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감동

by 지원의삶을지원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전율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흔한 일은 아니지만, 내가 평안한 감정상태가 아니거나 혹은, 지독하게 내 현재 상황을 파고드는 가사 때문에 간혹 노래로 격한 감동을 받을 때가 있는데 얼마 전 내가 들은 노래가 그랬다.

유난히도 지독했던 이번 여름, 나는 지금 하는 일이 만 2년을 채우고 3년 차에 접어들어 일이 제법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졌다. 그러나 그만큼 나는 일에 회의감을 느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하는 일과 내가 좋아하는 일, 그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다 늙은 40대에 한다는 건 퍽 한심한 것이었다. 게다가 하루종일을 남편과 마주하며 욱하는 당신 성격 다 맞추고 넘쳐나는 일에, 회사 스트레스까지, 내가 도대체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우울감마저 밀려들었다.

주변에선 안정된 재정 상황에 성공한 재테크담까지, 언제까지 나는 축하만 하며 살아야 할지 한숨 나는 나날 속에 남편과 크게 다투고는 언젠가는 이혼을 하고 말겠다고 화를 내고 자려고 누웠을 때 곤하게 자는 딸 둘이 눈에 들어왔다. 자식 이런 참으로 미스터리한 존재다. 언제 이렇게 자라 날 닮은 얼굴로 잠들어 있는 걸까. 아이들은 클수록 근사하다. 이제는 저네들도 컸다고 나와 말도 통하고 수다나 떨자고 동네 카페로 안내하는 엉뚱하지만 건강하게 잘 자라는 내 분신들! 그래, 아이들 때문에 이혼은 무슨...


돌아누운 내 눈가가 시큰해짐을 느꼈다. 남편과 싸우는 건 친구들과 싸우는 것과는 또 다른 낭떠러지이다. 그 끝을 알 수도 없고 이혼 같은 엄청난 결말을 상상하게 하다니. 그러나 조금 싸웠다고 결국 떠올랐다는 게 이혼이란 것은 좀 부끄러운 일이다. 결혼생활 하면서 오랜만에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낀 밤,

우연히 보게 된 동영상에는 발라드 가수 오디션 프로의 한 꼭지가 소개되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검은 드레스를 입은 한 여성분. 어두운 무대에서 그녀가 부르는 곡은 부활의 <NEVER ENDING STORY>.

왜 이 곡을 선곡했을까...? 이 곡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가창하기에 무난한 곡은 아니지 않은가. 후렴구의 휘몰아치는 고음 세례를 원곡자 이승철씨처럼 편하게 소화할 정도로 엄청난 기술을 요한다. 그리고 일단 이 곡은 온갖 감정을 모두 겪고 어느덧 깨달음을 얻은 가창자가 아름다운 가사를 거의 읊조리듯 소화해야 한다.(그런데 너무 고음이라 힘든 곡..) 저 작은 체구의 여성이 이 곡을 과연....?


그러나 그녀는 파워풀하면서도 너무 과하지 않은 깨끗한 목소리로 산뜻하게 불렀다. 처음 듣는 목소리에 나는 잠이 깨버렸다. 그녀의 이력과 오디션이면 으레 소개되는 사연들이 궁금해 서치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 영상은 티저영상이고 그래서 공개된 것은 그냥 어떤 분이 부른 영상 3분 남짓이 다였다. 오열하는 심사위원들보다 눈물이 더 나왔다. 가뜩이나 속상했던 내 마음을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위로해 준 것이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영상 댓글에 나는 거의 목놓아 울고 알았다.

-이 분의 사연을 아는데, 이 여성분은 사고로 시력을 잃었고, 그래서 바로 옆에서 이분의 자녀가 차 사고 나는 것을 보지 못하셔서 아이를 잃고 말았대요..

그래서였나? 나는 유독 '힘겨워 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 이 구절이 마치 유리 조각들이 심장에 와 박히는 것처럼 너무 슬프게 느껴졌다. 세상에... 신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이후 일주일을 매일 이 곡을 들으며 일하다가도, 밥 먹다가도, 그냥 설거지 하다가도 울컥했다. 종교는 없지만 진짜 신이 있긴 한 걸까 한탄했다. 그리고 자꾸 저 구절이 계속 마음에 들어와 일렁였다. 안타깝게도 노래는 더 이상 예전에 알던 그 곡이 아니라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얼굴 모를 아기의 추모곡이 돼버렸다.

시간이 물같이 흘러 눈 빠져라 기다리던 그 프로그램의 본방송 날이 됐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조용히 그 참가자를 기다렸다. 그녀 차례가 됐다. 그녀의 간단한 활동이 소개되고 무대가 공개됐다. 그러나 그녀는 시력보다는 웃음을 잃은 20대 초반의 미혼 여성이었다. 너무 어린 나이로 유명세를 타서 모든 음악 활동을 멈추고 정신과 치료까지 병행했다는 안타까운 내용이었다. 일단 시력을 잃은 것이 사실이 아님에 조금 안도했다. 그리고 아이가 없기 때문에 사고로 아이를 잃었단 것도 없는 사실이다. 그녀를 둘러싼 너무 엄청난 비극들은 사실은 모두 누군가가 지어낸 거짓이었던 것이다. 악플때문에 가뜩이나 고생한 분인데 또 이런 가짜 뉴스라니.

그녀는 정말 놀랄 만큼 실력이 뛰어난 가수였다. 그녀는 노래를 계속해야 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문제는 바로 나였다. 나는 그 무대를 보고 나 자신에게 심하게 역겨움을 느꼈다. 내 개인의 감정에 취해 영상을 보고 댓글을 읽고선 내 멋대로 실재하지 않은 사건들에 이 노래를 끼워 맞춰 가짜 감동을 느꼈구나. 어쩌면 그렇게도 타인의 비극에 쉽게 휩쓸리듯 절제를 못하고 감정의 동요를 느꼈던 걸까. 같은 노래를 듣고도 같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가짜 뉴스와 가짜 감동에 속아 넘어갔을까. 원효대사 해골물이 멀리 있지 않다. 바로 내 속에 있었구나...

가짜 뉴스가 판 치는 세상, 그것들을 무분별하게 살포하는 쪽, 그것을 무분별하게 흡수하고 퍼뜨리는 쪽 모두가 부끄러운 세상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서 다신 해골물을 시원한 냉수로 착각하는 일 없도록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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