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율 Pi(π)의 소수점은 2022년 3월 기준, 100조(100 trillion) 자리까지 계산되어 있다고 한다.(참고로 기네스 기록에 의하면 파이 소수점을 가장 많이 외운 사람은, 무려 24시간 4분에 걸쳐 소수점 67,890자리를 외운 중국인이라고 한다. 심지어 pi 소수점 100개, 10000개를 외우는 영어 노래도 있다 ).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퇴화하는 나의 기억력에 조금은 의기소침해지고 있어 pi 소수점 200개를 다시 외우기로 했다. 왜 그런 실없는 일을??이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퇴화하는 기억력을 훈련하고 응원하는 차원에서 외우기로 했다.
파이 소수점 200개를 외우기 위해 내가 사용한 방법은 'Method of loci'와 'Mneomonic major system'인데, 둘 다 Mneomonic device의 일종이다.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Memory Palace의 개념도 Method of loci의 원리에 근거한 것이다. Visualization과 공간을 기억하는데 이용한다는 기본 전제는 같지만 세부적인 방법은 행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변형이 가능하다. 200개뿐만 아니라 1000개 또는 그 이상의 숫자 암기도 이 방법을 통해 가능하다. 다만 암기하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다.
식사를 준비하다 냉장고 문을 열고 문 앞에서,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갔는데 계단 끝에 도달해서, 멍하니 서 있어 본 적이 있다.
물론 황당한 몇 초간의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난다. 왜 냉장고 문을 열었는지, 뭘 가지러 2층으로 올라왔는지. 문제는 해마다 황당한 채 서있는 그 시간이 조금씩 연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낭패스러운 이벤트들이 되풀이되면 부정하려 해도 내가, 나의 뇌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처음에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놀랍고 당황스러워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했다. 친구들은 자신들도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일이라며, 난 심지어는 이런 일까지도 있었다고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우유를 팬트리 캐비넷에 넣어둔 걸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는 친구도 있었다.
젊었을 때 나이 든 어른들로부터
'내 나이 돼 봐', 또는 '늙는 거, 지나고 나면 금방이야'
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물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나에게도 당연히 그런 날이 올 거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자신을 그 상황에 감정적, 정서적으로 대입시키기는 힘들다. 너무 먼 미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일로 느끼지 않는다. 20대에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것은, 마치 '지구에 빙하기가 다시 도래할 것이다'라는 말을 듣는 것과 같다.
노인들이 자주 하는 말-- '너는 평생 안 늙을 것 같지?' 이 말은 노인들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자신들이 젊었을 때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40대까지만 해도 전화번호를 들으면 적지 않고 그냥 외울 수 있었다. 지금은 그럴 수 없다. 비밀 번호를 변경하고 이를 적어두지 않으면 거의 100%의 확률로 기억하지 못한다. 어떨 땐 비밀 번호를 바꾸었다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린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면 어쩔 수 없이 겸손하게 된다--- 메모를 하는 습관이 들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교만해질 때가 있다.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메모를 생략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 얼마 지나지 않아 여지없이 나의 착각을 인정하게 된다.
현대의 테그놀로지도 우리의 기억력을 퇴화시키는데 상당한 지분이 있다. 예전에 우리가 외워야 했던 많은 것들을 더 이상 구태여 기억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전화를 잃어버릴 경우 떠 올릴 수 있는 전화번호가 몇 개가 있을까? 비밀 번호도 자동 저장하기 때문에 기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사실 외워야 할 비밀번호가 너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약속을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알람을 설정한다. 지도를 보고 생각 없이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기계적으로 따른다. 몇 번 가 본 길이라도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갈 수 없다는 사람들이 있다. 구태여 길을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인간의 많은 정신활동을 기계가 떠맡으니 편리함에 지배되고 수동적이 된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어떤 형태로 길들여지는 것 같은 두려운 느낌이 든다. (집을 떠나 외출 중 핸드폰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한 순간 즉시 불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핸드폰이 없던 시절엔 아무런 문제 없이 하루 종일 외출해도 이런 불안함이 없었다. 길들여진 결과다.) 현대의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기술이, 종국에는 인간이 더 이상 '기억'이라는 정신활동을 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누리는 이 모든 현대 문명의 편리함에 섬찟한 기분이 들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익숙한 편리함의 늪에서 헤어 나기란 쉽지 않다.
사실 아주 오래전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이 기억 방법을 혼자 공부한 후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엄마가 pi 숫자 200개를 외운다고, 흥분해서 그 방법을 가르쳤건만 아이들은 시큰둥했다. 본래 아이들에게 가르칠 목적으로 열심히 공부했는데 아이들이 원치 않으니 그냥 잊어버렸다. 그 십몇 년 묵어둔 기억법을, 나의 퇴화하고 있는 기억력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된 최근에 다시 복습했다.
비록 그땐 시큰둥했지만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나처럼 기억력 퇴화에 대한 경각심이 생기면 이 글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나의 경험과 견해를 토대로 방법을 설명하겠다.
1. 0에서 9까지 숫자에 S, T, N, M, R, L, J, K, F, P의 알파벳 캐릭터를 각각 배정한다.
ex) 0은 S, 1은 T, 2는 N, 3은 M, 4는 R etc...
(왜 하필 이 철자들을 이용하는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신빙성 있는 대답을 찾지 못했다.)
원래의 방법은 숫자당 하나의 알파벳이 아니라 유사 발음이 나는 알파벳도 허용한다.
예를 들면 1의 경우 T뿐만 아니라 비슷한 발음인 D도 허용된다.
0의 경우, S뿐만 아니라 Z도 ,
6의 경우 J 뿐만 아니라 CH, SH 등도 허용된다.
그러나 나는 규칙은 간결할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경험으로 문자 하나당 한 글자만 배정하는 것이 기억하기에 더 편리했다. 나의 주관적인 견해다. 물론 이렇게 숫자당 한 글자만 택하면 선택할 수 있는 단어 Pool이 그만큼 줄어들게 되고, 결과적으로 단어를 선택하는 과정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다행히도 이 100개의 숫자에 해당하는 단어들을 스스로 찾을 필요는 없다. 온라인을 찾아보면 이미 만들어진 단어 리스트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 경우 단지 만들어진 100개의 리스트들을 암기하면 된다. 난 내가 직접 만드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유는 배정된 단어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 또 내가 직접 선택한 단어들이 기억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온라인 리스트는 구태여 명사에 한정하지 않고 동사나 형용사도 이용한다. 그러나 동사나 형용사는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시각화하기에 명사처럼 효율적이지 않아서 명사와 비교하면 기억을 재생할 때 정확도가 떨어진다. (나의 견해는 일반 암기 과정이 아닌 숫자의 암기 과정에 한한다.)
***꼭 이 알파벳들(S, T, N, M, R, L, J, K, F, P)을 이용할 필요는 없다. 임의로 자신이 원하는 알파벳 자음 10개를 0에서 9까지 배정해도 된다. 다만 그 철자들에 의거해 본인이 이미지들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
2. 두 자리 숫자(10-99)를 이 철자들을 조합해서 만든다.
즉 10은 TS, 11은 TT, 12는 TN, ........
88은 FF.......
99는 PP
이렇게 0에서 99까지 기호의 배정이 끝나면,
숫자를 보면 기호를, 기호를 보면 숫자를 즉시 떠 올릴 수 있게 연습한다.
3. 이 100개의 기호들에 이미지를 배정한다. 이 철자들을 포함하는 영어 단어들 중 적당한 명사를 찾아 각각의 숫자에 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S(0)는 Squrrel, R(4)은 Rabbit, TR(14) 은 TRUMP 전 대통령, MF(38)은 MUFFIN, NN(22)는 NUN...
이런 식으로 쉽게 시각화할 수 있는 명사 단어를 배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 배정 작업은 다소 시간이 걸리는 데 왜냐하면, 기호에 포함된 알파벳이 단어 철자와 발음에 포함되어야 할 뿐 아니라, 이미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는(visualization) 명사로 된 단어여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이미지는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색채를 이용하고 이미지가 구체적일수록 좋다.
예를 들면 단순히 'R' 철자와 발음이 들어가는 'Rabbit'이라는 '단어'를 배정하는 것이 아니라 Rabbit의 '이미지'를 배정하는 것이다. 영화나 책, 또는 다른 미디어에서 봤던 인상적인 이미지를 이용하거나, 자신이 만든 이미지를 부여할 수도 있다. 참고로 내가 떠올리는 토끼(RABBIT, 4) 이미지는 '비정상적으로 큰 귀를 가진 얼룩말 줄무늬를 가진 토끼'다. 실제 줄무늬의 토끼는 없다. 이런 의외성이 이미지를 좀 더 인상적이고 선명하게 만드는 것이다(검은 망토를 입은 하얀 토끼, 황금색 왕관을 쓰고 앞치마를 두른 토끼 등등, 말 그대로 'Your only limit is your imagination'이다).
내가 이용하는 트럼프(14 TR)의 이미지는 그의 삐친 듯 화가 난 표정의 스냅샷에서 가져온 것이다(옷의 색깔, 넥타이 색깔, 얼굴 표정, 헤어스타일 등의 구체적인 요소를 가진 이미지를 사용한다). 이렇게 100개의 이미지가 배정되고 그것을 주저함이 없이 금방 떠 올릴 수 있게 암기가 되면,
즉 14를 보면 자동적으로 트럼프의 모습이 떠오르고, 트럼프를 떠올리면 14가 동시에 떠오르는 단계가 되면, 이제 숫자를 외울 준비가 다 된 것이다.
4. 이러한 이미지를 배치할 수 있는 공간을(흔히 Memory Palace라고 부른다) 구축해야 한다. 나에게 아주 익숙해서 눈을 감고 정확하게 떠 올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나의 방, 거실, 부엌, 사무실, 자주 가는 카페등, 공간과 공간에 배치된 가구나 사물의 위치와 모양을 정확하게 떠 올릴 수 있는 익숙한 공간이면 어디나 이용할 수 있다. 내가 매일 걸어가는 산책로등의 야외 공간을 이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공간에 이 이미지들을 배열하는 것이다. 이 공간은 실제 공간이 아니라 상상 속의 시각화된 공간을 사용해도 좋다. 이 경우 반복된 이미지 재생을 통해 선명한 시각적인 공간을 떠 올릴 수 있어야 한다. 자주 보는 드라마의 세트를 이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미국 시트콤 'Friends'의 메인 세트인 레이철과 모니카의 거실, 'Seinfeld'의 Jerry의 거실을 이용하기도 한다.
5. 암기해야 할 숫자와 연계된 이미지들을 이용해 이 선택한 공간에서 순차적으로 시각적인 스토리를 만든다.
예를 들어, 16자리 카드 번호 (2414 3431 2211 1840)를 암기한다고 하자.
이 번호들에 대한 이미지들이 순차적 등장하는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다.
내가 사용한 이미지들을 이용해 예를 들어 본다.
24 -NR- NURSE (간호사)
14-TR-TRUMP (트럼프 전 대통령)
34-MR-MIRROR (거울)
31-MT-MITTEN (벙어리장갑)
22-NN-NUN(수녀)
11-TT-TURTLE (거북이)
18-TF-TOFU (두부)
40-RS-ROOSTER (수탉)
이 8개의 이미지를 내가 선택한 공간에 순차적으로 배치하여 스토리를 만든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려서 사무실까지 가는 경로를 내가 스토리를 만들 공간이라고 가정해 보자.
지하철문부터 시작하자. 내릴 역이 가까워지고 하차하기 위해 문 근처로 이동하는 자신을 상상하자.
"하차할 문 앞에 하얀 가운에 하얀 모자를 쓴 긴 금발의 키가 180cm의 여성 간호사(24 Nurse)가 사람들의 눈길을 한눈에 받고 있다(난 간호복을 입은 우마 서먼을 간호사 이미지로 이용한다). 지하철이 정차된 후 출입문 밖으로 나오다가 깜짝 놀랐다. 바로 트럼프(14 Trump) 전 대통령이 팔짱을 끼고 얼굴을 찌푸린 채 줄의 맨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힐끗힐끗 뒤돌아 보며 계단 쪽으로 걸어가던 중, 왼쪽 벽에 있는 뭔가에 머리를 꽝하고 부딪쳤다. 놀라서 고개를 돌리니 왼쪽 벽 앞에 영화 백설 공주의 계모 왕비가 보던 거대한 전신 거울(34 Mirror) 이 떡하니 서 있다.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힐끗 본 후, 계단을 올라가는데 계단 중간에 하얀색 니트 벙어리장갑이(31 MITTEN) 한쌍 떨어져 있다. 두 개의 장갑이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한쪽은 위해 다른 한쪽은 몇 계단 밑에 떨어져 있다. 지나면서 보니 신발자국에 의해 더러운 얼룩이 장갑 위에 나 있다. 이윽고 계단을 올라와 개찰구로 걸어가면서 보니, 수녀님이 (22 Nun, 나는 영화 'Sister act'에 나왔던 원장 수녀님의 이미지를 이용한다) 출구를 통과하기 위해 교통카드를 찍고 있는데 경고음이 계속 들리자 안내원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다. 출구를 나와 왼쪽에 있는 스타벅스를 지나는데 스타벅스 문 앞에 거대한 녹색 거북이(11 Turtle)가 두 발로 서서 유리문에 기대어 매장 안을 열성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뭘 보는 거야? 걸어가 거북이 옆에 나란히 서서 매장 안을 들여다보니, 유리문 안쪽 매장 바닥에 하얀 두부(14 Tofu) 한 모가 놓여 있다. 그런데 이때 매장 안 쪽에 거대한 파란색 수탉(ROOSTER)이 테이블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며 테이블 위 마시던 음료수가 엎어지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렇게 하나의 스토리가 카드번호를 암기하는 수단이 된다.(즉 시각적 스토리에서 nurse, trump, mirror, mitten, nun, turtle, tofu, rooster를 순차적으로 떠올리며 이들 이미지와 연계된 24, 14, 34,31, 22, 11, 18, 40의 숫자를 떠 올리는 것이다. 즉 숫자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인 스토리를 기억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면 스토리 설정 후 1-2번을 재생하면 숫자들의 암기가 가능하다.
몇 가지 유용한 팁을 말하자면,
1. 스토리 상황이 비 논리적 일수록, 의외의 상황일수록, 구체적일수록, 시각적인 이미지가 구체적이고 선명할수록 기억이 더 잘 된다. 상상은 자유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재미있게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2. 너무 좁거나 사물들이 위치가 너무 가까운 공간(물건이 빽빽하게 차 있는 공간)은 Memory Palace로 좋지 않다. 또한 한 공간에 너무 많은 이미지들을 사용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기억에 착오가 생기기가 쉽고 기억하기도 힘들다.
3. 비슷한 맥락에서, 사물들의 순서가 중요하므로, 설정한 이미지들 간의 거리가 가까우면 순서에 착오가 생길 수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나의 '시선의 이동'에 따라 이미지를 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내가 움직이는 '동선'에 따라 이미지를 배치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면 화장대 위 왼쪽에는 뭐가 있고 그 옆에는 뭐가 있고, 오른쪽에는 뭐가 있고.... 이렇게 세 개의 이미지를 다닥다닥 화장대 위에 배치하면 기억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3개의 이미지가 가까이 있으면 스토리를 만들기도 힘들다. 이 세 개의 이미지를 보기 위해서 내가 움직일 필요가 없다. 즉 나의 동선이 생성되지 않는다. 오직 나의 시선만 움직일 뿐이다. 이런 배치는 효율적이지 않다.
4. 모든 100개의 이미지들을 구체적으로 custom made 한다. 나만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34 거울의 경우, 상상 속의 공간에서 어떤 거울을 떠 올릴 것인가, 모양 크기 재질등을 구체적으로 결정한다. 온라인 서치를 통해 가장 갖고 싶은 럭셔리한 거울을 선택할 수도 있다. 내가 사용한 숫자 37(MK)에 배정된 이미지는 Monkey였는데, 어떤 Monkey의 모습을 떠 올릴까를 구체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시각뿐 아니라 청각을 곁들이면 좋다. Rooster(40 RS)의 경우 파란색 빨간 벼슬의 거대한 수탉이 내는 우렁찬 '꼬끼오' 소리까지 스토리의 재생에 포함하는 것이다. Lemon(53 LM) 경우 색깔은 레몬 본연의 노란색을 사용한다. 왜냐하면 노란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대치하면 레몬 본연의 이미지가 사라진다. 기억을 선명하게 하기 위해 이미지를 custome made 해야 하지만 대상의 본질을 파괴하는 변화는 기억에 혼란을 줄 수가 있다. 대신 크기를 참외 크기처럼 만들거나 레몬의 신맛, 레몬의 향기 등을 같이 연상한다 (또는 슬라이스 되어 예쁜 접시에 담겨있는 레몬의 이미지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이 경우 '접시'가 100개의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아야 한다). 이용하는 감각의 종류가 많아질수록 기억의 정확성이 증가하고 오래 지속된다. 그러므로 시각뿐 아니라 가능하다면 청각, 미각, 후각을 다 동원하여 선명한 인상적인 이미지를 만든다.
5. 스토리를 만들 때, 등장하는 이미지들 간의 상호작용을 설정할 경우, 이미지들의 순서에 착오를 일으킬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위 예시에서, 트럼프와 거울의 좌표를 분리시키지 않고 트럼프가 거울을 보고 있다고 스토리를 만들 경우, 시간이 지난 후 트럼프가 먼저인지 거울이 먼저인지 기억이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스토리의 상호 작용을 포함시키기를 원한다면 '트럼프가 거울을 보고 있다'라는 문장을 강조하여 순서가 바뀌지 않도록 한다. 즉, '나의 스토리에서 언급되는 단어의 순서가 이미지를 재생하는 순서다'라는 자신의 규칙을 만들고 스토리의 설정/재생 시 이 규칙을 상기하는 것이 좋다.
이 방법으로 파이 200개의 숫자를 암기하는 데 20분 정도가 걸렸다. 숫자를 보고 바로 그림을 떠 올릴 수 있도록, 이미지를 보고 바로 숫자를 떠 올릴 수 있도록 연습을 한 후 스토리텔링 단계로 나아간다. 이 연상 속도에 따라 암기 속도가 결정된다. 시간이 다소 소요되는 이 초기 과정만 지나면 그다음은 쭉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과 같다. 나의 경우 100개의 명사단어를 설정하고 100개의 이미지를 세부적으로 시각화하는 과정에 가장 긴 시간을 투자했다. 마지막 리스트가 셋업 될 때까지 몇 번이나 수정을 해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나처럼 기호를 이용하지 않고 100개의 숫자에 100개의 이미지를 규칙 없이 그냥 배정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 0에서 9까지의 기호를 조합해 두 자리 숫자를 만드는 것이 더 체계적이라 기억하기가 쉬웠다. 그러나 이 방법은 숫자에 이미지를 배정하는 데 있어, 명사 단어의 철자에 의해 제약을 받는 단점이 있다. 예를 들어 14(TR)의 경우, 철자에 T와 R이 들어가는 영어 명사 중, 쉽게 시각화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아야 한다. 물론 발음에도 T와 R의 소리가 두드러지게 들려야 한다.
반대로 100개의 숫자에 100개의 이미지를 랜덤으로 부여하면 철자나 발음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원하는 이미지를 배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체계나 규칙 없이 100가지의 숫자와 이미지를 외워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0은 우리 엄마 , 1은 우리 아빠, 2는 이 순신,................. 98은 봉지에 든 콩나물, 99는 모나리자. 이렇게 마음대로 배치하고 외울 수도 있다. 단지 나는 이 방법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