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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석 Apr 09. 2024

황당한 확증편향증 치료법

 몇 년 전 늦은 여름 어느 일요일 아침 허준공원이라고도 불리는 구암공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허준 동상 옆 부근에 하얀 버섯이 산산 조각난 채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뿌려져 있었다. 전날 산책길에서 봤던 소담스럽던 버섯 군락의 처참한 모습이다. 비 온 뒤 땅속을 힘차게 뚫고 나오는 어린 버섯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다 하루쯤 지나면 더 예쁠 것 같아 다음 날 찍으려고 미룬 게 실수였다. 그때 찍어둘 걸 그랬다. 


 에이 씨~ 그냥 놓고 보면 어디가 덧나나, 어느 놈이 그랬는지 참 심술이 놀부보다 더한 놈이네. 내가 이렇게 볼멘소리를 해대자 옆에 있던 아내가 한 마디 했다. “왜 누군가가 버섯을 일부러 망가뜨렸다고 생각하지? 독버섯인지 모르고 사람들이 따갈까 봐 공원 관리인이 미리 제거했을 거야, 작년에도 우리 아파트 어떤 어르신이 여기서 독버섯 따다 먹고 앰뷸런스에 실려 갔다고 하던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내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때 나는 부서져 여기저기 흩뿌려진 버섯을 보는 순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심술 굿은 누군가가 일부러 버섯을 산산조각 내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멋진 버섯 사진을 잔뜩 기대하고 갔다가 처참한 버섯 모습을 보고는 화가 많이 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확증도 없이 누군가가 그랬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런 편견이 앞선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날은 아침부터 애먼 사람에게 한바탕 욕을 해댄 것 같다.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자신의 견해 또는 주장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취하고,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말한다.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이다. 쉬운 말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이다.      


 몇 년 전 구암공원 산책길에서 무참히 부서진 버섯을 보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놀부 같은 누군가가 일부러 버섯을 산산조각 내 버렸다고 생각했다. 독버섯 사고를 방지하려 공원 관리인이 미리 제거했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확증편향증이다. 내게도 이런 증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무서운 병이다. 조심해야겠다.     

 이러한 확증편향증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번지고 있다니 걱정이다. 이병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 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그 이외에는 철저히 외면한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보통 사람들보다도 정치가, 판사 등 전문가들이 확증편향의 포로가 되기 쉽다고 한다.  요즘은 우리나라 사회 특히 정치판에 이런 확증편향증 환자가 많은 것 같다. 정치인들은 국민보다는 당파와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서로 치열한 정쟁을 벌인다. 


 자신들만 옳고 상대편은 틀렸다는 확증에 찬 신념에 사로잡혀 서로 싸우다 보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입는다. 300여 년 전 영국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스위프트는 걸리버 여행기에서 정당 간 나뉘어 싸우는 정치인들의 정쟁 치유법으로 뇌 이식 수술요법을 제시하고 있다.      

표류하던 걸리버는 소인국(릴리풋) 해안에 상륙한 후 잠이 든 사이 온몸을 결박당한다. 소인국인들이 걸리버를 살펴보는 중이다.(위사진)


“걸리버는 정치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학교에 도착했다. 한 교수가 정당들이 격렬하게 싸울 때 이를 그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먼저 각 정당에서 각각 100명씩 지도자를 뽑는다. 그리고 머리의 크기가 비슷한 지도자들끼리 짝을 지어 놓는다. 그런 다음 훌륭한 외과의사에게 지도자들의 머리를 톱으로 자르도록 한다. 뇌가 정확하게 절반으로 나누어지도록 잘라야 한다. 이렇게 잘라낸 머리를 반대편 정당의 지도자에게 붙인다. 엄청난 정확성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수술만 제대로 된다면 정당 간의 싸움은 틀림없이 치료될 것이다. 절반으로 나누어진 두 개의 뇌가 하나의 머릿속에서 논쟁을 하다 보면 곧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생각을 버리고 국민이 바라는 조화로운 사고를 하게 될 것이다.”      


 풍자문학의 대가 스위프트 다운 기발한 발상이다. 아일랜드 출신 조너선 스위프트 (Jonathan Swift)는 1726년 걸리버 여행기라는 책을 썼다. 걸리버가 배의 의사로 취직해 모험의 세계여행을 떠나 소인국 릴리풋, 거인국 브롭딩낵, 날아다니는 섬나라 라퓨타, 고귀한 준마족 푸이눔의 나라를 방문해 겪는 기이한 일을 기행문 형식으로 쓴 소설이다. 많은 사람들이 1. 2부에 나오는 소인국, 거인국 이야기만 알고 어린이 동화책 정도로 취급한다. 하지만 이 책은 토리당과 휘그당이 격렬한 정쟁을 벌이던 18세기 당시 영국의 정치 사회제도를 신랄히 비판한 내용의 4부로 구성된 뛰어난 풍자 소설이다.      


 이글 주제인 확증편향증과는 좀 빗나간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내용이 이 책에 실린 지도다. 걸리버 여행기 3부에 나오는 삽화에 라퓨타와 루그낵, 일본 등의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일본 서쪽 바다 명칭이 'Sea of Corea', 즉 한국해로 표기되어 있다. 걸리버 여행기가 출간된 해가 1726년이므로 그 당시 서양인들은 지금의 동해를 한국해로 불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재 동해 표기를 두고 일본과 분쟁 중인 우리로서는 역사적 사료로서도 가치가 큰 책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도 한국해가 아니라 일본해라고 우기는 일본은 확실히 확증편향증 환자다.     

걸리버여행기 3부에 실린 삽화 지도 : 일본(빨간색)의 서쪽 바다(동해)가 Sea of Corea(파란색)로 표기되어 있다. (dnl사진) 


 걸리버가 정치인들의 뇌 이식 치료법에 대해 들은 것은 날아다니는 섬나라 라퓨타가 지배하는 발니바비라는 섬을 방문했을 때다. 스위프트는 그곳에서 아카데미의 한 교수의 입을 빌려 지독한 확증편향증이란 병에 걸려 정쟁을 일삼는 정치인들의 머리를 서로 잘라 붙이는 ´황당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스위프트가 거의 300여 년 전 제시한 정쟁 해소 방법을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도 한번 사용해 보면 어떨까?      


 스위프트가 살던 18세기에 뇌 이식은 위험한 수술이었다. 요즘은 의술이 발달했고 우리나라 외과 의사들의 솜씨도 세계적이라니 한번 시도해 봐도 괜찮을 것 같다. 만약 수술이 잘못됐다 하더라도 늘 입만 열면 ‘대의(大儀)’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쳐도 좋다고 외치던 정치인들이니 수술 중에 죽더라도 자신들의 대의를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국민들도 수술이 잘못됐다고 의사들에게 책임을 묻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스위프트식 뇌 수술은 아무리 현대 의학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좀 위험해 보인다. 그래서 그보다 좀 안전한 확증편향증 환자의 치료법을 한번 생각해 봤다. 스위프트식 외과 수술요법이 아닌 한방요법이다. 몇 년 전 구암공원 산책길에서 본 독버섯에서 힌트를 얻었다. 우선 우리나라 전국 산야에 자생하는 독버섯을 채취한다. 이 독버섯을 종류별로 분류하여 확증편향증 환자 치사량에 약간 못 미치는 양만큼 달여 탕약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확증편향탕을 환자에게 1주일 이상 꾸준히 복용시킨다. 요즘 정치인들에게 특히 효험이 있을 것 같다. 구암공원의 허준 선생 동상에게 이런 방법이 어떠냐고 한번 여쭈어보아야겠다. 동의보감에 그런 처방이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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