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한 친구를 제외하곤 모두 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인들은 백수가 현재진행형인 날 부러워하곤 한다. 정작 난 가시방석에 앉은 것 마냥 걱정거리가 한두가지가 아닌데 말이다.
입으로는 오래 쉴 거라고 하지만, 머리로는 내가 다음 달에도 필라테스를 계속하려면 예산이 얼마나 필요한지, 수중에 있는 돈은 얼마인지 계산기를 수도 없이 두드린다. 혹시나 정말 오래 쉬게 된다면 실무 감각이 무뎌질까, 기업에서 오래 쉰 나를 선호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며칠 전 지인들과 단톡방에서 서로 안부를 묻다가 '이 방에선 저만 백수군요'라는 말을 했는데 돌아온 대답이 의외였다. 나는 백수여도 뭔가 사부작사부작하고 있을 것 같다고. 인스타그램으로 내 일상이 얼마나 재미없는지 보고 있었으면서 저런 말을 하다니 난 겉으로는 바지런한 사람이었던가?
난 참 단순하게 말 한마디에 세상을 구할 용기가 생기다가도, 말 한마디에 꺼져가는 불꽃처럼 기력이 바닥난다. 저 말 한마디가 자극제가 되어 백수 3개월을 채우기 전까지 구직 활동의 '구' 자도 꺼내지 않겠다고 했던 다짐은 뒤로 하게 되었다.
관심은 있었지만 지원할 열정이 생기지 않아 미뤄뒀던 채용 공고에 맞춰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며칠에 걸쳐 수정했다. 채용 사이트를 뒤지며 내가 원하는 직무와 조건의 회사를 추가로 서칭했다. 수많은 채용 공고 중 조건이 맞는 회사를 만난다는 것이 참 어렵게 느껴졌다.
그렇게 다가온 채용 마감일. 친구들에게 자소서 검토를 받고 최종 지원을 했다.
"지원하신 (회사)에서 제리 님의 이력서를 열람하였습니다." 지원을 완료한 지 1시간 만에 온 알람이다.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지원 버튼을 눌렀지만 막상 저 알람을 받으니 떨리기 시작했다. 면접관 앞에서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고 있는 이미지 트레이닝까지 완료했다. N의 상상력이란...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이다.
채용 조건에서 부족한 부분도 있고, 넘치는 부분도 있어서 이러나저러나 걱정되긴 한다. 서류 탈락일지 모르지만 나름 공들여서 작성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내 업무 능력과 회사에 대한 포부를 직접 설명할 수 있는 면접의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밥 해 먹고, 운동 가고, 강아지랑 노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다 꺼질 뻔한 불꽃에 기름을 부어준 단톡방의 그녀에게 이 영광을 돌린다.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