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베르니의 정원을 꿈꾸며
그림은 내 삶에 몇 가지 변화를 가져왔는데 그중에 한 가지 긍정적인 변화는 주변을 관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늘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고민을 하다 보니 주변의 상황을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게 되었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면서 그들에게 애정을 갖게 되었다. 인연이 시작되면 곧 번뇌가 뒤따른다고 하지만 자연에 대해서만은 욕심을 부리는 것이 부질없음을 알기에 아쉬움이 크지 않았다. 내 작업은 자연에서 마음을 울리는 장면을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자연은 늘 고마움의 대상이다.
동백은 수수한 아름다움으로 피어나 어느 날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이 툭 떨어져 버린다. 오죽하면 나무에서 한 번 피고 땅 위에서 한 번 더 핀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 집 마당에는 재래 동백이 한 그루 있는데 예전에 주택으로 이사를 했을 때 어머니께서 화분에 기르던 나무를 선물로 주셨던 것이다. 이사를 하던 해 가을에 수돗가 옆에 자리를 잡은 동백은 겨울을 나고 봄이 되자 딱 한 송이의 꽃을 피웠다. 그런데 귀하고 예쁜 나머지 손으로 쓰다듬다가 그만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쉬운 마음에 물을 담은 유리 화병에 띄워서 조금 더 보고자 하였다. 봄햇살이 따사로운 오후였는데 때마침 물을 주려고 데크에 올려둔 해피트리의 그림자가 동백과 한가로이 어울리는 장면을 연출했고 마음에 파장을 일으킨 다음 그림이 되었다. 몇 가지의 우연한 순간이 겹쳐 만들어진 이 그림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우리 집 작은 마당에는 2월이면 히야신스와 작약이 땅 위로 머리를 내밀고 3월이면 장미의 새순이 한껏 키를 키운다. 관심과 애정은 애쓰지 않아도 무슨 꽃이 먼저 싹을 키우고 꽃봉오리가 생기고 꽃을 피우는지 알게 한다. 나는 오늘도 나의 작은 마당을 서성이며 지베르니의 정원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