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레이셔 국립공원의 St.Mary를 떠나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가기 위해 남쪽으로 향했다. 아침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도로 상황이 걱정된다. 오늘도 고지대 산악도로를 많이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한 시간 채 되지 않아 눈이 그쳤고 고지대 산악 도로를 안전하게 통과했다. 7시간 정도를 운전하여 몬타나 남쪽 끝에 있는 Gardiner에 도착했다. Gardiner는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북쪽 입구가 있는 마을인데, 유명한 Roosebelt Arch가 있다. 이곳에서 3마일 정도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와이오밍주로 들어가게 된다. 비록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3개의 주에 걸쳐 있지만 96%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와이오밍주에 있다. 나머지 3%가 몬타나 주, 그리고 1%가 아이다호 주에 있다.
Roosebelt Arch
와이오밍주는 미국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낮은 주의 하나로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인 옐로스톤과, 그랜드 티턴 국립공원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와이오밍 주는 '카우보이 주'로 불린다. 어릴 때 본 서부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들어본 주 이름이었는데 세계에서 제일 큰 야외 로디오 경기장이 있다. 와이오밍 주에 대한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미국에서 여성의 선거권이 처음으로 인정된 주라는 사실이다. 여성의 인권이 미 동부보다 더 발달했던 이유라기보다는, 흑인의 선거권이 인정된 반 작용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북 쪽 입구에서 남쪽으로 5마일 정도를 더 진행하면 캠핑장이 있는 Mammoth Hot Springs에 도착하게 된다. 작년 11-12월에 캠핑장 예약을 했는 데도 자리가 없어 3일을 머무르는 동안 매일 다른 사이트를 예약해야 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1872). 외국인이 좋아하는 미국의 국립공원 중 하나로 수많은 Geysers(간헐천)들과 Bison(들소), 곰 등을 비롯한 야생 동물의 서식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인도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500개가 넘는 간헐천이 있는데 이 숫자는 전 세계 간헐천의 50%가 넘는 숫자라고 한다. 캠핑장에 도착하니 사이트에 짐승들의 분비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운 나쁘게 내 사이트만 그런가 싶어 둘러보니 다른 사이트들도 마찬 가지다. 역시 야생 동물이 많은 국립공원이니 다들 그런가 보다 하는 것 같다. 캠핑장이 한 사이트도 빈 곳이 없이 사람이 꽉 차 있다.
식사를 마치고 Mammoth Hot Springs 바로 앞에 있는 관광 안내소로 이동했다. 그런데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바이슨이 빌딩사이와 주차장 도로에 여기저기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다. 옐로스톤 그 넓은 땅의 벌판이 아니라 하필이면 식당과 가게, 사무실 등이 즐비한 이곳에 있단 말인가. 왜 통제를 하지 않는지 의아했다. Bison은 위험한 동물이다. 해마다 3백만이 훨씬 넘는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인데,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경고 표지를 읽고 지시를 따르리라 생각하는 건지. 해마다 바이슨이 관광객을 공격하는 경우가 여러 건씩 일어난다. 25야드 이내로 근접하면 위험하다는 경고를 무시하거나 또는 경고를 읽지 않은 관광객들이 가까이 접근하다가 공격을 당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이런 위험한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방문한 지 2달이 지난 후 9살 여자 아이가 바이슨에 공격을 당해 다쳤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 밖에도 이 2달 동안 남성 한 명과 여성 두 명이 공격을 당해 심각한 상해를 입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빌딩 건물 사이를 바이슨이 자유롭게 다니게 허용하고 있으니, 바이슨에 대한 지식이 없는 관광객들은 그 들이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곰이나 사자등의 위험한 동물들을 건물사이로 돌아다니게 허용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부주의한 관광객들이 조그맣게 쓰인 경고 사인들을 무시하기가 쉽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나무로 된 보드워크 같은 곳도 주위에 바이슨이 있다. 이런 보드워크 주위에 있던 바이슨에 의해 공격당하는 경우도있는데 아마도 가까이서 멈추고 지켜보다가 사고를 당한 게 아닐까. 전반적으로 위험에 대한 경고 사인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건 한국이 정말 잘하는 것 같다. 한국의 고속도로를 운전할 때면 끊임없이 반복되는 졸음운전에 대한 경고를 볼 수 있다. 문구도 참신한 게 많아 읽는 재미도 있다.)
Mammoth Hot Springs 에는 약 50개의 간헐천이 있다. Mammoth Hot Springs를 한마디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석회동굴을 뒤집어 놓은 지형이라고 말한다. 즉 석회동굴의 안 쪽이 바깥쪽으로 나온 것 같은 모양이라는 것이다. 비나 눈등이 지하로 스며들어 생긴 지하수가 마그마의 영향으로 데워지고, 마그마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이 물에 녹아 산성의 물이 된다. 이 산성 성질을 띤 물에 라임스톤이 녹아드는데 이 물이 지상으로 배출되어 냉각되면 물속의 이산화탄소는 공기 중으로 배출되고, 물속에 들어었던 라임스톤이 침전되어 생기는 것이 바로 travertine (트래버틴)이다. 이 트래버틴이 쌓여서 높은 언덕을 만들고 계단처럼 흘러내리는 모양이 되어 Terrace라고 불린다. 이 라임스톤의 침전물이 하루에 2톤씩 Mammoth Hot Springs로 유입이 되니 매일 새로운 형태의 트래버틴이 생기는 것이다. 표면으로 나온 물의 온도는 어느 정도 냉각되어 80C 쯤 되는데, 여름의 더운 날씨에 옐로스톤을 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걷기만 해도 더운데, 여름의 그 많은 인파 속에서 이 간헐천 사이를 걷는 일은 생각하기 싫다. 간헐천의 색깔은 고온에서 사는 녹조의 종류에 따라 갈색, 오렌지색, 녹색이나 붉은색을 띤다. Mammoth Hot Springs는 Upper와 Lower Terrace로 나뉘는데 1.5마일 정도의 나무로 된 보드워크로 연결되어 있어 쉽게 산책할 수 있다. 근처에 있다면 한 번 들려봄직한 곳이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어린 Elk가 건물 앞 잔디밭에서 풀을 뜯는다.
다음 날 아침 캠핑장 사이트를 옮겼다. 이전 사람이 아침 일찍 떠났던지 아침에 자리가 비어있었다. 어제 사용했던 사이트보다 훨씬 나은 것 같아 흡족했다.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 잡아 맞은편에 사람도 없어 조용해서 좋았다. 남쪽에 있는 유명한 간헐천 방문은 내일로 미뤘기에 오늘은 시간이 여유로웠다. 식사를 한 후 파크레인저가 추천해 주던 Slough Creek으로 향했다. Mammoth Hot Springs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데 늑대, 곰, 바이슨 등의 야생 동물을 관찰하기 좋은 곳이지만 가는 길 경치도 아름답다며 추천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에 차들이 서있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했더니 도로 옆에 곰이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곰을 처음 본다.
Mammoth Hot Springs에서는 바이슨이 한 마리씩 여기저기에 있었는데 여기 넓은 벌판에 오니 수십 마리의 바이슨이 여기저기에 무리 지어 있다. 바이슨의 무리를 사진에 담기 위해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나와 있다. 아래 사진처럼 19세기 미국의 사실주의 페인팅을 연상시키는 풍경을 계속 지나다가 Slough Creek에 도착했는데 주차할 데가 없이 차들이 도로 양 옆으로 끝없이 늘어서 있다. 이렇게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이었던가? 힘들게 도로가에 주차를 시키고 나와보니 모두 늑대나 곰을 관찰하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원거리 카메라 렌즈를 장착하거나 커다란 망원경을 들고 온 사람이 많다. 나에겐 동물원에서 자주 보던 늑대나 곰을 야생에서 보는 것이 뭐 그리 흥분되는 일이 아니다. 흥분한 옆 사람이 손짓으로 가리키며 저기에 늑대가 몇 마리 있다고 열심히 설명해 주지만 눈을 크게 뜨고 찾고 싶은 생각이 없어 웃으며 그러냐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산 아래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왔더니 한 여성 여행자가 방금 저 밑 어디 어디에서 곰을 봤다고 흥분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해 준다. 그러냐고 했더니 위치를 자세히 설명해 주며 가보라고 한다. 사실 난 곰을 보는 거에 관심도 없고 그녀가 말한 곳을 찾아갈 생각도 없었지만 그녀의 흥분을 반감시키고 싶지 않아서 알았다고 했다. 그녀는 그 흥분되는 순간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Slough creek
하루 종일 별로 걷지를 않았기 때문에 저녁 무렵 Mammoth Hot Springs 보드워크를 2번 왕복했는데 3마일 밖에 되지 않는다. 다시 주위 안 가본 곳을 탐험하고 하루 걷기 할당량을 채운 후에 기념품을 구입했다.
다음날은 타이트한 일정이라 아침 일찍 캠핑장을 떠났다. 옐로스톤의 동쪽 도로는 Grand canyon of Yellowstone으로 가는 도로를 제외하면 모두 폐쇄되어 있었다. Mammoth Hot Springs에서 남쪽으로 20 마일 정도를 가면 Norris 교차점을 만나고 여기서 왼쪽으로 15-6 마일을 더 가면 North rim drive가 나온다. 이 도로를 따라가며 Grand canyon of Yellowstone의 여러 전망대들에 내려서 옐로스톤 폭포나 캐년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Grand canyon of Yellowstone은 Yellowstone 국립공원에서 전망이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전망대 근처에 있는 트레일을 걷는데 날씨가 매우 춥고 눈도 있어 조금 걷다가 돌아왔다. 단단히 무장을 하고 왔는데도 매우 춥게 느껴진다. 5월인데도 여기는 아직 겨울이다. 폭포 위 쪽까지 가서 폭포물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 전망대는 폐쇄되어 갈 수 없다.
다음 목적지는 Norris basin이다. 옐로스톤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뜨거운 간헐천이 있는 곳이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큰 간헐천인 Steamboat 간헐천이 있는 곳으로, 분출했을 때 최대 높이가 91미터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분출하지 않을 때는 별로 볼 게 없다. Mammoth hot springs 간헐천으로 유입하는 물도 여기 Norris basin에서 흘러 나가는 것이다. Porcelain basin과 Back basin 등 2개의 트레일이 있는데 약 두 시간 정도면 모두 둘러볼 수 있다. 지금까지 20명이 넘는 관광객이 Norris에 있는 간헐천에 빠져 사망했다. 물론 해마다 3백만이 넘는 사람이 방문하니 이 숫자는 작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의 지식과 주의만 있었다면 예방할 수 있던 일이다. 이렇게 위험한 간헐천인데 주위에 경고 사인이 너무 적고, 또 경고 사인이 시선을 집중시킬 만큼 효율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Norris basin을 떠나 남쪽으로 가며 Lower, Midway, Biscuit, Black sand, Upper basin 등을 둘러봤다. Upper basin에는 Old faithful이라는 간헐천이 있는데 아마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 중 하나 일 것이다. 'Faithful'이라는 이름이 말하듯이 다른 간헐천과는 달리 일정한 시간에 하루에 20번씩 규칙적으로 분출을 하기 때문이다. 분출하는 것을 보기 위해 관광객이 워낙 많이 찾아오니 Old faithful을 빙 둘러가며 관람 벤치도 구비되어 있다. 바로 근처 Old faithful Inn이 있어 주차장도 아주 넓다. 분출 시간은 홈페이지나 관광 안내소 밖에 안내되어 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분출 시간까지 1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별로 기다리지 않고 분출을 구경했다. 드디어 분출을 시작하고 점점 더 높아져 정점에 도달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내가 기대하던 것보다 흥미롭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Old faithful 분출을 관람 후 Upper geyser loop을 한 바퀴 돌았다. 오늘 하루 크기, 모양, 색깔이 다양한 수백 개의 간헐천을 본 것 같다. 트레일 중간에 있는 Grand gyeser를 지나는데, Old faithful보다는 훨씬 작은 숫자지만 벤치가 마련되어 있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Grand gyeser는 분출이 예측 가능한 간헐천중에 가장 높은 분출을 자랑하는데 Old faithful보다 더 넓고 높다고 한다. 그러나 분출되는 시간 범위가 Old faithful보다 훨씬 긴 2시간이기 때문에 운이 좋으면 기다리지 않고 금방 볼 수도 있지만 운이 없으면 거의 2시간을 기다려야 하니 Old faithful보다 방문자 수가 훨씬 적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예상 분출시간이 한 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한 시간 이상 기다릴 생각이 없어 그냥 돌아왔는데 나랑 잠시 동행했던 한 부부는 기다리기로 했다. 나중에 이 부부를 다시 만났는데 내가 떠나고 조금 있다 분출을 했다고 한다. 아쉽다.
캠핑장으로 돌아오니 6시가 되었다. 오늘 Guyser를 보는데 무려 16킬로미터를 걸었다.
여행의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믿기 힘들다. 이제 두 개의 목적지, 그랜드 티턴과 록기 마운틴 국립공원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