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움과 마음, 그 두 가지에 대한 이야기
나는 내가 굉장히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착각'한 적이 있었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관리한 적도 있고, 매일 태스크 매니저를 사용하기도 했다. 통학시간에는 책을 읽었고, 그게 아니라면 글을 썼다. 휴일에는 시간을 내서 꼭 무엇인가를 했고, 약속의 빈도를 관리했으며, 운동을 일정기간 이상 쉰 적도 손에 꼽는다. 다소 뻔뻔스러운 시작일지 모르지만,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소위 갓생을 표방하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내게 종종 물었다. "아, 너는 진짜 어떻게 그렇게 사냐?" 아니 뭐, 그렇게 뻔뻔하게 운을 떼면서 나는 어쩌면 일종의 변태스러운 뿌듯함마저 느꼈다.
하지만 나에게는 주기적인 권태감이 찾아오곤 했다. 이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열심히 해서' 정도로 얼버무렸다. 남들에게 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변명하곤 했다. 내가 정확히 무엇에 권태로움을 느끼는 것인지, 지금 가는 방향이 맞는 방향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그 모든 고민들에 답변을 하기에 나는 아직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매번 이 감정과 씨름하다 결국 맥주와 영화로 며칠을 지불하고, 일상으로 비척비척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그러다 권태감의 원인이 내 앞에서 물음을 던졌다. "너에게는 목적어가 있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누군가에게 존경받는 삶을 살고 싶어, 어떤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고 싶어... 수많은 to be를 품은 나의 문장들 속에는 늘 '무엇을 위해'가 빠져 있었다. 구체적이지 않은 이미지는 나를 쉽게 지치게 만들었다. 아주 먼 미래의 그림은 있는데, 당장에 내 앞에 손에 잡히는 것은 없으니까. 그건 마치 알맹이가 없는 포도와 다름 없다. 껍질을 핥으면 단 맛이 남아있었을지도 모르고, 나는 그저 껍질에 남은 단물을 느끼면서 '그래 나 잘 살고 있어.'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껍질에는 영양도, 말랑한 식감도, 깊은 달콤함도 담겨있지 않다.
그래서 목적어가 있는 삶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나의 소중한 인연들이 떠올랐다, 그것도 셋이나. 세 사람은 나의 지인이랄것 외에는 외적인 접점이 전혀 없다. 외모, 성별, 취미... 관심사도 다르거니와 셋은 정말 공통점으로 묶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내가 느끼는 그들의 외적인(여기서 외적이란 외모적으로가 맞다)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게 눈빛이다. 그들은 어쩐지 대화하고 있자면 빨려들어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눈을 갖고 있다. 눈동자의 색이나 크기, 속눈썹의 길이까지 세 사람은 모두 각각 다른 매력의 눈을 갖고 있었지만 어쨌든 '어떤 이야기'를 할 때만은 늘 눈이 반짝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어떤 이야기'는 주로 그들이 원하는 것, 사랑하는 것, 추구하는 것, 바라보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이 반짝이는 눈빛 속에 담은 것은 이상과 미래와, 더 나은 내일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진심으로 원했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언제나 눈에 총기를 담았다.
그래서 나에게 그 셋의 연결고리는 너무도 명확했다: 그게 열정이었던 것 같다.
열정(熱情)은 '어떤 일에 대해 열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는 사전정의를 갖고 있다. 한자로 한 자씩 풀면 '뜨거운 마음'이다. 뜨거운 것과 마음, 그 둘 중에서 어느 하나로만 성립될 수 없고, 둘이 합쳐져야 비로소 하나의 완전함을 이룬다. 내가 시간을 쪼개고 순간을 채우며 살기 위해 애썼던 것은 열(熱)에 가깝다. 하지만 정(情)이 없는 열(熱)은 그냥 불타는 숯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렇게 목적을 잃고 방황하면서 '열심히 한다'는 그럴 듯한 변명거리를 들고 도망쳤었다. 나는 굉장히 뜨거웠고, 그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연료를 채웠고 물을 멀리했고 하지만 그 열기에는 목적이 없었다. 그러니 나는 열정(熱情)이 아닌 그저 열(熱)이었을 뿐이다. 그들과 나의 차이점은 열(熱)과 함께 정(情)도 갖고 있는지, 즉 '마음'이 있는지였다. 그들은 '내 곁에 앉은 이들의 따뜻함을 위해', '길을 잃은 숲속의 여행자를 위해', '나 스스로의 아름다운 불꽃을 위해' 등 각자의 이유로 자신을 태웠다.
그제서야 열정의 진정한 의미와, 나의 권태감의 이유가 이해되었다. 그들의 눈빛 속에 담긴 것은 활활 타오르는 목적이었다. 그들은 어떤 것을 위해서인지, 목적어를 명확하게 가진 문장을 갖고 자신들을 태웠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다르게, 목적어가 부재한 문장을 들고 마음이 아니라 몸을 태웠다. 그런데 마음이 없는 뜨거움은 사람을 빠르게 망가뜨릴 수 있는 재주가 있다. '무엇을 위해'가 빠져있으니 열기를 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촛농이 뚝뚝 떨어지는 양초처럼 공허한 기분과 함께, 몸이 망가지곤 했던 것이다.
언젠간 내가 과즙이 가득한 포도로 입을 가득 채우고 달콤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런 내일의 나를 위해 오늘의 나는 새로움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기로 결심한다. 어떤 것들을 사랑하게 될 계기가 있을 때 우선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기로 다짐한다. 내가 어떤 것들에 호감을 가졌고 애정을 쏟았는지 내 마음의 소리에 더욱 귀기울이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완전한 형태의 '뜨거운 마음', 즉 열정(熱情)을 갖기 위해 오늘을 한 발자국 딛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