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에 대하여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가.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혼자였지만 옆에 많은 아이들이 같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떤 아저씨 한 명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나는 뿌리치지 않았다. 다정하게 말 거는 걸 보고 그냥 착한 아저씨라고 생각했다.
뒷산으로 같이 올라가자고 했다. 나는 의심도 없이 따라갔다. 그 아저씨는 내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만지라고 하고, 입에 대라고까지 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다 사람들 기척이 들리자 그는 사라져버렸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더러워지는 느낌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만난 친구에게 이야기 했다. 어떤 아저씨가 나보고 성기를 만지라고 했다고.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자신의 오빠와 경찰에 신고를 해줬다.
그렇게 경찰서에 가게 되었다. 경찰 아저씨들은 내가 말한 인상착의로 멀리 가지 못한 그 아저씨를 잡았다. 조서를 쓰면서 내 이야기를 들은 경찰 아저씨는 미친새끼라며 화를 냈다.
경찰서에 같이 갔던 엄마는 집에 가는 길에 속상함을 내비쳤다. "어휴 동네 창피해서 말도 못해"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 부모님이 싸우는 걸 보았다. 가부장적이었던 아빠는 애를 어떻게 키운거냐며 엄마 탓을 했다. 엄마는 자신이 죄를 지은 듯 주눅든 채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나는 내가 큰 잘못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 아저씨를 따라가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나 때문에 부모님이 싸웠고, 엄마는 욕을 먹었다. 꿈이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없었던 일이었다고.
그렇게 나는 성추행의 피해자였지만, 그 사실을 철저히 숨겨야 했다.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내면에는 내 잘못이라는 죄책감과 억울함이 엉켜 있었다. 아무도 내가 힘들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엄마와의 대화에서 그 사건이 등장했지만 나는 모두 다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기억이 안난다고 할 뿐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수치심은 성인이 되어서도 나를 괴롭혔다. 원래는 친구와 같이 갔던 네일아트집에 혼자 갔던 날, 남자 네일아트사는 네일 말고 마사지도 서비스로 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의심없이 마사지를 받았다. 그는 마사지 도중 갑자기 속옷 안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무서웠다. 마사지가 끝난 후 그는 몰래 내 사진까지 찍었다. 나는 그 사람이 나를 해칠까봐 겁이 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계산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언제 다시 올 수 있냐고 물을 뿐이었다. 신고해야 한다고 되뇌었지만, 할 수 없었다. 나는 다음 날이면 출근을 해야하고, 가족들에게 이야기하면 또다시 나 때문에 속상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 일도 내 마음에 묻었다. 수치심은 내 마음을 병들게 했다. 나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아무리 씻어도 내가 더러워지는 것만 같은 그 느낌이 슬펐다.
나는 평범하고 싶었다. 그저 아무 일 없이 잘 지내는 것이 소원이었다. 정말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피해자라는 말이 싫었다. 내가 왜 피해자여야 하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렇게 숨어다니기만 했다. 그렇게 하면 아무도 모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피해자임을 알리고 싶은 용기가 생겼다. 나는 이렇게 억울한 일을 겪고도, 이겨내고 잘 살아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렇게 내 자신을 보기 시작했다. 부디 나의 글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