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찍었는데 뭐 하러 그려? 이렇게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지?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행스럽게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막상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을 할지 십 수년 전부터 생각을 해보는데 아직도 어렵긴 매한가지다.
문제를 제기하고 시대상을 반영하거나, 도덕적인 주제를 통해 사회 유지에 공헌하거나, 철학적인 주제를 나름의 이해와 해석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은 물론 나도 좋은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작업에 관한 한 예술지상주의에 가까운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선거가 있으면 소신껏 한 표를 행사하고 부정한 일을 보면 분노를 표하지만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메시지의 홍수가 거북해서 랩음악은 듣지 않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다분히 감상적이고 별생각 없어 보이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내 작업에 관한 이런저런 조언들은 결코 달갑지 않다. 그림을 시작했을 때의 일인데 나에게 고흐나 들개(이외수)에 나오는 화가의 모습을 기대하며 내 작업을 비난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정형화했던 화가의 모습을 내게 투영하려 했던 것 같은데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고 몹시 언짢아서 다투기까지 했다. 이십여 년이 지난 후 그는 치열하게 앞으로 내달려야만 했던 자신과 달리 지나치게 느긋해 보이는 내 삶에 화가 났노라고 사과를 했다.
살다 보면 그저 위로가 되는 그림이 필요할 때도 있지 않던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보통 사람들과 구분되는 화가의 자격요건 중 하나가 그림을 그리는 기술이 아니던가. 내 작업이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줄 리 만무하고 그런 기대를 하지도 않는다. 단지 바라는 것은 내가 받은 감동을 나누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내 작업은 그저 사진처럼 그려진 그림이기에 앞서 이미 감동적인 순간이었음을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