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턴
아.. 우산 없는데...” 그가 면접을 위해 을지로역 2번 출구를 나 오며 꺼낸 첫마디였다. 분명 오전까지는 파란 하늘에 햇빛도 쨍쨍했지만, 서울로 오는 한 시간 반 동안 하늘은 우중충하게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경기도와 서울의 거리 차이인가? 붙어도 매일 왕복 세 시간이 넘는 이 거리를 출퇴근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건 합격이나 하고 생각할 문제이고, 그는 지금 비 한 방울 안 맞고 면접장까지 뽀송뽀송한 모습으로 가는 게 중요했 다. 오랜만에 신은 앞코가 뾰족한 검정 구두 때문에 발은 아팠지만, 그는 저 앞 커피숍 그다음 편의점까지를 속으로 외치며 있는 힘껏 뛰었다. 그렇게 몇 개의 가게들이 스쳐 지나가자, 어느새 빙빙 돌고 있는 회전문이 달린 회색 건물 앞에 도착했다.
도착한 곳엔 빨간색 사원증을 멘 사람들이 올해는 너희들이구나라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면접장소를 안내하고 있었고, 그들이 가리키는 손끝엔 긴장된 표정의 감색 정장 무리가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서 있었다. 누가 봐도 같은 층을 가는 것 같은 그 무리에 그도 걸어가 줄을 섰다. 같은 색의 정장과 같은 미 용실을 다녀온듯한 머리 스타일, 그는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 자니 “나도 중간은 하고 왔구나” 하며 묘한 안정감이 느꼈다.
12층에 도착한 그는 임시로 나열된 의자에 앉아 두리번거리며 몇 명이나 되는지 사람들을 체크했다. 꽤 많은 인원에 한참 기다 려야겠구나 싶었지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대기 줄은 생각보다 금방 줄었고, 곧 그의 차례도 다가왔다.
그렇게, 그의 5번째 면접은 시작되었다. 몇 번의 면접과 몇 번의 탈락은 그에게 상실감도 주었지만, 이럴 땐 이렇게 대답해야 하고, 회사는 이런 답을 원한다는 좋은 경 험 또한 주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공작새가 날개를 펼 치며 구애 활동을 하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찾아내어 최대한 크게 날개를 펼쳤다. 경영학과에서 기획팀이 아닌 디자인팀을 지원하게 된 이유, 인 턴만 하고 나온 이유, 이럴 때 어떻게 할지에 대한 물음 등 면접 관들은 참으로 질문을 잘 만들어 던졌다. 받은 질문에 그는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대답과 그가 생각하는 솔직한 답변 중 어떤 걸 택해야 하나 고민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이 사람들 입맛에 무조건 맞추는 게 정답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솔직하게 대답했더니 뽑혔어요” 이런 후기는 말 그대로 드라마였음을 경 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장점으로만 똘똘 뭉친 날갯짓은 통하였고, 그해 겨울 11명의 동기와 함께 그는 빨간 사원증의 주인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