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 준 생
그리고 며칠 뒤, 02로 시작되는 전화 한 통이 울렸다.
그 전화는 협회에서 온 전화였고, 면접 날짜와 장소를 알려주며 자기소개서를 준비해달라 전하였다. 참 이상하게도 그동안의 자기소개서는 머리를 쥐어 짜며, 그를 억지로 껴 맞췄는데 이번에는 왜 디자인하고 싶은지, 언제부터 관심 있었는지 거짓 없이 술술 써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였다. 그렇게 일주일 후, 면접 날이 다가온 그는 자기소개서를 챙겨 선릉역 3번 출구로 향하였다.
처음 가보는 선릉역은 누구나 알만 한 회사들이 줄지어 모여있었고 반듯하게 차려입은 직장인들이 한 손에는 커피를 든 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회사 본사 가 여기 있었구나” “저 사람들은 개발자들인가?” 하며 그 거리를 구경하자, 몇 걸음 안가 어느새 협회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그는 빈 강의실을 기웃거리며 몇 명이나 수업을 듣는지, 어떤 컴퓨터를 쓰는지 재빠르게 눈으로 스캔했다. 새로 나온 맥 컴퓨터와 깔끔한 인테리어, 그가 상상했던 것 보다 더 좋은 시설에 그는 꼭 다니고 싶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때 단발머리에 예쁜 눈웃음을 가진 여자가 “차 한 잔 드릴까 요?” 하며 살며시 다가왔다. 편안하게 대화를 이끌어 주는 그녀는 디자인 실무를 가르쳐줄 선생님이었고, 함께 공부할 학생들을 직접 면접을 통해 뽑고 있다 알려주었다. 면접은 1:1로 진행 되었는데 디자인을 기존에 했었는지, 왜 하고 싶은지, 하게 되면 어떻게 공부하고 싶은지 등 꽤 구체적이었다. 30분이라는 면접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의 이야기와 취업전선에서 뛰고 있는 현재의 상태, 그리고 어떻게 공부하고 싶은지를 말 하였다. 그중 블로그로 하루 한 번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 그와 같이 디자인 툴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 다는 말은 면접관인 그녀에게 꽤 좋은 인상을 준 듯했다. 그렇게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면접은 끝이 났고, 3일 뒤 합격 문자가 날라왔다.
[ 한 달이 흘러 수업이 있는 첫날 ]
그는 막상 새로운 이들과 마주하려 하니 취업이라는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디자인 관련 사람들일 텐데 내가 너무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OT라는 명목 아래 저마다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어떻 게 들어오게 됐는지 이야기하며 이런 걱정은 금세 사라졌고, 어느새 한 배를 탄 동료가 되어있었다.
[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세 달이 가던 어느 날]
그에게 첫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협회와 협력관계를 가지고 있던 몇 기업 앞에서 시안을 브리핑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중 한 곳에서 기획자로 면접 제안을 따로 한 것이다. 그는 디자이너가 되길 희망해 여기까지 돌고 돌아왔지만, 기획력이 좋다는 말과 기획자가 어울린다는 이것 저곳의 피드백을 들으며 기획팀 인 턴으로 들어가게 되는 실수를 하고 만다. 결과는 역시나였다. 디자인팀, 퍼블팀, 개발팀 등 각 팀에서 날아오는 수백 개의 쪽 지에 피드백을 주는 것과 그 피드백의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지 는 기획 일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중 제일 힘든 건 그였으면 이렇게 디자인해서 좀 더 효과적이고, 새롭게 보이게 할 수 있 을 거 같은데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디자이너와의 신경전이 었다. 더 이상 이렇게 지내는 건 시간 낭비라 생각한 그는 인턴 3개월이 끝날 무렵 정규직 전환 시험을 포기하고 퇴사를 결심했 다.
퇴사를 하루 앞둔 어느 날, 그동안 프로젝트로 자주 만났던 디자이너 하나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기획자님 디자인하신다면서요?” / “네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요? 어디 한번 잘~~해 봐요.^^ ”
그동안 그가 디자이너들을 참 힘들게 했나 보다. 하지만 지금 그 에게는 이 말조차 자신의 선택을 응원하는 말로 들렸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디자이너 생활,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아니 이번엔 잘 맞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