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리뷰
<굿파트너>라는 흥행작 때문에 초반엔 주목받지 못했지만,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이 보여준 저력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은 그동안 편성을 받지 못하고 무려 2년 동안 창고에서 방치된 작품인데, 그 말은 즉 흥행성에서 드라마 관계자들에게 물음표를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화차>이 후 12년 만의 컴백작인 변영주 감독의 저력과 원작이 가지고 있는 드라마의 힘이 이러한 예상을 통쾌하게 뒤집어 버린다.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의 시놉시스는 간단하다. 살인자로 누명 받은 청년이 10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와 진짜 범인을 찾는다는 이야기. 다소 식상한 소재 같지만 마을 주민 모두가 용의자가 될 수 있다는 설정이 놀라운 몰입감과 호기심을 유발한다. 마을의 감춰진 모습 안에는 불합리하고 더러운 대한민국 사회의 이면들이 숨겨져 있고, 그러한 비밀을 파헤칠수록 한국 사회의 이면들이 들춰지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추리물이란 장르에 충실했던 범인 찾기의 이야기도 재밌었지만, 그 안에서 한국 사회의 이면을 들춰내는 과정이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이었다.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은 하나의 사건으로 14부작을 이끄는 조금은 답답한 전개가 이어지는 작품이다. 하지만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하나의 사건을 두 개로 나누면서, 중간에 한 번 통쾌한 사이다를 안겨주는 영리함도 보여준다. 여기에 주인공 정우와 형사의 흥미로운 관계 변화와 대등한 두 명의 히로인의 등장, 그리고 페이크 히로인의 반전까지 인물들의 구성과 관계도 굉장히 흥미롭게 그려진다.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의 완성도와 이를 깔끔하게 연출한 변영주 감독의 저력까지. 무엇보다 해외 원작을 한국 사회에 맞게 적절하게 각색한 부분과 마지막 결말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끌고 간 이 작품의 극본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배우들의 연기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변요한을 제외하면 스타배우 하나 없지만, 이보다 더 이상적인 캐스팅은 없을 것처럼 모든 배역에서 신인 중견배우 할 것 없이 완벽한 연기들을 선보인다. 잘못된 부성애와 그릇된 소신에 매몰된 권해요와 조재윤의 연기는 감탄의 연속이었고, 1인 2역을 선보인 이가섭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연기력을 가지고 있는 고보결의 연기와 이 작품의 어두운 분위기를 유일하게 환기시켜 준 고준의 재치 넘치는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의 단점이라고 한다면 역시 답답한 전개와 임팩트가 부족했던 마지막 회를 들 수 있다. 특히 백설공주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그려진 하이라이트는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주인공 정우의 캐릭터가 의외로 평범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가장 안타깝게 느껴져야 할 주인공의 서사가 주변 인물들의 서사에 묻혀 보이는 듯한 느낌을 계속해서 받게 되는데, 이것이 연기나 극본의 문제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는 어쩌면 한국 사회의 이면들을 그려낸 여러 캐릭터들의 서사와 조연 배우들의 연기가 워낙 임팩트가 컸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구탁, 최나겸, 심동민 등 조연 캐릭터들에게 집중된 후반부 분량 조절의 실패도 이러한 맥락과 함께한다고 본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올해 3사 분기 작품 중 가장 안정적인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이다. 원작의 힘과 이를 한국 사회에 절묘하게 녹여낸 각색, 타이트하게 밀어붙인 연출과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력까지. 오랜만에 극본과 연출, 연기의 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작품이었다. 최근 겉만 번지르한 OTT드라마들에 좋은 드라마란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준 작품이었다. 변영주 감독은 <화차> 이후 자신의 커리어를 대표할 또 하나의 수작을 탄생시켰으며, MBC는 오랜만에 지상파 웰메이드 드라마의 저력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