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이 있는 은둔 생활
바닷가에서 한 달 정도 혼자 은둔하면서 그동안 미뤄 두었던 책들을 읽고 싶었다. 숙소를 한국으로 할까 동남아로 할까 고민했다. 한국 사람들이 한 달 살기를 가장 많이 하는 곳이 치앙마이라고 한다. 그런데 난 치앙마이를 여행하면서(물론 개인 취향이지만), 왜 치앙마이가 한 달 살기에 인기 있는 곳인지 의아했었다. 6일을 있었는데 더 머무르고 싶다거나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질 좋은 마사지를 손쉽고 싸게 받을 수 있는 것은 장점이지만 그건 태국의 다른 도시에서도 가능하니 치앙마이만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고는 할 수 없다. 치앙마이는 시내에도 관광지에도 배회하는 유기견들이 너무 많다. 또 태국의 더운 날씨는 적응하기가 힘들다. 다낭과 치앙마이가 한국인들 한 달 살기로 1, 2위를 다툰다고 하는데, 둘 중에 선택하라면 다낭을 선택할 것 같다. 다낭은 오션프런트 숙박 시설을 구하기 쉽고 날씨도 덜 덥다. 개인마다 경험이 틀리겠지만 베트남 사람들이 더 친절했던 것 같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베트남 사람들은 드러내 놓고 친절하기보다 좀 무뚝뚝해 보이면서 마음을 써주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다낭의 구시가지 주택가를 걸으면 한국의 70년대의 생활을 보는 것 같아 정감이 생기기도 한다. 동남아에서 한 달 살기를 할 경우 한국에서 한 달 사는 것보다 비용면에서는 이득이다. 그러나 편리함을 고려한다면 한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결국 한국의 조용한 바닷가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해 보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자주 갔었던 통영, 속초, 여수등을 염두에 두고 숙소를검색했다. 마음에 드는 적당한 숙소를 구하기가 마땅찮던 차에 속초 에어비엔비를 둘러보다가 양양의 오션프런트 숙박 시설을 접하게 되었다. 숙소에서 바다가 보이고 매일 갈 수 있는 산책로의 유무가 숙소를 구하는데 중요한 조건이었는데, 양양의 숙소는 이 조건들을 만족했다.
사실 과거에 설악산이나 속초여행을 할 때 양양은 잠시 스쳐가는 곳이었다. 서핑을 하지 않으면 양양 가서 뭐 하지 하는 생각도 하겠지만 어차피 나의 목적은 돌아다니며 관광하는 것이 아니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새로 지은 오션프런트 고층이기 때문에 방에서도 한눈에 가려지지 않은 바다가 보인다. 또 발코니가 있어 방은 좁아도 답답한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건물을 나서면 몇 걸음 가지 않아 바다가 있고, 가까이에 바닷가 경치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한국에 도착하고 서울에서 볼 일을 다 끝낸 후 양양 가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반포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한 뒤 서울을 벗어나기까지 길이 좀 막혔고 약 2시간 20분 정도를 지나서 양양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교통이 막히지 않으면 2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40여분을 기다린 후 하루 세 번 운행한다는 마을버스의 막차에 올랐다.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해 버스 운행 횟수가 줄어들었단다. 다시 40분 정도가 지나고 이윽고 하차할 때가 되었는데 기사 아저씨와 버스에 있던 다수의(?) 다른 승객들 간에 내가 어디서 하차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이 틀렸다. 다수의 의견을 따라 내린 곳은 내 목적지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곳으로 기사 아저씨의 말을 듣지 않은 걸 후회하며 작지 않은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15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체크인을 하고 한 달 동안 나의 보금자리가 되어 줄 조그만 방과 만났다. 작은데 있을 건 다 있다. 둘이 있으면 부대낄 것 같은 조그만 공간에 좁지 않은 화장실과 미니 키친, 혼자 먹는다면 채울 수 없을 것 같은 사이즈의 냉장고, 그리고 건조기 겸 세탁기가 있는 방이었다. 무엇보다 가장자리에 있어 발코니에서 바다를 정면과 측면, 양쪽으로 좀 더 넓게 볼 수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새로 지은 건물이라 모든 게 깨끗했다.
말 그대로 '눈부신~ 아침 햇살~'에 눈을 뜨고(발코니가 동쪽이라 해가 뜨면 더 자려야 잘 수가 없다) 2-30분 동안 일출을 넋 놓고 구경한다. 일출 전 은은하고 신비한 하늘의 색조와 기대감, 마침내 일어나는 일출의 흥분, 그리고 일출 후 안정감과 완성감, 이 세 단계 과정을 모두 좋아한다. 화창한 날의 일출은 물론이지만 흐린 날 구름이 잔뜩 끼인 날의 일출도 좋아한다. 부지런하면 발코니로 나가 사진을 찍는다. 발코니 문을 열고 이른 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유입한다. 커피를 마시고 여유를 부리다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어쩔 수 없이 건강식을 한다. 냄새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태여 항상 하던 요리를 여기서 까지 할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숙소에서 먹는 경우 김, 손두부, 도토리 묵, 야채 종류가 전부다. 간단한 된장국은 luxury다. 이 마저도 귀찮으면 과일로 때운다. 아침 식사를 하면 산책을 가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동네도 여기저기 돌아본다. 점심은 나가서 먹는 경우가 많으나 근처에서 만족한 식당을 발견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먹고 싶은 건 다 2 인분 이상 주문해야 한다. 심지어 김치 찌개도 2인분 이상 주문해야 한다. 점심을 먹고 나면 오전의 과정을 반복한다.
발코니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거나 캠핑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바닷가에 캠핑장이 있는데 사람들을 보면 가끔, 꼭 집을 캠핑장에 옮겨 놓은 것 같다. 기껏해야 이틀 캠핑하는데 저런 것까지 들고 오다니 하고 놀란다. 전기밥솥에 전자레인지까지. 옛날 아이들이 어릴 때 캠핑을 데려간 적이 있는데, 그 당시 3학년이었나 , 큰 아들이 사이트에 있는 전기와 수도를 보고 이렇게 하는 건 캠핑이 아니라고 실망한 듯이 몇 번이나 말한 적이 있다. 물론 물과 전기가 없는 사이트도 있었는데 가족들이 당연히 물과 전기가 있는 사이트를 원할 것 같아서 일부러 물과 전기 사이트를 선택했었는데 아들의 다소 실망 섞인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캠핑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편리한 일상에서 벗어나 일상과는 '다른' 자연의 방식으로 지내고 싶은 게 아닌가. 편안한 침대도, 밝은 전등도, 편리한 수도, 취사 시설도 없이 지내는 색다른 경험말이다. 아들에게는 전기와 수도가 있는 캠핑이 변질된 캠핑이라고 느껴진 듯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캠핑에 대한 개인의 시각과 취향일 거다. 사실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나의 방식이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 말이다. 내가 본 한국의 캠핑 문화는 미국의 그것과 확연히 틀리다. 한국의 캠핑은 먹는 것, 특히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 (그리고 술) 캠핑 활동의 아주 중요한 부분으로 보이기도 한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미국의 캠핑장은 (성수기 비수기 포함 40여개 정도)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사람들은 야외 활동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캠핑에 있어 음식에 대한 비중은 한국의 캠핑에 비해 상대적으로 별로 크지 않은 것 같다. 캠핑에 관한 한 나는 미국의 캠핑 문화를 선호한다.
나의 목표는 한 달 동안 매일 하루 만보 이상을 산책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 달 중 친구가 방문했던 하루를 제외하고 만보를 매일 걸었다. 만보 이상을 걷는 날도 많았고 어떤 날은 2 만 보를 걸은 날도 있으니 한 달 평균 만보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산책을 하며 오디오 북을 듣는다.
내가 외우려고 계획했던 책이 있었는데 예기치 않았던 방해꾼으로 인해 당초에 작정했던 것의 3/1 분량도 채 외우지 못했다. 그 방해 꾼은 다름 아닌 중국 고장극이다. 한국에 와서 중국 드라마를 보게 된 건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사실 처음 2 주 동안 TV는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2주가 지날 무렵 친구가 방문한 날 저녁에 TV를 시청하게 되었는데 이 날을 시발점으로 중국 고장극을 시청하게 되자 책 외우기를 등한시하게 된 것이다. 책은 집에서도 외울 수 있지만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드라마를 맘 놓고 볼 수 있는 기회는 혼자 있지 않으면 가질 수 없다고 합리화를 시켰다. 엄마가 하루 종일 책을 보는 것은 괜찮지만 엄마가 종일 TV 앞에 있으면 아무래도 체면이 서지 않겠지? 그러니 마음 편하게 하루 종일 TV 보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이렇게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맘 놓고 중국 고장극을 섭렵했다. 신기한 건 일 년 넘게 손을 놓아 까맣게 잊어버렸던 중국어 단어들이 드라마를 보며 하나 둘 생각이 나는 거였다. 중국 입국 제재도 풀렸으니 돌아가면 중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리라 생각했다. 비가 오고 흐린 날은 고장극을 보며 실내에서 만보를 채웠다. 기회가 있으면 중국 고장극에 대한 글을 쓸지도 모르겠다. 중국 드라마는 고장극만 본다. 이유는 고장극에 경치가 아름다운 그림 같은 화면이 자주 등장하고 중국의 옛날건물과 의상 장식을 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번 씩 정말 감탄하는 대사들이 나온다. 한국 드라마는 별로 보지 않는다. 오징어게임이 왜 인기가 있는지 의아한 사람 중 하나다.
양양 한 달 살기의 최고 장점은 내가 있는 건물이 동쪽을 향하는 오션프런트 건물이라 아침에 눈을 뜨면 누워서 침대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같은 일출인데도 어제의 일출과 오늘의 일출은 색채가 다르고 느낌이 다르다. 보통은 일출을 본다고 새벽에 부지런을 떨고 바다에 나가야 했는데 그런 성가심이 없이 눈을 뜬 후 침대나 발코니에서 일출을 보는 것이 얼마나 편리한가! 또 바다가 아주 가까이에 있으니 침대에 앉아 바다를 보면 마치 크루즈 쉽 안에서 발코니를 내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Photos don't do it justice라는 말이 있다. 어느 흐린 날 일몰 후 산책을 하기 위해 건물을 나서는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정말 '헉' 하고 감탄이 나왔다. 마치 거대한 페인팅이 내 앞에 있는 것 같았다. 바다도 하늘도 둘 다 파란 물감으로 그린 것 같다. 맥박이 빨라지며 하늘을 보고 감탄하고 바다를 보고 감탄한다. 몸과 마음속으로 청아한 바람이 부는 것 같다. 사진을 수십 장 찍었는데 사진은 그 느낌을 반에 반도 표현하지 못한다.
건물을 나서면 바로 앞에 나무로 된 데크 산책로가 있다. 이 산책로가 바닷가를 끼고 죽도산 전망대나 부두까지 계속된다. 매일 이 길을 산책했는데 심지어 하루에 두 번 산책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바다를 낀 주위 경관은 매일 그 풍경이 바뀐다. 해안 산책길도 매일 새롭다. 하늘과 구름도, 바다의 색채와 파도소리도 어제와 같지 않다.
근처에 휴휴암이 있는데 이 휴휴암까지 왕복하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휴휴암에 기념품 가게가 있는데 갈 때마다 하나씩 물건을 산다. 하루에 사고 싶은 게 두 개 있어도 다음 날을 위해 남겨둔다. 어떤 날은 톳으로 만든 젤리, 또 어떤 날은 김이나 기념품을 산다. 사람들이 거의 휴휴암내 가게에서 쇼핑을 하기 때문에 휴휴암 입구 도로에 자리 잡은 노인이 혼자 운영하는 기념품가게는 언제나 한산하다. 지나칠 때마다 가게 앞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노인이 보인다. 그런데 그 가게에는 내가 살만한 것이 없다.
근처에 남애항이 있는데 영화 '고래 사냥' 촬영지라고 한다. 강원도 3대 미항 중 하나라고 해서 하루는 남애항까지 걸어갔다. 버스를 이용한다면 왕복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 걸린다. 그러나 걸어가면 겨우(?) 왕복 4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 해파랑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는데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중간에 포매호 호수를 끼고 조성된 매호 생태 학습장에도 호수 주위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규모가 상당히 큰데 사람 한 명 없다. 건설 비용을 꽤 들인 것 같은데, 효용성을 생각하면 예산 낭비가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한국에 와서 전국을 여행하며 여러 번 느꼈지만 '전 국토, 전 마을의 관광지화!'를 지향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하다 보면 예산 낭비라고 느껴지는 시설들이 종종 있다. 지방 자치제의 폐해일까.
산책로에서 매일 마주한 개가 있다. 생긴 것이 너무도 독특해서. 아니면 표정이 풍부하다고 해야 하나? 볼 때마다 웃음이 났다. 난 개를 무서워하는데 이 개는 나를 웃게 만들었다. 항상 묶여 있으니 안심이 되었다. 세상만사 귀찮다는, 지나는 행인들을 거덜 떠 보지 않는 시크함때문에 눈길이 가는 개였다. '뭘 봐?'라고 하는 것 같다. 만날 때마다 10에 9번은 움직임이 없는 고정 상태로 있다. 한 번도 짖는 걸 들은 적이 없다. 뛰는 모습이 상상이 안 됐다. 주인이 누굴까 궁금했다.
이곳에서 한 달 지내며 불편했던 건 약국, 문구점, 병원, 우체국 등의 기타 부대시설이 없다는 거다. 배달앱을 이용한 음식 배달도 안된다. 괜찮은 한식당도 없다. 몇 군데 리뷰가 있는 곳을 가 봤지만 괜찮은 곳이 없었다. 식당 가격도 동질 대비하면 서울보다 비싼 것 같다(주문진에 있는 식당에서는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둘째로 대중교통이 정말 불편하다. 차가 없다면 움직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근처 주문진이나 하조대를 가기 위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왕복 꼬박 하루가 걸린다. 버스 운행 횟수가 하루 3-4번 정도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처럼 애초에 두문 불출이 목적이었던 경우라도 가끔씩 일이 있을 때면 불편했다.
이 한 달 동안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변화를 하나 발견 했다.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행동에 대한 나의 반응이 예전보다 'Personal' 해지는 걸 경험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못 마땅한 게 많다. 예를 들어 "이곳에 절대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라는 표지판은 "쓰레기는 이곳에 버려 주세요"로 해석되는 듯하다. 쓰레기 금지 표지가 존재하는 곳은 열이면 열 쓰레기가 쌓여있다. 예외는 없다. "캠핑 금지" 사인 구역에는 여지없이 텐트나 캠핑카들이 있다. 심지어는 캠핑 금지 사인이 있는 주차장에서 의자와 테이블을 펼쳐놓고 바비큐를 하는 경우를 본 적도 있다. 바다 앞 모래사장에도 불을 피우고 뭔가를 굽는다(물론 금지되어 있다). 카페 술집 앞 도로에는 하얀 담배꽁초가 눈이 온 듯 사방에 널려 있다. 실망스러운 건 이들이 모두 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라는 것이다. 공사 중이니 출입을 금지한다는 표지판이 문 앞에 붙어 있는 공공 오락 시설에는 표지판이 무색하게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10대에서 30대까지 연령도 다양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도 있다. 2주 정도 지나자 급기야는 문 앞의 조그만 출입금지 표지판이 커다란 현수막으로 바뀌었지만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마치 그 커다란 현수막을 비웃는 듯하다. 담배꽁초는 길을 더럽게 하니 행인으로서 불쾌하고 길가의 쓰레기 더미도 마찬가지지만 출입 금지된 공공 오락시설을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은 나한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위반 행위를 볼 때마다 불쾌했다. 이런 내 모습이 조금 새롭다. 왜냐하면 옛날(젊었을 때?)에는 이런 경우를 봐도 내 기분에 영향을 주기보다 그런가 보다 하고 덤덤히 지나갔고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거 혹시 나이 탓인가? 아니면 나의 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한 달 살기 공간이 이래저래 오염되기 때문인가?
이번 한 달 살기 동안 미뤘던 큰 숙제를 하나 했다. 오래전부터 마음을 먹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 바로 아이들에게 남기는 유서를 쓰는 거였다. 항상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시작하기가 힘이 들었었다. 아이들과 가까이 있을 땐 쓰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숙제를 끝냈다. 아이들 각자에게 마지막이라고 가정하고, 하고 싶던 말을 썼다. 미안했던 것, 고마웠던 것, 바라는 것, 기타 해 주고 싶던 말. 마음이 가볍다. 보험을 산 후에 안심이 되는 기분과 비슷하다. 비디오도 찍고 싶었는데 장비 문제로 하지 못했다. 다음에 한 달 살기를 하게 된다면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