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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Sep 06. 2023

혼자 떠난 17000km 미횡단#28 글레이셔 국립공원

캠핑장과 여행 정보

올림픽 국립공원을 떠나 일단 다음 목적지인 North Cascades 국립공원을 향해 출발했다.  사실   North Cascade 국립공원을 건너뛸까라는 생각을 이틀 전부터 계속했었다. 마운트 레이니어와 올림픽 국립공원을 여행해 보니 North Cascades 국립공원은 구태여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올림픽 공원보다 더 북쪽에 있기 때문에 날씨도 더 추운 데다가 캠핑장에서 만난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North Cascades만의 독특한 경관도 없는 듯했다. 게다가 공원 홈페이지를 체크했더니 폐쇄된 곳이 많아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일단 GPS에 North Cascades를 입력하고  가면서 결정하기로 했다. 두 시간쯤을 운전하고 가는데 마음이 편하지가 않고 왠지 내키지가 않는다.  경험상 이럴 땐 느낌을 따르는 게 좋다. 그래서 North Cascades를 스킵하고 다음 목적지인 글레이셔 국립공원으로 바로 가기로 결정했다.   차라리 올림픽 공원에 하루 더 머물며 Hurricane ridge에 있는 트레일들을 트레킹 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날씨가 또 어떻게 변해서 트레일들이 폐쇄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기도 했다. 원래 글레이셔 국립공원에서 3일을 머무를 예정이었는데   North cascades를 생략하는 바람에 4일을 머무르게 되었다.   다음 방문지인 옐로스톤은 반드시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 곳이기에 예약 날짜에 맞추어 도착하지 않으면 캠핑장 자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레이셔 국립공원은 올림픽 국립공원에서 10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고  North Cascades에서도 900여 킬로미터를 가야 한다. 그러니 어차피 중간에 하루를 쉬어가야 했다. 집을 떠날 때 이 경유지 숙소를 몇 개 검색해 두었는데, 오늘처럼 일정이 변경될지 몰라서 예약은 해두지 않았었다.  결과적으로 예약을 하지 않았던 게 다행이었다. 원래 계획보다 경유지 숙소에 하루 일찍 가야 하니 말이다. 이동을 하면서  중간 지점에 있는 Lake front RV resort를 예약했다.

 

글레이셔 가기 전 하루 머무른 RV park

호수 바로 앞 사이트였는데 호수가 정말 예뻤다.   아! 그런데 이곳을 예약하면서 깜박한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밤새 기차 지나가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는 리뷰였다. 밤새 끊임없이 기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이어 플러그를 껴도 소용이 없었다.  여행 중 처음으로 밤에 잠을 설친 날이다.  숙면을 취하지 못했으니 아침에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니, 어젯밤을 빼고는 지금까지 6주간을 여행하는 동안 매일 잠을 잘 자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깨달아졌다.  감사하다.  폼매트리스를 사서 캠핑용 침대를 만든 건 정말 잘한 일이었던 것 같다.  좁다는 것 빼고는 집에서와 별 차이 없이 잠을 편하게 잤다.  아니 트레킹을 많이 하니 잠을 잘자지 않을 수가 없다.  누우면 잠이 들었다.


어쨌든 새벽에 일어났기에 본의 아니게 평소보다 일찍 출발하게 되었다.  여기서 글레이셔 국립공원까지는 여섯 시간 정도 걸린다.  한 시간 반 정도 지나자 아이다호 주로 진입한다. 울창한 숲 속을 관통하는 산악도로를 한 시간 넘게 달리자 드디어 글레이셔 공원이 있는 몬타나주가 나온다.  몬타나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천연자원으로 유명하다. 글레이셔뿐만 아니라 록키마운틴과 옐로스톤 국립공원도 몬타나주에 조금 걸쳐 있다. 글레이셔 국립공원을 가는 길에 Flathead lake라는 너무도 아름답고 광대한 호수가 있었다.  알고 보니 미 서부에서 가장 큰 담수호라고 한다.  며칠 전 올림픽 국립공원에서 본 Crescent lake보다 더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호수였다. 그림 같이 아름다워 멈추고 싶었지만 캠핑장에 등록을 해야 하기에 계속 지나갔는데 무려 25-6마일 정도를 호수와 함께 달렸다.  사이트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캠핑장에 일찍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이동 중 즉흥적으로 뭘 하기가 어려우니 FF(first come first serve) 사이트로 운영되는 캠핑장을 선호하지 않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비수기에는 FF사이트 캠핑장 만을 운영하는 국립공원들이 많으니 어쩔 수 없다. 비수기에 여행하는 단점 중의 하나다. 예약을 미리 해 둔 경우는 어둡기 전에만 들어가면 되니, 여행 도중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글레이셔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도로에서 아주 기이한 경험을 했다. 사방이 확 트인 광활한 곳을 운전하고 있었는데 좌우 앞뒤 사방을 다 둘러봐도 아래 사진처럼 시야의 끝에  산이 빙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마치 넓은 원 한복판 중심에 내가 있는데 저 멀리 산들이 원을 그리고 나를 빙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기해서 운전을 하며 좌우, 뒤를 몇 번이나 둘러봤었다.  


한시쯤 Apgar 캠핑장에 도착하니  7-80% 정도 자리가 차 있었다.  물론 좋은 자리는 벌써 다 잡혀있다.  Apgar 캠핑장은 Lake McDonald의 서쪽 끝에 있다.  Lake McDonald라는 호수 이름은 이 지역에 백인들이 정착한 후 붙인 이름인데, 그 당시 상인이었던 Duncan McDonald가 호숫가에 있는 나무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놓았던(1878) 것에 유래한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 이곳에 살던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은 이 호수를 'Sacred Dancing'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불렀는데, 호숫가에서 신성의식을 행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캠핑장에 체크인을 하고 나서 바로 Lake McDonald로 갔다. 바로 앞이니 걸어가도 되지만 Lake McDonald 옆으로 나있는 유명한 Going to the sun road를 드라이브하기 위해서 차로 갔다. 캠핑장을 나와 표지판을 따라  Lake McDonald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헉! 하고 깜짝 놀랐다 문자 그대로 충격을 받았다고 해야 하겠다.  전혀 준비가 안돼있는 상태에서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확 펼쳐져 있는 것이다. 호수 바로 앞에 이렇게 가까이 주차할 거라곤 기대하지 못했다.  주차장 바로 앞에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바다처럼 광대한 맑고 푸른 호수에  빙하로 덮인 아름다운 산들이 호수를 에워싸고 있다.   '그림 같은'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적절한 풍경이었다. 바라만 봐도 힐링이 된다.  아무리 복잡했던 마음이라도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이 호수 앞에 서있는 순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안정이 될 것 같다.  엔도르핀이 마구마구 분비가 되고 있는 느낌이다.


Lake McDonald


Lake McDonald
Lake McDonald

그림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늦게 Going to the sun road로 갔다.  호수를 떠나기 싫지만 캠핑장에서 가까워 4일 동안 언제든지 올 수 있으니 괜찮다.

Going to the sun road'는 McDonald lake의 서쪽에 있는 West glacier에서 시작하여 호수 동쪽의 St.Mary까지 연결된 약 50 마일의 Scenic drive이다. 글레이셔 국립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라 할 수 있는데 불행히도 비수기라 폐쇄되어 있다.  이 50마일의 도로 중, 연 중 개방되는 구간은  West glacier에서 McDonald lodge까지의 구간으로 저지대에 있는 구간이다.   나머지 구간은 눈 때문에 여름 성수기만 개방된다.   비수기에 여행하니 많은 관광지가 닫혀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다 좋을 수는 없지.  그러나 자전거나 도보 하이커들은 겨울에도 특별히 허락된 구간들에 한해서는 출입이 가능하다.


글레이셔 국립공원에서 내가 가려고 계획했던 트레일은 Avalanche lake trail이었다. 성수기에는 차를 타고 트레일 입구까지 갈 수 있지만 Going to the sun road가 닫혀있으니 트레일 입구까지 걸어가든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수밖에 없다.  McDonald lodge에서 트레일 입구까지의 거리는 무려 6마일(10킬로미터)이다.

McDonald lodge를 둘러보다가 도로 입구에서 한 청년을 만났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도로 입구에서  Avalanche lake를 걸어서 갔다 왔단다. 트레일 입구까지 6마일, 그리고 Avalanche lake 트레일이 왕복 6마일 정도니 도로 입구부터의 전체 왕복 거리는 18마일(28.8km)이 넘는다.  도로만 왕복 12 마일을 걸어야 하는데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냐고 물었더니 'Absolutely!'라고 한다. 환상적인 경치라며 절대 후회 하지 않을 테니 꼭 가야 한단다.  걸어가면서 보는 Going to the sun road의 풍경도 너무 아름답다고 열성적으로 추천한다.  사실 트레일 이외에   도로를 거의 20 킬로미터나 걸어야 하니 확실하게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강력히 추천해서라기보다는 도로가 폐쇄된 곳이 많으니 딱히 하고 싶은 일이 별로 없었다. 개방되어 있는 다른 트레일들은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거나 혼자 가기에는 위험해 보였다.  결국  Avalanche lake trail을  가기로 결정했다. 내일 하루 좀 무리하고 그다음 날 하루 종일 호수 앞에서 푹 쉬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호수를 가는 것만  목적이 아니라 Going to the sun road를 탐험하고 싶기도 하고.  차로 못 가게 하니 걸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걱정이 좀 된다. 8년 전인가 한국에 갔을 때 1박 3일로 지리산 종주를 한 적이 있다.  날 밤 서울에서 출발, 성산재에서  새벽 3시 반쯤 산행을 시작해 천왕봉을 오른 후 중산리로 내려오는 코스였는데 그때 총거리가 34킬로미터 정도였다. 그때는  천왕봉까지의 고도 차이가 900미터나 되기에 오르막 등반 구역이 많아 힘이 들었었다(계단을 지겹게 올랐던 기억이 난다).   Avalanche lake trail 입구에서 호수까지 3마일 가는 데 고도 차이가 겨우(?) 230 미터다. 그래서 지리산 종주했던 것 보다야 훨씬 쉽겠지라는 생각으로 도전하기로 했다.  내가 걱정되는 건 긴 거리를 걸어야 한다는 사실보다 과연 트레일에 사람들이 많이 있을까라는 거였다. 도로는 혼자 걸어도 상대적으로 안심이 되지만 트레일은 산길이고 상태를 알 수 없으니 혼자 가는 게 걱정이 된다.  McDonald lodge까지는 사람들이 북적이는데 폐쇄된 도로 안을 들어가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으니 트레일에서 사람을 기대하기가 힘이 들 것이다.


다음 날 아침 호수 앞에서 아침을 먹은 후 McDonald lodge로 다시 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Going to the sun road 앞에 쳐 놓은 바리케이드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역시나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일찍 나와서 사람이 더 없는 것 같았다.  도로를 걸어가며 보는 경치는 정말 아름답다. 저 멀리 빙하 덮인 산들이 보이고 옛날 달력에서나 봄 직한 침엽수림의 경치가 강물 소리와 함께 눈앞에 펼쳐진다.  오늘은 이 것 말고는 다른 일정이 없으니 급할 것도 없어 경치를 즐기며 유유자작 걸었다. 여름이었으면 차를 타고 지나가며 편하게 구경했을 것이지만 편한 대신 놓치는 것도 많다.  중간중간 전망 포인트가 있고 트레일로 나가는 출구도 있다. 돌아오는 길에 기운이 남아있으면 잠깐 나가서 탐험해 볼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과연 그럴 기운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네.

Going to the sun road
Going to the sun road
Going to the sun road

걸어가는 사람은 나뿐이다. 중간에 한 사람을 만났는데 자신은 도로를 조금 걷다 돌아갈 계획이란다.  집에서 타고 다니던 킥보드 스쿠터라도 가져 올 걸 하는 생각을 했다.  앞으론 여행할 때  접기식 소형 자전거를 가지고 다닐까. 그러나 아무리 소형이고 접는다고 해도 차 지붕에 올리지 않는 한 공간이 없을 것 같다.     스쿠터는 접으면 어찌 넣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중간 지점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 도보로 하이킹하던 두 사람을 만나 반가웠다.  하지만 호수로 가는 사람들은 아니었고 그냥 Going to the sun road를 하이킹하는 사람들이었다. 트레일헤드를 한 시간가량 남긴 지점에서 미네소타에서 여행 온 20대 커플을 만났다. 휴가를 내고 열다섯 시간을 쉬지 않고 운전해서 어젯밤에 도착했단다.  4일의 휴가 중 오고 가는데만  꼬박 이틀이 걸리니  여행할 시간은 이틀 밖에 없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그중 하루를 30킬로미터  걷는데 쓰는 것이다. 아무리 젊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레 다시 열다섯 시간 운전해서 집에 가자마자 다음날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럴만한 값어치가 있었느냐고 했더니 'Oh, absolutely!'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심신이 건강한 젊은이 들이다.  나보고 장거리 운전 기술을 알려 달랜다. 자기는 열 몇 시간 운전하는데 엉덩이가 아파 죽을 뻔했는데 어떻게 그 먼 길을 운전하고 다니느냐고 묻는다.  하루 열 몇 시간 계속 운전하는데 어떻게 힘이 안 들까. 당연한 소리다.  나의 하루 운전 시간은  5-8시간이다. 레드우드 국립공원은 특수 상황이었고 8시간 운전하는 날도 많지 않다. 6-7시간이 평균이라 하겠다.   


난 고속도로에선 길이 막히지 않는 한 항상 크루즈 컨트롤을 사용한다. 다리가 자유로우니 훨씬 덜 피곤하다. 그리고 복잡한 길에선 할 수 없지만, 차가 별로 없는 고속도로를 달릴 땐 발박수를 친다. 손뼉을 치듯이 발바닥을 마주치는 것이다. 물론 이땐 크루즈 컨트롤 속도를 낮게 세팅하고 도로에 앞 뒤로 차가 없을 경우에만 한다. 1분에 100번씩 치고 나면 다리의 피로도 풀리고 혈액 순환이 잘된다. 그리고 잠이 올 때도 이 방법이 매우 효과적이다. 난 이 방법에 익숙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진 않는다. 주위를 잘 살피고 조심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6마일을 걸어 주차장이 나오고 트레일 입구로 들어갔다. 20대 커플은 피크닉 장소로 점심을 하러 가고 입구에서 헤어졌다.   베어스프레이가 있으니 그나마 안심이 되지만 주위가 너무 조용하다. 그래서 음악을 틀고 큰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오디오 책을 따라 읽는다. 뒤에서 누가 봤다면 웃었겠지만 아무도 없으니 들을 사람도 없다, 들을 곰이 있을 뿐이다.   곰들 들으라고 이런저런 소리를 낸다. 소리를 듣고 알아서 피하고 제발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어떤 사람들은 Bear horn을  불기도 하고 박수를 치기도 한다. 'Hi, bear'를 연발하며 가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이번 여름만 해도 국립공원에서 곰이 공격했다는 뉴스를 몇 번이나 접했다.  사람들이 곰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까이 근접하는 것은 메스미디어의 영향이 크다. 적어도 곰과 100 yard(93m)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경고하는데도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곰을 보면 귀여운 Winne the pooh를 연상하는 것인지....   얼마 전에는 한 관광객  아버지가 아기를 안은 채 바이슨에 접근하는 사진이 뉴스에 나온 적도 있다. 놀라운 일이다.


트레일 입구에서 목적지인 호수에 도달하는 동안 단 한 명의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드디어 호수에 도착을 했는데 나무들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 목소리가 호수 근처에서 들린다. 그런데 길이 거기서 뚝 끊어진 듯, 호수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길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려고  한발 앞으로 내디뎠는데 푹하고 발이 50 센티정도 눈 밑으로 가라 않았다. 발 밑을 보니 물이 보인다!  순간, 내가 호수 안으로 걸어 들어온 건가 싶어 깜짝 놀라 바로 앞에 쓰러져 있는 통나무를 잡았다.  땅도 호수 가장자리도 눈으로 덮여있으니 호수와 땅의 구분이 가지 않았다. 주위에 나무가 있어 호수 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러나 다행히 나무 가지 같은 것이 눈 밑에 얽혀 있고 그 가지들 밑으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물에 발이 빠지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놀랐는지. 내가 서 있던 곳이 호수가 시작되는 부위 거나 그곳에 가까운 곳이었나 보다.  나무들이 이리저리 쓰러져 있는 위로 눈이 덮여 호수인지 땅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정말 놀랐다.  옛날 대학교 시절  강원도에 여행 갔다가 숙소 주위 꽁꽁 얼은 호수 위를 일행들과 걸은 적이 있다.  호수가 단단하게 꽁꽁 얼어 있었고 호수 위로 사람들의 발자국이 많아서 안심하고 들어갔나 보다. 여러 명의 일행이 있었기 때문에 대화하느라 정신을 딴 데 두고 있었는지 아니면 이미 사람들이 걸어간 흔적들이 계속 있어서 별 경각심이 없었던 건지,  아무튼 생각 없이 꽤 걸어 들어갔는데 갑자기 찌직하고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나서 모두들 깜짝 놀라 순간 얼어붙었던 기억이 난다.  


다리가 눈 속으로 푹 빠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더니 호숫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남자 두 명이 달려왔다. 그 들이 도와서 나무를 밟고 벤치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알고 보니 빙 둘러서 들어가는 길이 있었는데 눈이 덮여 잘 보지를 못했던 것 같다.  여길 혼자 왔냐며 많이 놀란다. 조금 떨어져 있던 일행에게  이 레이디가 여길 혼자 왔다고 소리를 지른다.  그 들은 다섯 명이 같이 왔단다. 용감하다고 한다.


빙하가 둘러싼 호수의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  어제 입구에서 만난 청년은 'unreal',  'amazing', 'fantastic' 등의 단어들을 사용했었는데,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워낙 비현실적인 풍경을 많이 봐서 익숙해져서 그런지 그 청년만큼 감동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건 면역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이 걸 아쉬워해야 하나 아니면 지금까지 이 보다 더 좋은 풍경을 많이 접할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나.     누군가 절벽 위에 있는 흰곰을 발견하고 소리를 지른다. 빙하지역이라 흰곰이 있나 보다.  그런데 절벽이 중간중간 흰색 눈으로 덮여있으니 흰곰이 쉽게 눈에 뜨이지는 않았다.  마침내 곰을 발견하고  절벽 사진을 찍어 나중에 가족 채팅방에 올려 곰을 찾아보라고 했다.  딸은 신기하게 금방 찾는다.  난 옆 사람이 어디 있다고 가르쳐 줘도 금방 못 찾고 한 참을 보다가 발견했는데.   딸에게 정말 보여? 어디 있는데? 그랬더니 곰 위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 사진을 금방 다시 보낸다.

Avalanche lake
Avalanche lake

호수에서 하산하려고 하니 그제야 두 팀의 사람들이 도착한다.  내려오면서 올라가는  두 팀을 또 만났다.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해서인지  내려갈 땐 올라갈 때보다 훨씬 마음이 놓인다. 올라가던 그들도 나처럼 불안했던지, 자신들 앞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었느냐고 묻는다.  다 똑같은 마음인가 보다. 나도 트레일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만나면 이 질문을 자주 하곤 한다. 내려오다가 눈에 두 번이나 넘어졌다. 이번 여행 중 트레킹 하다가 처음으로 넘어졌다.


드디어 트레일 입구로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차를 주차시킨 McDonald lodge까지 또 6마일을 걸어갈 생각을 하니 아득해진다. 주위 풍경은 물론 아름답지만 풍경의 변화가 없는(또는 매우 느린) 일 직선의 도로를 걷는 게 조금  지루했다.  중간에 도로에서 두어 번 이탈해서 작은 트레일을 조금 걷다가 다시 도로로 돌아오곤 했다.  걷는 게 피곤했지만 익숙한 시야로부터의 변화가 필요했다.  걷다 보니 다리가 저절로 움직이는 듯하다. 대학교 때 단체 여행을 하던 중, 설악산 대청봉을 올라갔던 기억이 났다.  내려올 때 다른 팀과는 달리 마등령으로 해서 하산했는데 밤이 될 때까지 끝도 없이 걸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엔 발이 저절로 앞으로 나가는 것 같았다. 그다음 날 아침, 모두가 계단을 내려갈 때 다리 근육통에 비명을 지르는데 마등령으로 내려온 우리 팀만 계단을 멀쩡하게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평지를 오래 걸으며 근육이 다 풀어진 탓이다.     그러니 내일 아침도 다리 아플 일은 없을 것 같다.


차로 돌아오자 다리가 피곤했다. 오늘 수고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거의 내 고정석이 된 호수 앞자리로 가서 저녁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신 후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내 사이트 맞은편에 예쁜 20대 여성이 혼자 여행 왔는데, 몬타나에서 산림 소방관으로 일하고 있단다.  소방관과는 전혀 연관되지 못할 체격의 여린 이미지라서 듣고 놀랐다.   소방관은 체력이 강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니 자신이 보이는 것과 달리 힘이 세고 강한 체력을 가진 사람이란다.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많이 들은 듯, 내 반응에 익숙하다.  그래 편견을 버려야지.

마운틴 바이크를 가지고 여행 다닌다. 부럽다. 오늘 많이 걸었던 탓에 더.


셋째 날 느지막하게 일어나 식사를 한 후 간 밤에 검색해 두었던 Scenic drive를 가 보려고 공원을 떠났는데 길이 막혀있단다.  다시 공원으로 돌아와 관광 안내소 근처 트레일을 산책했다.  관광안내소가 닫혀있어(비수기에는 주말만 운영된다) 기념품을 살 수 없어 어쩌지 했는데,   다행히 Apgar villiage에 있는 가게가 열려있어 기념품을 사고 가게들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식당들도 비수기라 다 닫혀있었다. 책을 읽다가 저녁이 되어 캠핑장을 산책하다가 혼자 여행온 할머니를 만났다. 플로리다에서 온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였는데 은퇴한 심리 상담사였다. 긍정의 에너지가 넘치는 밝은 사람이었다.  은퇴 후 쭉 혼자 자동차로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자기 차를 구경시켜 주고 이런저런 자동차 여행 노하우를 전수해 준다.   할머니가 타고 다니는 도요타 차는 풀탱크로 채우면 고속도로 750(1200킬로미터) 마일을 거뜬히 간다고 해서 놀랐다.  일본차는 연료 효율이 정말 좋다. 지금은 잃어버린 내 도요타 밴도 연료 효율이 고속도로에서 40마일 까지 나왔었다.  다음에 같이 여행을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연락처를 준다.  공원 캠핑장에서 화장실을 나오다가 문 앞에서 곰을 마주친 적이 있다는 할머니의 경험담을 들으니 실내가 아니면 항상 베어 스프레이를 가지고 다닌다는 파크 레인저 말이 다시 생각났다.  캠핑장 여기저기  곰 출몰에 대한 경고 사인이 있었어도 캠핑장에서는 긴장을 덜했었는데, 캠핑장에서 산책할 때도 베어스프레이를 가지고 다녀야 할까 보다.  


Apgar 캠핑장에서 3일을 지내고 Lake McDonald의 동쪽 지역인 St.Mary로 이동했다. 며칠 전 만난 커플이 꼭 가보라고 했고 또, 옐로스톤을 가려면 어차피 St.Mary에서 가는 게 좀 더 가까웠다. St.Mary로 가는 길도 훌륭한 Scenic drive다.  St.Mary 지역 풍경은 서쪽과 비교하면 약간 느낌이 색 다르다.   Lake McDonald 옆으로 달리는 Going to the sun road를 서 쪽 방향으로 폐쇄된 구간 직전까지 드라이브하다가  캠핑장에 도착하니 텅텅 비어있다. 네 다섯 팀 밖에 보이지 않는다. 서쪽에 비교하면 사람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캠핑장에서 바라보는 글레이셔 마운틴 레인지가 그림 같다. 차에 앉아 바라보고 있는데 또다시 감사한 마음이 든다. 글레이셔 마운틴 레인지를 보며  캠핑장을 한 시간쯤 산책을 했다. 이 캠핑장 아주 마음에 든다.  여름에 다시 와서 Going to the sun road 전 구간을 여행하고 싶다.    왜 좋은 국립공원들은 다 서부에 있는 걸까!  정말 집에서 너무 멀다.

McDonald Lake  


Lake McDonald
Lake McDonald
St. Mary Camp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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