서 수위의 문제 때문에 늘 한계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OTT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흡연 장면이나 그 흔한 욕설 하나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커넥션>은 이러한 핸디캡을 갖고도 지상파에서 뛰어난 스릴러 드라마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현명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커넥션>은 지상파에서 정말로 보기 힘든 날이 강하게 서있는 스릴러 드라마이다. 마약팀 에이스 형사가 마약에 중독된 체로 오랜 친구의 자살 사건을 파헤친 다는 시놉시스. 마약 범죄와 친구들의 비밀, 이 두 가지 사건이 맞물리면서 범죄 카르텔의 실체를 파헤치는 과정이 마치 지상파 스릴러의 걸작 <아무도 모른다>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이 작품이 날이 강하게 서있는 이유는 흥미로운 스토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바로 주인공이 마약에 중독되었다는 설정 하나가 이 작품을 완전히 색다른 스릴러로 만들기 때문이다. 마약 중독이라는 설정이 계속해서 극적인 상황들을 만들어내고, 이러한 상황을 디테일한 연기와 연출로 표현하면서 강렬한 스릴러로 탈바꿈시킨다. 잔인한 폭력성이나 그 흔한 욕설 하나 없이, 날이 강한 스릴러로 만들어낸 아주 현명한 방법이다.
물론 주인공 형사가 마약에 중독되었다는 설정 하나만으로 <커넥션>은 극을 이끌지 않는다. 마약 중독은 이 작품의 특이점일 뿐, 진짜 강점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스토리 라인이다. <커넥션>은 최근 유행하는 짧은 에피소드식 드라마가 아닌 하나의 사건으로 14부작을 그리는 작품이다. <비밀의 숲>이나 <괴물> 정도의 탄탄한 스토리 라인이 없다면 쉽게 도전하기 힘든 방식이다. 그러한 도전을 <커넥션>은 아주 훌륭히 완수해낸다.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전개의 연속과 완벽한 떡밥 회수. 14부작 작품임에도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이 마지막 결말까지 이어지는 이야기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입체적인 캐릭터들에서 파생되는 사건들이 톱니바퀴 맞듯이 체계적으로 연결되는 관계가 특히 일품이었다. 더욱 매력적인 건 여러 인물들이 얽히고설킨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이야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매회 친절한 지난 이야기의 요약과 어수선하지 않게 이야기 동선을 정리하면서, 누구나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작품을 정말로 재밌게 시청할 수 있었던 이유, SBS가 금토드라마의 패권을 다시 가져올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이 작품의 남다른 디테일은 혼신을 다한 제작진의 연출에서도 드러난다. 특히 지상파라고 믿기 힘든 과감하고 다양한 카메라 워킹은 여러 번 극찬을 해도 모자랄 정도이다. 광각렌즈를 과감히 활용하면서 원근감과 동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촬영이나, 로우컷을 수시로 사용하면서 생동감 있는 연출을 보여준 촬영은 계속해서 감탄하게 된다. 리얼리티를 제대로 살린 색감이나 미술 배경, 배우들의 연기 포인트를 정확히 잡아내는 미장센까지. 지상파의 수준이 이 정도까지 올라왔음을 보여준 제작진의 뛰어난 역량이었다.
박준서의 자살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여러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과 연결되면서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 모든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변질된 우정을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면서 이야기는 파생되고 연결된다. 결국 각각의 캐릭터들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지느냐가 사건들을 리얼리티하게 그려낼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이를 뛰어난 배우들이 훌륭한 연기력으로 승화시켜낸다.
당연히 그 중심에는 주인공 장재경을 연기한 지성이 있다.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극한의 상황을 그려내는 연기, 특히 마약 중독을 표현해 내는 그 리얼리티 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충혈된 눈과 흐르는 땀, 식음을 전패하면서 점점 야위어가는 얼굴 하나하나의 디테일까지. 친구를 잃었다는 후회와 마약에 중독되었다는 자격지심, 그럼에도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의지를 표정 하나하나에 담아내는 혼신의 연기가 실로 압도적이었다.
세속적인 기자를 연기하면서 이 작품의 유연함을 더한 전미도의 능숙한 연기와 악역에서 더 빛을 내뿜는 권율과 김경남의 연기. 특히 보잘것없는 인물이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묘한 캐릭터였던 정윤호를 연기한 이강욱 배우의 연기가 굉장히 돋보였다. 처음 보는 배우였는데, 위축되고 찌질한 모습 안에서 파괴적인 사이코패스를 끄집어내는 연기가 정말로 일품이었다. 웃음기 하나 없는 작품에서 올해 최고의 폭소를 자아냈던 '풍년'역의 정유민의 연기도 인상 깊었다.
너무나 인상적인 작품이었지만,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후반부 닥터의 등장과 함께 장재경을 마약에 중독시킨 이유가 그리 설득력 있지 못했다. 가장 중요했던 '왜?'에서 갸우뚱해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변질된 우정'만으로 이 작품의 모든 사건을 이야기하기에는 그 이유가 다소 약해 보였다. 최소한 복수의 당위성을 확립할 수 있는 강렬한 사건이 20년 전에 있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박준서와 채경태의 20년전 서사도 빈약하단 느낌이 들긴 마찬가지이다.
그저 대화로 비밀들을 풀어내는 마지막회의 전개는 이 작품이 그동안 보여준 전개에 비하면 다소 김빠지는 부분이다. 마약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좀 더 어둡게 이야기를 마무리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초반부 장재경이 마약에 강제로 중독되었으면서도 이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는 이유도 짐작은 가지만, 마지막회를 보면서 '이럴 거면 굳이 왜?'라는 생각도 들었다.
<커넥션>은 20년대 범죄 스릴러 드라마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이다. 쉽게 예상할 수 없는 흥미로운 스토리에 마약에 중독된 형사라는 신선한 설정, 여기에 극의 분위기를 리얼리티 하게 그려낸 연출까지. 다양한 캐릭터들로 파생되는 이야기의 전개와 이에 부합하는 매력 넘치는 배우들의 연기까지 더해져 실로 오랜만에 지상파에서 본 웰메이드 스릴러 드라마였다. <커넥션>은 오락적인 재미로만 따진다면 상반기 가장 재밌는 스릴러 드라마였으며, 지상파로 국한된다면 <아무도 모른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과 함께 20년대 가장 뛰어난 스릴러 작품이었다.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