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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주 Dec 01. 2023

제주도는 땅보다 바다가 높더라

제주에서 든 생각

제주도를 다녀왔다. 2023년 1월이 2주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새해를 맞이하자마자 일복이 터져서 아르바이트들을 열심히 하다 보니까 7일이 그새 2번이나 지나갔다.      


틈틈이 일정도 열심히 짰다. 원래 나 혼자, 아니면 나와 여행 스타일이 맞는 친구들과 가는 여행이라면 하고 싶은 것들을 나열하고 그걸 조합해서 루트를 짠다. 그럼 여행 계획이 뚝딱 완성된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가족들과 함께 가는 여행이었고, 가족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계획을 짜야만 했다. 너무 싫었다. 하지만 해야 하는 것이어서인지 결국 어찌어찌해내게 되더라. 참을성은 내 가장 큰 장점이지만, 이런 순간엔 이게 단점인지 장점인지 헷갈린다. 결과물은 좋지만 스스로는 괴로운 성격. 싫어도 계속하다 보니, 그만둘 타이밍을 놓치는 것이었다. 그만두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그런 것들에 가장 힘들어하는 요즘이라 이런 고민이 되는 것 같다.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에선 주위를 살폈다. 가족들과는 제주도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나는 혼자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는 궁금해졌다. 나만 혼자 가나? 유심히 보니 몇몇 앳된 얼굴의 청년들이 혼자 타는 게 보였다. 멋있었다. 제주도에 혼자 가면 어떤 걸 느낄까? 혼자 바다 너머의 섬까지 여행을 갈 용기를 갖게 되기까지의 사연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혼자 여행을 가서도 온전하게 행복을 느끼고 올 수 있는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서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물론 나도 독립적이냐 의존적이냐 묻는다면 독립적이겠다. 하지만 난 혼자 제주를 가본 적은 없거든. 그리고 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쓰고 있던 ‘헤드셋’. 굉장히 멋있게 보이더라. 멋진 청춘의 필수품 같았다. 나도 따라서 하나 살까 싶었다. 헤드셋 하나로 멋진 청춘 흉내를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우스워서 마스크 아래로 조용히 웃음을 참았다.     


비행기가 내릴 때쯤 창문 아래로 ‘제주’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땅덩어리가 보이는 게 아니라 이 동네의 세세한 매력이 눈으로 확인되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땅과 가까워지며 바다 위에 설치된 의문의 양식장들. 바다와 땅의 경계선을 따라 줄줄이 이어지는 주황빛, 하늘빛, 장난감 같은 색의 지붕들. 여러 건물들이 모여있어 번화가처럼 보이지만 모든 건물이 작고 낮아 마치 동화책 속의 마을 위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공항에 도착해서는 창밖부터 바라보게 됐다. 제주를 기대했다는 뜻이겠다. 낯선 야자수들이 어김없이 엄청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제주도에는 여자, 돌, 바람이 많다던가? 어릴 적부터 그 바람이 다른 바람인 줄 알고 있었다. 연인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는 그런... 이번 여행에서 가족들과 대화하다가 ‘산들바람’의 바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 내가 정말 바보 같았고 그걸 모두가 함께 느끼고 있다는 게 눈에 보여서 더욱이 부끄러웠다. 어리기에 할 수 있는 착각이다. 요즘은 이게 부끄럽지만 또 기억하고 싶기도 하다. 이제는 가질 수 없어서인지. 부끄럽다기보다 이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가족들을 만나서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부모님께 새로운 경험을 시켜드리고 싶었는데, 그거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해냈다. 또 즐겁게 지내시면서 계획을 이렇게 짜 준 나한테 고맙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더 기쁘더라. 여행사 직원과 같은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면 계획을 잘 짜지만 좋아하진 않던 나도 꽤나 만족스럽고 훌륭하게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오만한 생각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까 정말 오만하다. 그래도 기쁨에 빠져서 오만한 줄도 모르고 생각한 게, 꽤 사랑스럽다고 봐주면 좋겠다. 이럴 때 나이를 무기로 쓴다. 어리니까 서투른 것도 사랑스럽잖아? 강요하는 건 아니니 아니면 아니라고 해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난 나를 그렇게 바라본다. 새삼스레 내가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본다는 사실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제주도는 우연히 마주한 풍경들이 마음에 도장 찍히듯 오래 남는다. 우연히 들어간 아주 좁은 골목길의 낮은 돌담길, 그 돌담 안의 조그마한 집 한 채, 그 집을 둘러싸는 노란 감귤 가득 달고 있는 귤나무, 배경은 뭉게구름과 옅은 하늘빛 색,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주변의 진한 녹색의 풀잎들과 나뭇잎들. 바다를 배경으로, 귤나무를 배경으로, 자유롭고 여유롭고 느긋하게 하루를 보내는 제주도 길가의 강아지들. 유난히 넓은 도로, 비교적 적은 차들, 어린이 보호구역이 유난히 많아서 쌩쌩 달리지 못하고 아주 느릿하게 흘러가는 차들. 넓은 도로를 따라 천천히 언덕을 내려가면 도로 너머로 펼쳐지는 도로보다도, 산보다도 높은 옥색 바다. 지대가 어떻게 되어서 그렇다고 분명히 언니에게 설명 들었는데 정보는 기억나지 않고 풍경만 기억이 난다. 풍경은 기억에 뚜렷하지만 이유가 정확히 설명되지 않아서 더 마법같이 느껴지니, 지금 다시 이유를 찾아보고 싶지는 않다. 커다란 유리공 안에 마을이 있는데 그 공이 바다에 둥둥 떠서 유영하는 느낌. 제주도는 동화 속에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만약 몇 년 뒤 제주도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그럼 난 제주도로 살러 흔쾌히 떠날까? 글쎄, 관광객으로 가는 것과 도민이 되는 것은 다른 느낌이겠다. 그래도 제주도의 고즈넉함을 애정하니까 나는 제주도와 꽤나 친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주도에 발붙이고 산다면, 이 섬의 고즈넉함이 나에게 녹아들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대답이 ‘예’라면 난 제주도로 당장이라도 출발할 것 같다. 


제주도는, 닮고 싶은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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