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정년이> 리뷰
올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이었던 <정년이>이는 방영 전부터 논란이 있던 작품이다. 원작 웹툰의 주요 캐릭터인 권부용이란 인물을 삭제하면서 퀴어물이었던 원작의 핵심을 완전히 훼손했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드라마 <정년이>는 이어한 논란을 딛고 기대에 걸맞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웹툰 원작의 권부용이 빠지면서 <정년이>는 예상대로 흔한 성장 드라마가 되고 만다. 웹툰 <정년이>의 남다른 포인트인 퀴어 서사가 빠지면서, <유리가면>과 비슷한 흔한 작품이 되고만 것이다. 00년대 유행했던 시대극의 설정을 고스란히 따라가면서, 여성들이 만든 주체적인 여성상을 그리기보다는 클리셰 가득한 시대극의 재미만 쫓는다. 여기에 정년이의 고난과 역경이 빌런에 의한 것보다 본인의 억지와 민폐스러운 상황으로 발생되니, 캐릭터마저 위태위태해 보인다. 정년이가 반드시 국극으로 성공해야 하는 이유가 영서나 주변 인물들에 비해 명확하지 못하니, 이마저도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차라리 16부작으로 늘려서 부족한 서사를 좀 더 촘촘히 그려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마저 든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들이 가볍게 느껴질 만큼 <정년이>는 오락적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재미를 선사한다. 흔한 서사의 성장 드라마지만 익숙한 만큼 쉽게 따라가지고, 여기에 놀라운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이 더해지니 드라마가 신명 나게 재밌어진다. 무엇보다 김태리를 중심으로 출연진들의 엄청난 연습량이 느껴지는 국극 연기와 이를 놀라운 디테일로 그려낸 정지인 감독의 국극 묘사가 드라마를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솔직히 말하면 드라마의 이야기보다 국극 연기에 더 몰입해서 볼 정도였다. 여기에 웹툰으로만 봤던 국극과 판소리의 소리를 영상으로 접하니 그 울림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게 다가온다. 권부용의 서사를 살짝 가미한 홍주란의 후반부 각색도 나쁘지 않았다. 서두른 듯한 결말이 못내 아쉽지만, 엔딩이 중요한 것을 잘 아는 정지인 감독답게 <옷소매 붉은 끝동>에 이어 인상적인 결말 신을 선사한다.
드라마신에서 현재 최고의 여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김태리가 사투리에 열혈 캐릭터로 무장하니, 누구도 이견을 달수 없는 괴물 같은 연기를 선보인다. 여기에 국극의 소리까지 완벽하게 연기하면서 쉴 새 없이 감탄을 쏟아내는데, 특히 8화 엔딩신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김태리라는 보석 같은 배우가 정년이라는 캐릭터와 함께 드라마 안에서 어떤 성장을 하는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뿌듯해진다. 김태리뿐만 아니라 신예은, 정은채, 김윤혜 그리고 우다비까지 모든 배우들이 예상을 웃도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내년 백상에서 여러 부분에 후보를 내세우지 않을까 예상될 정도이다. 물론 김태리는 현재 백상 여우주연상 영순위 후보이다.
드라마 <정년이>는 웹툰 원작을 본 사람과 안 본사람의 평가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원작의 메인 스토리였던 권부용과의 사랑이야기가 빠지면서 그저 흔한 성장드라마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권부용의 서사를 홍주란에 살짝 가미했지만, 여전히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그렸던 원작과 많이 다른 느낌이다. 그럼에도 배우들의 눈부신 열연과 놀라운의 완성도로 그려낸 국극의 묘사가 이 작품을 화려하게 꽃 피운다. 이 정도의 완성도와 열연을 보니 더욱더 원작의 밀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게 아쉽게만 느껴진다. 오랜만에 드라마를 보면서 박수까지 쳐본 작품이기에 이러한 아쉬움은 더욱 짙어지는 것 같다.
20년대 좋은 국내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