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나라
Mount Rainier 국립공원에는 4개의 관광 안내소와 3개의 캠핑장이 있다. Coguar rock(179 사이트), ohanapecosh(179), white river(88), 그리고 mowich Lake 등 4개의 캠핑장이 있다. Coguar rock, ohanapecosh 캠핑장은 5월 말에서 9월 말까지 약 4개월만 개방되며, 해발 4400피트에 있는 White rivers는 6월 말-9월 말, 해발 4924피트에 있는 Mowich lake는 7월 초-10월 초까지 3개월만 개방된다. Mowich Lake 캠핑장은 무료지만 단지 13개의 텐트 사이트만 있고 모두 FF(first come first serve)로 운영된다. 나머지 3개의 캠핑장은 하루 $20이다. Coguar rock와 Ohanapecosh 캠핑장은 recreation.gov를 통해 예약을 해야 하고 White river캠핑장은 모두 FF 사이트로 운영된다.
전기가 있는 캠핑장은 없고 RV hook up도 없다.
Crater lake를 떠나 다음 목적지인 워싱턴 주에 있는 Mount Rainier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드디어 미국 북쪽 끝 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600킬로미터가 넘는 여정으로 다소 피곤한 하루였다. 하루 종일 날씨가 흐린 탓에 운전을 하며 좀 불만스러웠다. 여행을 다니면, 맑으면 맑은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둘 다 좋아한다. '흐린 날은 흐린 날대로 좋아한다'까지 말하면 아주 긍정적인 사람이 되겠지만, 흐린 날은 좋아하지 않는다. 기분이 다운되어, '흐린 날 여행하면 좋은 게 있나?'라고 생각해 보니... 아 , 그늘도 없는 오르막길을 트레킹 할 때는 흐린 게 좋구나. 그랜드 캐년의 Bright Angel이나 South Kaibab처럼 계속 내려가고 계속 올라가는 트레일말이다. 트레킹 할 때 지루한 오르막 길을 올라가야 하는 경우는 햇빛도 비도 눈도, 모두 힘들고 위험하다. 흐린 날이 최상의 조건이다. 역시 한 가지 장점은 찾을 수 있구나. 그래도 햇빛이 없으면 경치가 boost 되는 효과가 없으니 내려갈 땐 햇빛이 있어, 경치를 즐기고 올라올 땐 흐렸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이기적인 희망사항이다.
이 날은 도로나 exit 근처에 가까운 주유소가 없었다. 구글 맵으로 경로에 있는 주유소를 검색하는데 이 날은 도로에서 가까운 주유소가 없고 모두 exit을 나가, 꽤 되는 거리에 주유소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경험상 가끔 구글맵에는 나오지 않아도 도로 주변에 있는 주유소를 본 적이 있어서 계속 운전을 했다. 그런데 연료등이 거의 켜질 무렵까지 시야에 주유소가 보이지 않는다. 도로변 주유소를 찾기가 힘든 경우는 처음이다. 할 수없이 GPS를 따라 마을로 들어갔는데 GPS에 상업 시설 업데이트가 안된 건지 안내한 자리에 주유소가 없었다. 결국 또 다른 exit으로 나가 주유를 했다.
워싱턴주로 올라오니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동양인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주유를 마친 후 캠핑장을 예약했다. 어차피 공원 내에는 개방된 캠핑장이 없었기에 사립 캠핑장을 이용해야 했다. 북쪽 공원 지역에 있는 사립 캠핑장들은 비수기에 개방하지 않는 곳이 많다. 개방된 곳에 전화를 해보니 구태여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당일 날까지 기다리다가 예약을 한 것이다. 비수기에도 개방되는 사립 RV Park들은 모두 공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원래 예약하려고 했던 리뷰가 좋은 곳이 있었는데 공원에서 가장 가까운 캠핑장은 아니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생각을 바꿔 공원에서 제일 가까운 다른 캠핑장을 예약했다. 거의 5시가 다 되어 캠핑장이 있는 동네로 들어가는데 입구에서 보이는 풍경이 마치 한 폭의 잔잔한 수채화를 연상시킨다. '잔잔', '평화'라는 단어가 절로 연상되는 동네다. 너무도 다양한 초록색의 향연이었다. 명도와 채도에 따라 수십 가지의 녹색이 배열되어 있는 색상 견본 카드에 있는 색들을 이리저리 섞어 놓은 느낌이었다. 캠핑장 직원이 퇴근한다고 빨리 오라고 했기 때문에 차에서 내려서 사진을 찍을 시간이 없었는데 마침 차량에 녹화된 비디오가 있어 다행히 몇 장을 캡처했다.
캠핑장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여성이 있었는데 자신도 이 캠핑장 트레일러에서 산다고 한다. 내가 혼자니 자신의 옆사이트를 사용하는 것이 마음이 놓이지 않겠느냐고 했다. 만약 필요한 게 있으면 자신이 도와줄 수 있다고 권해서 그녀가 말하는 사이트로 체크인을 했다. 운이 좋아 여행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접하는 것 같다. 사립 RV park이라 사이트에 전기와 물이 있어서 편리했다. 비가 오니 약간 추웠는데 전기가 있어 히터를 켤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Mount Rainier 국립공원은 내가 가장 기대했고 와 보고 싶었던 국립공원 중 하나이다. 1899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현재 63개의 미국 국립공원 중 5 번째로 오래된 국립공원이다. 해발 4392 미터로 알래스카를 제외하면 미국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인데, 마지막으로 폭발한 것이 1000년 전이라고 한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니 7월 중 순에서 9월 말만 제외하고 눈이 내린다. 또한 알래스카를 제외하고 산악 빙하가 가장 많은데, 25개의 빙하가 Mount Rainier 정상을 둘러싸고 있다. Mount Rainier 국립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Paradise와 Sunrise point다. Mount Rainier 국립공원 방문자의 60% 이상은 Paradise를 방문한다.
Paradise는 Mount Rainier의 남쪽 산비탈의 해발 1600미터에 자리 잡은 곳인데 넓은 초원과 야생화들 그리고 Mount Rainier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또한 지구상에서 눈이 가장 많이 오는 곳 중의 하나로 연평균 16.3미터의 눈이 내리기 때문에 겨울 스포츠 장소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겨울에는 Paradise에 있는 Henry M Jackson Memorial 관광 안내소가 닫혀있고 주말만 개방한다. 겨울이 되면 Mount Rainier 국립공원의 거의 모든 도로는 폐쇄되지만 Longmire museum에서 Paradise로 이어지는 10.5마일의 도로는 연중 개방되어 있다. 하지만 눈이 오면 제설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폐쇄된다. 캠핑장 도착하는 날 공원 홈페이지를 체크했더니 파라다이스 로드가 개방되어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출발하기 전 체크를 했더니 다시 폐쇄가 되어있었다. 실망을 많이 했다. 왜냐하면 겨울에 Mount Rainier에 와서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차를 타고 Paradise로 올라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도로가 폐쇄되어 있는 것이다. 겨울에는 방문자 수도 적고 눈이 워낙 많이 쌓여 있어 혼자 눈길을 트레킹 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룹으로 트레킹을 하거나 경험 있는 산악인이면 또 모를까.
실망이 되었지만 일단 공원을 가기 위해서 출발을 했다. 그런데 40분쯤 운전했는데 산길에서 도로가 중간에 막혀 있는 게 아닌가. 물론 구글 GPS가 도로 폐쇄를 알려 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매우 많다. 다시 40분 걸려 출발점으로 와서 (다른 길은 없다) 공원의 남서쪽 입구인 Nisqually로 가야 했다. 이 경우는 빙 돌아서 가게 되는 경로라 90킬로미터나 운전을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결국 원래 예약하려고 했던 RV park 쪽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공원에서 더 가까운 캠핑장을 예약하려다 결과적으로 공원까지 가는 길이 훨씬 더 먼 캠핑장에 머물게 된 것이다. 그래,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랴. 문득 생각이 났다. 막힌 도로에서 옆 차선 차들은 이동하는데 내가 있는 차선만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을 때 말이다. 옆으로 차선을 바꾸는 차들을 지켜보며 인내심을 가지고 한참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차선을 바꾸었는데! 그때부터 신기하게 바꾼 차선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내가 있던 차선의 차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걸 지켜보는 경우....
결국 캠핑장을 출발한 지 2시간 반정도가 지나서야 공원에 도착했다. 왠지 삐걱거리는 듯한 하루다. 입구에서 파크레인저에게 다시 확인했더니 역시나 pradise road는 닫혀있었다. 그러면 내가 오늘 뭘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gift shop은 열려있다고 경쾌하게 이야기한다.... 다행....이다. 어차피 기념품(냉장고에 붙이는 자석)은 사야 하니까. 내 실망하는 얼굴을 보더니 이어 하는 말이, 가게 근처에 작은 트레일이 하나 있는데 그것도 개방되어 있다고....
게이트를 지나 관광 안내소 겸 뮤지엄인 곳에 갔더니 뮤지엄은 닫혀있고 조그만 부츠에 파크레인저 한 명이 앉아 안내를 하고 있다. 그에게 물어보았지만 역시 그 주위를 돌아다니는 것 말고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까지 이런 관광 안내소는 처음 본다. 관광 안내소는 보통 탁 트인 곳에 있거나 전망대 근처에 있어 공원의 전망을 대충 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주위에 건물 밖에 보이지 않고 시야가 다 막혀 있었다. 마치 Mount Rainier를 꽁꽁 숨겨놓고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파크레인저가 추천하는 대로, 안내소 근처에 있는 미국 국립공원의 현수교(suspension bridge)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Nisqually historic suspension bridge를 구경했다. 그 후에는 근처에 있는 유일하게 개방된 작은 트레일을 트레킹 했다. 트레일 중간중간 아직 치우지 않는 눈이 보인다. 기프트 샵에 들러 기념품을 하나 산 후, 결국 Mount Rainier는 한 번 훔쳐보지도 못하고 공원을 떠나 다시 90킬로미터(!)를 운전해서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처음 예약하려던 곳에 그냥 예약할 걸 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면서. 또한 지금까지의 여행 중 가장 비생산적인 하루였다고 생각하면서. 기대를 많이 했던 Mount Rainier였던지라 실망이 컸다. 어제는 폐쇄가 되지 않았으니 어제 갔어야 했지만 오후 5시가 되어 캠핑장에 도착했으니 갈 수도 없었다. 그나마 마을 입구의 예쁜 수채화 같은 풍경을 한 번 더 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이튿날 아침 출발 전, 홈페이지를 다시 체크했는데 여전히 폐쇄라고 되어있다. 아쉽지만 단념하고 다음 목적지인 올림픽 국립공원을 가기 위해 출발했다. 출발 후 40여 분 정도가 지나고 Mount Rainier 국립공원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이대로 가기에 너무 아쉬워 혹시나 싶어 차를 갓 길에 멈추고 다시 한번 홈페이지를 체크했다.
그랬더니!
paradise road가 개방되었다고(!) 업데이트가 되어있지 않겠는가.
역시 문은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는구나! 체크를 다시 안 했으면 몰랐을 거 아닌가.
잘됐구나 기뻐하며 얼른 방향을 바꿨다. 3시간이면 넉넉히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기대했던 Mount Rainier인데 이틀 동안 머무르면서 살짝 엿보지도 못하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공원에 도착하자마자 paradise road로 바로 진입했다. 눈이 조금 흩날리기 시작해서 이러다 갑자기 또 폐쇄하는 거 아닌가 약간 불안했지만 다행히 바리케이드는 여전히 옆으로 치워져 있었다.
도로에 진입하여 잠시 달리는데....
아! 하고 감탄이 나왔다. 눈앞에 'Winter wonderland'가 '짠'하고 펼쳐진 것이다. 이틀 동안의 불편했던 마음을 씻은 듯이 한 순간에 날려 버리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네가 나를 그렇게 보고 싶어 했으니 보여주마라고 위풍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처럼 말이다. 감사한 마음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동화 속 나라에 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여러 번 있는데 당연코 이 순간은 이번 여행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순간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거대한 수백 수천 개의 크리스마스트리에 눈이 하얗게 쌓였는데 그 위로 눈이 내리는 광경을 생각해 보라. 말 그대로 'Winter wonderland'였다. 더 좋은 건 그 길을 나 혼자 가고 있는 것이다. 정말 울컥해지는 순간이었다. 반전의 심리작용 때문에 더 감격스러웠던 것 같다. 처음부터 이 선물이 나에게 주어졌으면 이렇게 가슴이 벅차올랐겠는가. 실망하고 포기했는데 턱 하고 주어지니 더 귀하고 감격스러운 것이다. 시야가 트이자 눈과 안개에 싸인 Mount rainier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아름답다와 감사하다는 생각만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너무도 귀한 선물을 받았다. 빛과 눈과 안개를 창조하신 신에게 너무도 감사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순간을 사진기에 담지 못했다. 계속 운전을 하며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몰입이 되어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윽고 paradise 정상으로 다가갈수록 눈보라가 심해지더니 paradise에 도착했을 때는 눈보라로 인해 시야가 잘 보이지 않았다. 순간 아! 내려갈 때 타이어에 스노 체인 채워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현실적인 생각이 들었다. 아주 귀찮은 일인데....
정말 지구상에서 눈이 가장 많이 오는 곳 중의 하나답다. 그 와중에 거대한 등산 배낭을 메고 스노 슈나 스키를 착용한 사람들이 언덕을 올라간다. 눈보라가 심하고 눈으로 뒤 덮여, 어디가 길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데 언덕을 올라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조난당할까 겁나지 않은가? 좀 기다렸다가 시야 확보가 되고 떠나면 안 되나? 혼자 걱정을 한다. 그룹으로 온 사람들이 같이 등반하는 것 같았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스노 슈를 신고 근처에서 좀 다녀볼까라고도 생각했지만 눈보라 때문에 추워 차에서 나가고 싶지가 않았다. 아직 오전인데 마치 저녁 같은 기분이 든다. 안개와 눈으로 보이지가 않으니 정작 정상에는 별로 볼 것도 없었다. 눈보라가 너무 심해서 내려갈 일이 걱정이 되어 서둘러 내려왔다. 그런데 웬걸 paradise에서 내려오니 눈도 더 이상 오지 않고 햇빛이 나기 시작한다. 정말 정상과는 180도 틀린 세상이다. 심지어 나무 가지에 쌓였던 눈도 햇빛에 녹아 파란 잎을 드러내는 곳도 많았다. 15분 정도 내려왔는데 이렇게 딴 세상처럼 차이가 날 수가 있는가! 눈이 그치고 햇볕이 쬐니 올라올 때의 그 환상적인 Winter wonderland의 기분이 똑 같이 나지는 않는다. 물론 여전히 아름답지만 올라올 때 느꼈던 매직 같은 느낌은 나지 않는다.
역시 풍경에 있어 빛과 눈의 필터링 효과는 경이롭다.
내려오면서 차 안에 설치된 카메라로 도로를 찍었는데 아쉬우나마 이 사진들을 올려본다. 올라갈 때와는 달리 눈이 내리지 않아 사진이 많이 아쉽다. 매직 같은 Winter wonderland는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걸로 만족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