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마지막 날을 3일 남겨둔 시점에 코로나 확진을 받고, 격리 중에 얼렁뚱땅 새해를 맞아서인지 해가 바뀐 것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다. 그저 시린 겨울의 연장선을 지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1월도 며칠 남지 않은 이 시점에 2023년 계획을 정리하고 싶어진 나도 참 나 같다. 새해가 무엇이길래 어제와 다른 새로운 '나'이고 싶게 만드는 걸까? 고작 하룻밤 차이인데 말이다.
한편으론 1월은 나에게 무료 체험판 같다. 급격한 변화를 질색하는 나는 1월을 과도기로 친다. 그렇게 1개월 무료 체험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한 해가 시작되는 느낌이랄까.
여하튼 극 P 인간의, 어쩌면 수년을 미뤄온 올해의 목표 6가지를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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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운전면허 따기
우리 집에는 흑수정 같은 눈을 가진 '기쁨'이라는 푸들 한 마리가 산다. 지독한 집순이 언니를 가족으로 둔 덕에 기쁨이는 6살이 되기 전까지는 늘 걸어갈 수 있는 산책로나 카페, 좀 더 멀리는 가족행사같이 아빠가 함께 가는 곳 정도로 활동반경이 좁았다. 가족 외의 존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짖기 바쁜 기쁨이의 성향도 한몫했다.
작년부터 철이 들었는지 짖음도 덜하고, 다른 강아지 친구(!)가 생길 정도로 많이 좋아졌다. 덕분에 나도 용기를 얻어 조금씩 새로운 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반려동물 운동장, 식당, 카페, 한강, 친구집… 그런데 뚜벅이 언니랑 다니려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야 하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꼭 케이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매번 작은 가방 안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몸을 구겨서 이동하는 기쁨이가 짠했다. 사람도 장시간 이동은 힘든데 하물며 말 못 하는 동물에게는 고문이 따로 없겠다 싶었다.
그런 생각을 5번쯤 했을까? 외출 후 2층 버스를 타고 집에 들어가던 어느 날, 빨간불에 정차한 옆차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고, 조수석 카시트에 자리를 잡고 있는 하얀 털뭉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꽤나 안락해 보였고, 그 찰나 반려인과 교감하며 즐거워하는 이름 모를 털뭉치를 보니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기쁨이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 순간 마음먹었다. 올해는 운전면허를 따서 기쁨이를 흙수저에서 차수저(!)로 업그레이드 시켜주겠다고.
2. 규칙적인 식사하기
원래 목표는 건강하기 먹기였다. 규칙적인 식사하기로 바꾼 이유는 제때 뭐라도 챙겨 먹는 것부터 시작해야 건강하게 먹는 게 가능하지 않겠냐는 발상이었다. 나름 직장인 8년 차… 업무가 바쁠 때는 커피 한잔 혹은 과일주스 한잔으로 하루 온종일을 버틸 때도 있었고, 야근이 잦을 때면 편의점 레토르트 음식으로 한 끼를 때우는 식사를 많이 했다. 그 결과는 뻔하게도 위장장애이다. 위통약이 상비약이 되었다.
나는 꽤나 할매 입맛이라 과자보다는 과일을, 밀가루보다는 쌀을, 기성품보다는 만들어 먹는 음식을 좋아했다. 생각보다 건강한 입맛의 소유자였는데… 지금은 탄수화물, 트랜스지방, 설탕 덩어리 인간이 되었다. 지금부터라도 아침, 점심, 저녁 때에 맞는 식사를 노력해보려고 한다.
3. 운동 시작하기
디스크가 터지기 일보직전인 모가지로 지금껏 잘도 버텼다.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받거나, 무리를 하면 목부터 아프고, 우리네 할머니들처럼 비나 눈이 오면 목이 쑤신다. 쑤시기만 하면 다행이지 두통이 올라와 정신을 못 차린다.
와중에 지난 연말에 계단에서 굴러 무릎과 어깨를 다치고, 연초에는 제대로 걷기가 힘들 정도로 골반이 아파서 정형외과를 자주 방문했다. 겸사겸사 뼈 사진을 이곳저곳 찍게 되었는데 원장님이 이제는 말하기도 지겹다는 표정으로 다른 것보다 운동을 해야겠다고, 필라테스를 콕 짚어 강조하셨다. 나름 도수치료 2년 차인데(3년 차인가…) 2년째(어쩌면 3년째) 걸어 다니는 게 신기한 근육량이라는 말 듣기 민망해서 이제는 운동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진짜 오래된 배터리처럼 에너지가 빨리 방전된다. 실제로 근육은 배터리처럼 에너지 저장고 역할을 해서 근육량이 많을수록 저장되는 에너지가 많고, 그만큼 오랫동안 기운을 쓸 수 있다고 한다. 늘 지쳐 있는 컨디션이고 싶지 않아서 더욱 운동을 결심하게 되었다. 내 평생소원은 단명이지만 아파서 유명을 달리하고 싶지는 않다.
4. 영양제 챙겨 먹기
어쩌면 ‘건강하게 살기’를 말하기 위해 2번, 3번, 4번에 걸쳐 긴 글을 나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체력이 한해 한해 꺾이는 건 느껴왔지만 스스로에게 작년과 올해는 꽤나 고비인 것 같다. 잘 자면, 수액 한 대 맞으면, 바짝 올라오던 체력도 다 옛날이야기 같다. 이젠 과학의 힘을 빌려야 할 때. 가장 간단한 홍삼부터, 멀티비타민, 콜라겐 다 섭렵해 주고야 말겠다.
5. 내 방 리뉴얼 하기
지금 살고 있는 집에 2016년 여름에 왔는데 아직까지 풀지 않은 이삿짐이 있다. 나의 원더우먼 할머니를 하늘나라에 보낸 직후 이사 온 집이라 정돈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박스들 사이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것만 쏙쏙 꺼내 쓰고, 없는 것은 새로 사서 채우니 그렇게 잊혀 가던 오래된 물건들. 희한하게 내 방에서 자면 꿈자리가 안 좋고, 목이 자주 아팠다. 그래서 좀 더 편한 침대가 있는 할머니방에서 자기 시작했다. 하루이틀만 쓰려고 했는데, 할머니방이 편하다 보니 옷가지와 화장품이 늘어나고 할머니방인지 내 방인지 애매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아빠가 내 방이라고 나름 꾸며준 방은 점점 보일러도 틀지 않는 잡동사니 창고가 되었다.
괜한 방 하나가 놀고 있는 것 같아 공간을 꾸며보기로 했다. 한쪽 벽면은 시스템 행거를 넣어 계절별 옷을 정리하고, 다른 벽은 좌식테이블과 빈백을 놓아 간단한 서재 겸 개인 공간으로 활용해보고 싶다. 앞으로도 잠은 할머니 방에서 잘 예정이다.
6. 내 멋대로 살기
5번이었다가 방 리뉴얼 하기가 추가되면서 6번째로 밀린 내 멋대로 살기. 마지막 순서라고 해서 덜 중요한 건 아니다. 오히려 장기전이라고 생각되는 난이도 있는 항목들이 뒤로 배치된 것 같다.
또비티아이 관점에서 INFP인 나는 외부 환경의 변화를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또,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쉽게 읽힌다. 상대방의 기분과 처지를 살피느라 나 자신은 뒷전이 된다. 나는 호의를 베푼 것인데,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여러 번 상처받고, 치유하는데 시간이 많이 든다. 몇 번이고 상황을 다시 떠올리고, 이불킥하고, 울고, 후회하고, 짜증 내고 소화해 내야 비로소 아무렇지 않게 된다. 이렇게 피곤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여러 해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유쾌하지 않다.
그래서 앞으로 10번 중 3번 정도는 내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싶어졌다. 하물며 먹고 싶지 않은 건 먹고 싶지 않다고 하고, 하고 싶은 건 하고 싶다고 하기로. 다른 사람이 보면, 그게 이기적이야? 이 순둥아!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 나름대로의 반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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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같은 기록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사람들이 쓴다고 한다. 나는 늘 입버릇처럼 30살이 되기 전에 죽고 싶다고 말해왔다. 내 처지로는 행복한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은데… 왜 갑자기 이렇게 길게 나의 다짐을 나열하게 되었을까? 요즘의 난 물음표 투성이다.
여전히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았지만 애석하게도 올해 30살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살아있다. 2023년에는 죽고만 싶었던 30살을 맞이한 기념으로 더 잘 살기 위한 작은 변화와 성취를 이뤄가 보는 해로 살아가보려고 한다.
뒷 이야기는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